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 기초 유진오 외손자 한홍구 ‘김일성 민족영웅’ 발언 진위·배경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우리 역사의 또 하나의 사각지대인 부여사를 복원한 국내 첫 통사가 나왔다. <처음 읽는 부여사>를 낸 송호정(51) 한국교원대 교수는 “우리 역사의 출발점은 고조선이었지만 우리 고대사의 출발점으로 부여를 함께 봐야한다”고 했다. 송호정 교수는 “기원전 3세기부터 494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700년간 만주지역에 있던 부여는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라고 했다. 신라와 가야도 부여에서 내려온 집단이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발해도 옛 부여 지역을 회복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 기록에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송 교수의 부여사 정리가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부여를 예맥족이 세운 한국 고대의 역사로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데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을 형성한 예맥족의 정치체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19세기부터 발달한 언어학도 중요한 도구가 된다. 한국, 몽골, 만주, 일본의 퉁구스 어족과 중국, 티베트인들의 지나 티베트 어족은 완전히 다르다. 말이 전혀 다른 민족을 한 국가로 묶으려 하는 중국의 기도는 19세기적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 중국은 위구르, 티베트를 합병하고서 55개 소수민족을 포함한 다민족국가라고 주장하는데 만일 일본, 태국을 병합한다면 역시 다민족국가로서 ‘大중국’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달라이 라마를 존중하고 있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시진핑을 접대하는 만찬에 불참한 것은 영국이 19세기에 중국을 유린한 제국주의의 원조이기는 하지만, 21세기에 중국이 티벳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핀잔으로 들린다.

송호정 교수는 부여의 강역을 현재 만주의 흑룡강성과 길림성 일대로 추정했다. 그는 관련 유적을 28회 답사했다고 하는데, 고문헌과 고고학의 자료를 더해 실상에 가깝게 접근한 것으로 자신한다.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는 학자도 강진 다산 유적과 남양주 다산 생가를 28회 돌아본 학자는 드물 것이다. 역사는 남아 있는 기록에만 의존하여서는 안 되며 발로 뛰는 부지런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을 보는 것 같다.

우리 역사의 왜곡은 중국 송대의 쌍기가 고려 성종 때 과거제도 등을 전하며 고구려 유물을 파훼한 것이 원조다. 그에 비하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의 임나(任那) 일본부 운운은 약과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때까지 남아 있던 의존하여 기술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들은 계속하여 새로운 방법론에 의해 보완된 자료를 반영하여 역사를 다시 쓰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송호정 교수처럼 거의 망각의 세계에 던져져 있던 부여사를 되살려내는 학문적 진지성은 그래서 탁월하다.

6.25전쟁을 몸으로 겪은 세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김일성에 대해 ‘민족영웅 운운’ 하는,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대표적 집안의 소생 한홍구 교수의 망발은 참으로 용납할 수 없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외조부 유진오가 지하에서 통곡하면서 민족에 용서를 빌지나 않을까 들리는 듯하다.

역사학도들이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부디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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