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웅의 풍수유람] 도쿄의 명당과 흉지는 어디?···일왕 거처와 미스코시백화점

[아시아엔=손건웅 풍수유람가] 도쿄는 면적은 서울의 3.5배, 평야지대에 위치한다. 풍수의 좌청룡 우백호 등의 ‘사신사’(四神砂)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그들도 묘지를 썼고, 여전히 묘를 쓰고 있다. 우리와 다른 점은, 메이지유신 이래 화장(火葬)이 보편화되면서 도심 한 복판에 많은 공원묘원이 자리하고, 묘소를 관리하는 사원(寺院)도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어떤 풍수가들은 일본인들은 음택풍수를 신봉하지 않지만, 양택을 풍수의 법수(法數)에 맞게 지었기에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한다. 필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가 없는 공원묘원에도 수많은 명당이 있고, 그런 명당에 선영을 모신 후손들은 대를 이어 유명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 100년 넘는 기업을 대를 이어 지속시키고 있다. 도쿄의 유명한 양택 중 세곳을 보자.

에도성 유지(遺址)와 천수대(天守台)

에도성(江戶城)은 도쿠가와 막부시절 쇼군(將軍)이 거주하던 성채다. 평지라는 군사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거대한 화강암을 이용한 성벽과 해자로 성채를 둘러쌓았다. 에도성 대문인 오오테몽(大手門)을 통과하여 500여m 직진하다 좌회전하면 경비무사가 거주하던 번소(番所)가 있다. 번소에서 서쪽으로 200여m에 맑은 날에는 후지산도 보인다는 후지미야구라(富士見櫓)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소로(小路)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주신쿠라(忠臣?) 사건의 발단이 된, 아코번(赤?藩)의 번주 아사노(?野長矩)가 칼부림을 일으켰던 마쯔의 낭하(松の廊下跡) 지점을 알려주는 표시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만 오른 쪽으로 가면 넓은 잔디밭이 전개된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쇼군의 거주처이며 정청(政?)이었던 혼노마루(本の丸)가 있던 장소다. 혼노마루가 자리했던 북쪽에는 천수대(天守台)의 유지가 남아있다. 지금은 높이 11m, 동서 41m, 남북 45m의 구조물이 남아있지만, 원래는 각대(脚台)를 포함하여 58m 높이의 5층 건물이 있었다.

천수대에 올라 혼노마루가 있던 전면을 내려다보면, 경관상으로는 이 넓은 섹터가 도쿄 최고의 명당이라 여길 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섹터가 대부분 흉지다. 혼노마루 초입부터 천수각 뒤까지 모두 그렇다. 혼노마루는 다섯번의 이재(罹災)를 당하고, 그때마다 복구됐으나 1863년 화재 이후로는 재건하지 않은 상태이다. 조선의 경복궁보다 더 심한 흉지라는 판단이다.

지금 천황이 거주하는 곳은 막부시절에는 에도성의 서원(西苑)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이 도쿄로 이주해 왔으나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자 서원에 집을 짓고 황거(皇居), 혼노마루가 있는 곳을 동어원(東御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현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황거 또한 자리가 될 수 없는 흉지에 불과하다.

넓은 잔디밭이 에도성(江戶城)의 정청((政?)이 있었던 혼노마루(本の丸) 유지(遺址)이며 뒤에 보이는 축조물이 천수대(天守台)다.
넓은 잔디밭이 에도성(江戶城)의 정청((政?)이 있었던 혼노마루(本の丸) 유지(遺址)이며 뒤에 보이는 축조물이 천수대(天守台)다.

천수대를 뒤로 하고 북쪽의 해자를 통과하면 기타노마루(北の丸) 지역이다. 이곳에는 1964년 도쿄올림픽 유도장으로 건축된 부도캉(武道館)이 있는데, 이곳 또한 흉지다. 부도캉을 지나 에도성의 북문인 다야스몽(田安門)을 빠져 나오면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의 초입이다. 초입에 들어서면 시야를 압도하는 25m 높이의 청동제 제1도리이(鳥居)가 나타난다. 제1도리이를 지나면 제2도리이와 신문(神門)이 나타난다. 신문의 양쪽에 붙여진 1.5m 크기의 “평화를 상징한다”는 국화문장(菊花紋章)이 조선풍객의 실소를 자아낸다.

신문(神門)을 넘어 마지막 도리이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바로 야스쿠니신사(靖?神社)의 배전(?殿)이다. 일반 참배객들은 이 배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뼉을 크게 치고는 정중히 머리를 깊게 숙여 참배한다. 본전(本殿)에는 246만6천여 신령의 위패를 모셨다. 그 중에는 조선과 중국의 침략자 그리고 2차대전을 일으킨 A급 전범까지 봉안하고 있으니, 주변국에 재앙을 초래한 그들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다.

더러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왜놈’이란 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제1도리이부터 본전까지 모두가 흉지다. 배전과 본전은 흉지 중의 대흉지의 핵심에 자리한다.

건물의 왼쪽이 야스쿠니의 배전(?殿)이고 오른 쪽 지붕의 일부가 보이는 것이 본전(本殿)이다.
건물의 왼쪽이 야스쿠니의 배전(?殿)이고 오른 쪽 지붕의 일부가 보이는 것이 본전(本殿)이다.

미츠코시백화점(三越百貨店) 니혼바시본점(日本橋本店). 미츠코시는 일본 최초의 백화점으로 니혼바시 본점은 1935년 준공되었고, 도쿄도 역사기념물로 선정되었다.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미츠코시 경성점이 개장하였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 미츠코(전지현)가 결혼식을 올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관). 신세계백화점과 미츠코시백화점의 유사한 외관은 이러한 연고가 있기 때문이다. 미츠코시 비혼바시점은 상당한 역량의 대명당 혈처에 자리한다. 게다가 혈처의 섹터가 굉장히 넓어, 이 건물 뒤에 있는 일본은행 터까지도 미츠코시백화점의 여기(餘氣)로 자리가 되었다.

미츠코시백화점 창업자 비히 오스케(日比翁助, 1860년 8월~1931년 2월)의 선영 묘소들이 대기업을 추동할 역량의 혈처에 자리한 것을 보고는 풍수도 인연이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츠코시백화점(三越百貨店) 니혼바시 본점 (日本橋本店)
미츠코시백화점(三越百貨店) 니혼바시 본점 (日本橋本店)

풍수 전적(典籍)에서 거론하는 양택의 조건에는 결정적인 내용이 빠졌다. 음택은 그 혈처의 섹터가 시신을 안치할 정도로 협소하여도 가능하지만, 양택은 혈처의 면적이 건물을 수용할 정도의 넓이라야 한다. 풍수가가 혈처의 범위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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