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발밑에 있다”…박상남 초대전 ‘TREASURE, NOW’

9월 4일~10월 5일 세빛섬 애니버서리갤러리
애니버서리갤러리·구구갤러리 공동기획
길바닥 얼룩·균열·상처를 ‘연금술적 추상’으로 바꾼 40년 화업
사람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길바닥에서 ‘보물’을 찾아온 박상남 작가가 서울 세빛섬에서 관객을 만난다. 박상남 초대전 ‘TREASURE, NOW-보물, 지금’이 9월 4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올림픽대로 세빛섬 채빛섬 1층 애니버서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애니버서리갤러리와 구구갤러리가 공동기획한 전시다.
전시 제목 ‘TREASURE, NOW’에는 박상남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작품세계가 압축돼 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화려한 풍경이나 특별한 사물이 아니다. 아스팔트 위에 굳어 있는 덩어리, 시멘트로 때운 자국, 깨진 벽과 갈라진 틈, 비와 바람을 맞으며 생겨난 얼룩과 생채기다.
누구나 날마다 지나치지만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이다. 박상남은 이 흔적들에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읽는다. DIA Contemporary는 그의 작업을 길과 벽에 남은 우연한 얼룩과 상처에서 인간 삶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를 회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설명한다.
작가 스스로도 바닥을 “모든 흔적과 상처, 기쁨의 탄생지이자 저장고”로 바라본다. 비와 바람, 햇살과 사람의 움직임이 거대한 화판인 땅 위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시간이 만든 그 ‘얼굴’을 다시 화면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길바닥의 ‘비천함’을 예술의 ‘고귀함’으로
이 때문에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박상남의 작업을 ‘연금술적 추상화’라고 이름 붙였다.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 했던 옛 연금술처럼 박상남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길바닥과 상처의 흔적을 예술적 가치로 전환한다. 윤진섭은 그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반이면서도 천대받는 길거리를 관찰해 ‘비천을 고귀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고 평했다.
작업 과정 역시 짧지 않다. 신문지와 종이 등을 가공해 바탕을 만들고 광물, 접착제, 기름, 금박 등 여러 재료를 겹쳐 올린다. 재료들이 화면 안에서 만나고 굳고 변색하며 새로운 표정을 만들어낼 때까지 기다린다. 짧게는 1~2년, 긴 작품은 완성까지 10년가량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화면에 보이는 균열과 요철은 단순한 장식적 질감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작품의 재료인 셈이다.
베르사유의 ‘금빛’과 길바닥의 흔적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상남은 1989년 한성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10년가량 활동했다. 1993년 베르사유 미술학교를 졸업(D.F.A.P)했다. 프랑스 시절의 경험은 이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금박과도 연결된다. 키아프 서울이 소개한 작가 자료에 따르면 박상남은 베르사유에서 접했던 찬란한 금빛을 시간과 위엄, 풍요의 이미지로 기억했고, 이후 실제 금박을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 금빛이 놓이는 곳이다. 왕궁이나 귀족의 초상이 아니라 깨지고 상처 난 길바닥을 닮은 화면 위에 금이 놓인다. 가장 낮은 것과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재료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것이다. 박상남이 말하는 ‘TREASURE’, 곧 보물의 의미도 이 지점에서 읽힌다.
지난해 ‘TREASURE’에서 올해 ‘TREASURE, NOW’로
박상남과 구구갤러리의 인연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22년 구구갤러리 초대전에서 길과 벽에 남은 ‘흔적(Trace)’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신작 40여 점을 선보였다. 2025년에는 같은 갤러리에서 ‘TREASURE’전을 열었다. 당시 작품들은 기존의 묵직한 물성에 밝고 경쾌한 색조가 더해졌고, 구자민 구구갤러리 대표는 박상남의 작품에서 “박수근 작품의 거친 질감과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움이 공존한다”고 평가했다.
이번에는 제목에 ‘NOW’, ‘지금’이 붙었다. 보물은 언젠가 발견할 먼 곳의 무엇이 아니라,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자리와 현재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길 위의 얼룩 하나를 그냥 지나칠 것인지, 거기에 축적된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들여다볼 것인지는 결국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다.
박상남의 그림은 그 익숙한 일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하찮다고 여기며 지나친 것 가운데 정작 삶의 보물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TREASURE, NOW-보물, 지금’은 9월 4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세빛섬 채빛섬 1층 애니버서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는 애니버서리갤러리와 구구갤러리가 공동기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