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F 교사 수업로그 105건 분석…“교사가 청자가 돼 학생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질문·기다림·구조화된 말하기 강조…생성형 AI도 ‘정답 도구’ 아닌 자기학습 수단으로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교사는 얼마나 말해야 할까. 지식을 더 많이 전달하는 것이 좋은 수업일까, 아니면 학생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은 수업일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정승곤 교수는 최근 ISF(International Student Fellowship) 한국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후자에 무게를 뒀다. 그는 “교사가 많이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감하고 도와주는 수업”을 강조했다.
이번 강의는 지난 학기 ISF 한국어 수업에서 작성된 105건의 수업 로그를 토대로 진행됐다. 교사들이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의 발화를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어떤 대목에서 어려움을 느꼈는지 돌아보고 새 학기 수업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였다. 정 교수는 105건의 응답을 생성형 AI를 이용해 일차적으로 분류한 뒤 세부 내용을 직접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학생들의 말이 가장 활발해진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됐다.
첫째는 ‘자기 이야기를 할 때’였다. 학생들은 자기소개뿐 아니라 고향과 음식, 취미, 대중교통, 한국문화, 자신의 고민과 꿈, 진로와 학업 등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을 주제로 삼았을 때 말을 더 많이 했다. 정 교수는 “학생에게 말할 내용이 있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확장됐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줬을 때다. 완전히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는 것보다 질문카드, 인터뷰, 짝 활동, 게임, 그림 설명, 고향 사진 소개처럼 일정한 틀을 제공하면 학생 참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교재 역시 정답을 전달하는 수단보다 학생이 배운 표현을 실제 대화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셋째는 교사가 ‘질문한 뒤 기다려줬을 때’였다. 학생이 금방 답하지 못한다고 교사가 대신 말하거나 틀린 표현을 곧바로 고쳐주기보다 짧고 이해하기 쉬운 질문을 던진 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승곤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보다 질문하기, 답을 주기보다 기다려주기, 바로 고치기보다 먼저 말하게 하기”로 정리했다. 학생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면 때로는 교재를 잠시 밀어두고 그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학생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과 ‘학생이 실제 많이 말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교사가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해서 반드시 학생 발화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줍음이 많은 학생도 있고, 학생 사이의 관계가 어색하거나 시험 기간처럼 피곤한 상황도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수업할 경우 한 학생에게 발화가 편중되지 않도록 교사가 조절하다 보면 오히려 교사의 말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한 참석자가 “수줍음이 많은 학생들에게 아무리 발화를 유도해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하자 정 교수도 현장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그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시아권 유학생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교사의 설명을 듣는 방식에 익숙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며, 이들을 계속 관찰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문법 지식을 설명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와 번역기 활용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AI에 익숙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말이 막혔을 때 스스로 필요한 표현을 찾아보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AI에서 얻은 답을 그대로 읽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찾은 표현을 다시 말하고 반복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어교육에서는 학습자가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식하고 고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교사가 문제를 발견해주더라도 답까지 대신 제시하기보다 학생이 직접 수정하도록 돕는 편이 낫다는 설명이다. “진도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 참여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승곤 교수가 이날 거듭 강조한 단어는 ‘상호작용’이었다. 제한된 수업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문법과 어휘를 전달했느냐보다 학생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말하고 다른 학생 및 교사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ISF의 장점도 여기에서 찾았다. 다대다 수업에서는 얻기 어려운 밀도 높은 대화를 통해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생활의 고민까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앞에서 끊임없이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청자가 되어 학생의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날 강의의 질문은 단순했다. “내가 얼마나 잘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학생이 오늘 얼마나 자기 말로 이야기했는가.” 정 교수가 제시한 유학생 한국어교육의 방향은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