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만해대상] ‘글 짓는 농부’로 풍요로운 세상 이룩
어릴 적, 조부께서 살던 시골마을을 방문하곤 했다. 자연을 즐기고, 전래동화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녹색 양탄자 같은 들판, 하늘의 푸르름을 점 찍은 흰 솜 뭉치들, 발레리나처럼 춤 추는 황로, 그리고 그 순간 꿈꾸고 있던 모든 것들이 아직 생생하다. 그 시절엔 농부가 돼 안락한 삶, 자연의 호의,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농사엔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 글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책벌레다. 어린 시절 느긋하게 쉬던 나무의 푸른 이파리를 계속 뜯어 먹던 하얀 누에 같은 책벌레…. 그러나 수확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를 따라다녔다. 시·소설·기사·심지어 편지를 쓸 때도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파괴해버릴 수 있는 언어의 힘을 믿었다. 언어는 우리가 물려줄 유산이다. 우리는 과거의 예언자·지성인·시인, 그리고 소설가가 남긴 언어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 무함마드, 공자와 부처가 남긴 말은 우리 신념의 밑바탕이다. 간디, 나세르, 그리고 만델라의 말은 우리의 역사를 만들었다. 만해 한용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그리고 오마르카얌이 남긴 말은 우리의 영혼을 보듬어 주었다. 위인들은 글 농사를 지었고, 그들이 뿌린 씨앗은 불특정 다수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도 글을 짓는 농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가장 우수한 씨앗을 찾아, 열심히 땅을 파고 그 씨앗을 심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내 삶을 바칠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씨를 뿌리고 결실을 맺음으로써 이를 증명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인 한용운의 삶과 사랑, 그리고 문학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나 역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의 심사를 통해 2014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크게 감명받았다. 내가 한국문학에 발걸음을 내디뎠던 때는 첫 소설 <샤마위스로 가는 길>의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된 2008년이었다. 그로부터 육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뿌린 씨는 남산의 나무, 한국의 어느 농장, 그리고 오래된 도시의 길거리에서 자라왔다. 지금 이 기쁨을 한국의, 그리고 세계의 친구들과 만끽하고 싶다. 예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장대비 속에서 그 누구도 작은 빗방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하나됨을 느낀다. 이렇게 모인 빗방울은 나일강, 한강, 갠지스강, 그리고 생명의 근원을 이루고 글로써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