[손건웅의 풍수유람] 풍수로 살펴본 최태원 SK 회장의 ‘굴곡사’
[아시아엔=손건웅 풍수유람가, <풍수로 세상을 보다> 저자] SK의 출발은 선경직물이었다. 창업자 최종건 회장(이하 경칭생략)은 일제강점기 때 선경직물의 직원이었다. 해방 후인 1953년, 최종건은 이 회사를 인수하려고 부친 최학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부친이 집을 비운 사이 그는 집안에 숨겨둔 현금을 찾아내서 선경을 인수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6.25로 폐허가 된 공장을 복구해 (방)직기를 재조립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최종건 회장의 노력으로 회사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1962년 홍콩에 자사제품을 수출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창업 20주년이 되는 1973년 최종건은 폐암으로 쓰러진다. 향년 47.
경영권을 이어받은 동생 최종현 회장(이하 경칭생략)은 1980년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삼성을 제치고 대한석유공사의 인수에 성공, 재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SK의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1989년에는 정유 관련 공장의 복합단지를 완성하여 창업자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성공시켰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성공해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이라는 그룹의 양대 축을 완성했다. 그런데 단전호흡 수련 등으로 건강을 자신하던 최종현은 폐암으로 1998년 타계한다. 69세였다.
최종현은 풍수에 관심도 많았고 조예도 깊었다. SK사옥의 풍수비보도 그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세간에 유전(流轉)하고 있는 SK 선영의 감평을 들어보자.
최학배(창업자 최종건의 부친)의 묏자리는 재벌 후손이 나는 자리이며, 최종건 회장의 묘도 대재벌이 되는 자리다. SK선영은 와우(臥牛) 형세를 갖추어 유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만 집안의 불운은 흉한 좌향으로 놓아서 그렇다.
최태원이 영어(囹圄)의 신세인 것은, 최종현의 묘가 혈맥에서 벗어난 비혈지라 그렇다. 최종현은 화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이 묘소와 후손의 길흉관계를 말하는 것은 풍수밖의 일이다.
대기업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지속적 발전하고 있는 SK, 단속적으로 발생하는 인정(人丁)의 문제. SK 선영에는 길흉의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는데, 위의 감평들은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모호한 주장들이다.
행과 불운을 가져온 SK 선대 묘소, 그 하나 하나를 살펴보자.
최종현 회장의 묘소는 풍수적 논란이 가장 분분한 곳이다. 최태원 회장이 영어의 신세인 것이 이 묘소가 흉지라서 그렇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풍수가 법을 위반하는 것까지 커버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법과 풍수의 본질을 모르는 소이(所以)이다. 혹자는 화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이 묘소와 후손의 풍수적 길흉관계는 풍수 밖의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 이래 화장이 보편적 장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장으로 조상을 모시고도 100년 이상 지속 발전하는 일본기업의 선영을 풍수 밖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기업인 선영 100기 이상을 간산한 필자는 화장을 해도 길흉의 영향은 토장(土葬)과 동일한 영향을 준다고 확신한다.
창업 이후 지속 발전하는 기업들 선영의 특징은 창업이 가능토록 추동해준 선대의 묘소가 있고, 그 기업이 지속적 발전할 수 있도록 견인해 주는 또 다른 대명당이 더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최종현 묘소가 SK의 지속 발전을 견인해주는 바로 그런 묘소다. 대기업을 추동할 역량의 혈처에 잘 모셨다.
사진의 건물은 sk 서린사옥이 아니라 sk 텔레콤 건물입니다. 어느 건물이 본사인지도 모르는 분이 풍수를 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