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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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고요히 고요히’ 박노해
고요히 고요히 가을은 고요히 햇살은 고요히 씨앗처럼 고요히 산맥처럼 고요히 고요히 고요히 상처는 고요히 성숙은 고요히 별들처럼 고요히 희망처럼 고요히 고요히 고요히 여행은 고요히 길들은 고요히 내 안으로 고요히 걸어오는 것들 내 안에서 고요히 피어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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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한로’ 홍사성 “가을볕 은근할 때 얼굴 보여주시라”
먼산에는 단풍꽃 강가에는 갈대꽃 산수유 눈물인듯 아침이슬 차갑다 들쥐도 하루하루 겨울채비 바쁜데 그대는 어찌해서 소식 한 줄 없는가 수줍은 코스모스 바람에 흔들리니 가을볕 은근할 때 얼굴 보여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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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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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10월 엽서’ 이해인(1945~ )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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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가을 햇살에’ 박노해
나의 날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의 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의 벗들은 다 어디에 있나 즐거운 만남도 설레는 여행길도 함께 모여 담소하고 슬퍼하고 격려하던 우리 인생의 날들은 다 어디로 갔나 가을이 온다 그래도 가을이 온다 긴 먹구름과 암울한 공기를 뚫고 노란 산국화는 향기를 날리고 들녘의 벼들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사과알은 햇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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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한민국 실록’ 머릿말···”자라나는 손주에 주는 선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군비통제관·정책기획관] 歷史는 한세대는 지나야 쓸 수 있다고 한다. 현재에 대한 서술은 時事다. 따라서 70년이 지난 이제 대한민국 건국사와 6.25 전쟁사에 대해서는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대한민국 실록』은 개인적인 저술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칠은 세계 『세계 제2차대전사』를 썼다. 네루가 딸 간디에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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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9월의 붉은 잎’ 박노해
이른 아침 9월의 푸른 숲에서 역광에 빛나는 붉은 잎 하나 너는 너무 일찍 물들었구나 흰 원고지 위에 각혈하는 시인처럼 시절을 너무 앞서 갔구나 너무 민감하게 너무 치열하게 모두가 물들어 떨어지고 말 시대를 예감하며 홀로 앞서 몸부림하다 핏빛으로 물든 붉은 잎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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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9월’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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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聞曉笛’-새벽 피리소리를 들으며- 윤윤기
更深耿耿抱愁懷 城北我聞曉笛催 驥路卄年孤枕上 ?窓依舊送明來 깊은 밤 근심으로 뒤척이다 성북쪽에서 새벽 재촉하는 피리소리 흘러간 20년, 외로운 침상봉창은 어제처럼 밝은 날 맞이하네 이 시는 손병주 독자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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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빈집’ 기형도(1960~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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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숨’ 이병률 “신은 인간에게 채찍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서로 가까이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며 신은 인간에게 채찍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입을 가만히 두라는 뜻이었을까… 몇백년에 한번 사랑에 대해 생각하라고 신이 인간의 입을 막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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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바람이 불어오면’ 박노해
에티오피아 고원에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어디로든,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초원을 달리고 흙길을 달리고 밀밭을 달린다 허기를 채우려는지 온기를 찾는 것인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내 영혼은 달려 나간다 어디로든, 어디로든, 그리운 네가 있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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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가을 法語’ 장석주
태풍 나비 지나간 뒤 쪽빛 하늘이다. 푸새것들 몸에 누른빛이 든다. 여문 봉숭아씨방 터져 흩어지듯 뿔뿔이 나는 새 떼를 황토 뭉개진 듯 붉은 하늘이 삼킨다. 대추 열매에 붉은빛 돋고 울안 저녁 푸른빛 속에서 늙은 은행나무는 샛노란 황금비늘을 떨군다. 쇠죽가마에 괸 가을비는 푸른빛 머금은 채 찰랑찰랑 투명한데, 그 위에 가랑잎들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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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길’ 박노해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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