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공자님도 평생 걱정거리 4가지

공자의 초상화
공자의 초상화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근심만 하고 있다고 그 근심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근심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번뇌도, 망상도, 근심도 된다.

<논어> ‘술이’(述而)에 보면 공자의 근심, 오우(吾憂)에 대한 말이 나온다. 성현에게도 근심이 있는 모양이다. 공자는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근심이 네 가지라 했다.

첫째, 덕지불수(德之不修)다.

인격(德)을 제대로 연마하지(修) 않는(不) 것에 대한 근심이다.

둘째, 학지불강(學之不講)이다.

배움(學)을 열심히 익히지(講) 않는(不) 것에 대한 근심이다.

셋째, 문의불능사(聞義不能徙)다.

옳은(義) 것을 듣고(聞) 실천(徙)하지 않는(不) 것에 대한 근심이다.

넷째, 불선불능개(不善不能改)이다.

좋지(善) 못한(不) 것을 고치지(改) 않는(不) 것에 대한 근심이다.

“시오우야(是吾憂也)! 이것이(是) 평생 내가(吾) 살아가면서 하는 근심(憂)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눈을 뜨면 근심으로 늘 골치가 아프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리 크게 근심할 것이 없는데 말이다. 이 근심은 우리가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정작 해야 할 걱정은 안 하고, 안 해도 될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강진 귀양살이 시절에 온갖 근심에 싸여 지내며 <우래>(憂來)라는 12장의 시를 읊었다. 그 첫 장의 근심이 우선 눈에 띈다.

“약령사학성(弱齡思學聖) 젊은시절엔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중세점희현(中歲漸希賢) 중년에야 현자라도 바랐네. 노거감우하(老去甘愚下) 노년이 돼서는 바보라도 달게 여기니, 우래불득민(憂來不得眠) 그런 걱정에 잠도 못 이루네.”

꿈도 크고 하고픈 일도 많았던 다산은 젊은 시절에는 성인이 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천재 다산은 그렇게 뜻이 크고 꿈이 높았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다산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현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希賢有路)고 믿었다. 그러면서 심신을 수양하고 덕을 닦으며 학문을 강론하느라 불철주야 저술 작업에 생을 걸었다.

다산은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에 떨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인정하는 현자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그래도 그는 어리석은자(下愚)로 자처하면서 근심에 싸여 있노라고 했다.

다산은 성인을 스스로 기대했기 때문에 그 아래 단계인 현자(賢者)가 될 수 있었다. 옛 시에 “인생은 백세의 나이도 채우지 못하나 언제나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는 구절이 있다.

공자께서는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란(芝蘭)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 되면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니 더불어 그에게 동화된 것이다. 착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듯하여 오래 되면 그 냄새를 느끼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동화된 것이다. 단(丹)을 지니면 붉어지고, 칠을 지니면 검어지니 군자는 반드시 자기와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고 했다.

<법구경>(法句經) ‘안락품’(安樂品)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내 삶은 이미 편안하거니/ 어떤 근심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들 모두 근심이 있지만/ 나에겐 근심이 없도다.” 이 정도는 되어야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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