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KBS 수신료 인상해 NHK 능가할 다큐 만들었으면
‘차마고도’ 같은 우수작 제작해 수출하면 국격도 높아질 것?
KBS가 수년 전 선보인 ‘차마고도’(茶馬古道)는 한마디로 일본의 NHK의 ‘실크로드’를 훨씬 뛰어넘는 대작이다. 티베트의 자연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립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길을 내는 것은 평지에 고속도로를 내는 것이 아니다. 2천년 전 유비의 촉(蜀)이 사천성에 자리를 잡았을 때 잔도(棧道) 하나에 의존하였을 때와 다름이 없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하며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울타리 안에서 명실상부한 자치를 누리면 족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중국의 인력과 물자가 아니면 티베트는 문명세계와 연결되는 길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와 같은 달라이 라마의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언젠가 6백만 티베트인은 13억 중국에 녹아 없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를 가진 티베트가 과연 그럴까? 5000m가 넘는 설산을 넘으려면 산소가 희박하여 숨 쉬기 힘들고 어지러운 고산병에 시달린다. 여기를 다섯 발을 걷다가 온몸을 던지는 오체투지(五體投肢)를 하며 수도 라사로 성지순례를 하는 티베트인의 종교적 열정과 집념은 무엇이라 표현할 것이 없다. 이들을 따라가며 촬영하는 제작진의 노고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중국 운남성의 차를 티베트나 네팔과 거래하는 마방(馬房)들이 산간 외길을 간다. 길을 한발 헛디디면 바로 천 길 낭떠러지다. 이것을 카메라에 담는다. 홀로 걷기도 아찔한데 무거운 촬영 기자재를 운반하면서 앞뒤로 촬영하는 노고와 위험은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는 차마고도는 15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차가 티베트에 유입된 이래 고산지대의 티베트인에게 차는 필수가 되었으며 그 대가로 티베트 말이 중국에 유출되었다. 이는 마치 후대의 마약과 같이 티베트의 국력을 소진시켰다. 당(唐)의 문성공주를 인질로 하리만큼 강성하던 서하(西夏)는 그 이래로 힘을 잃었다.
제작은 하루 이틀, 한 두 달이 아니며 해를 넘겨가며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회사로부터 받은 과업이라고 하지만 제작팀의 의지와 인내에 놀라고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만한 대작을 기획하고 제작한 KBS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국력도 이만큼 충실해졌다는 한 표징이라 할 것이다.
이인호 교수는 KBS 이사장이 되어 수신료가 25년째 2500원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한국에 방송사가 KBS 하나만이 아닌데 왜 일률적으로 수신료를 받느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공영방송 하나쯤은 국민의 부담으로 운영하는 것을 양해한다면 수신료를 올려서 질 좋은 작품을 제작하도록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영국 BBC의 다큐멘타리 ‘살아있는 지구’와 같은 작품은 국민교양을 높이고 외국에 한국의 수준을 알리는 좋은 통로인데 공영방송이 아니고서는 만들기 힘들다.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국력이며, 이는 다양한 국가적 노력의 총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