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칼럼

[발행인 칼럼] 주식시세판이 국민의 하루를 점령한 나라

직전 거래일 역대급 폭등세를 보였던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한 8월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대형 시세판을 바라보며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338.00포인트(5.12%) 내린 6,257.45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아침 8시, 프리마켓이 열린다. 출근길 직장인은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부터 확인한다. 오전 9시 정규장이 시작되면 업무 중에도 시세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무실에서는 눈치가 보이니 화장실이나 계단, 빈 회의실로 들어가 매수·매도 주문을 넣는다.

오후 3시 30분 정규장이 끝나도 거래는 멈추지 않는다. 애프터마켓은 저녁 8시까지 이어진다. 퇴근길은 물론 저녁 식사 시간에도 휴대전화에서는 시세 알림이 울린다. 종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였던 주식 거래가 이제는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통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

투자자의 편의를 넓힌 제도라고 하지만, 주식시장이 일상의 거의 모든 시간을 점령하는 부작용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퇴직자는 하루 종일 시세판을 들여다보고,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도 ‘오늘의 급등주’를 찾아 헤맨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손바닥만 한 화면에 뜨는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에 하루의 희망과 절망을 맡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풍경이다.

주식투자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 기업에 투자해 성장의 성과를 나누는 것은 건전한 경제활동이다. 문제는 투자보다 매매가, 기업의 가치보다 오늘의 등락이 더 중요해졌다는 데 있다. 주식시장이 자본을 생산적인 곳으로 보내는 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주식거래가 일상화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출근 전부터 퇴근 후까지 시세를 확인하며 매매에 매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동보다 급등주를 믿는 사회

직장인이 근무시간에 몰래 주식을 거래하는 모습을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업무시간까지 쪼개 주가를 확인하는가. 왜 청년은 직장에서 실력을 쌓는 일보다 급등할 종목을 찾는 데 더 큰 기대를 거는가.

답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노동보다 자산에 더 큰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월급은 조금씩 오르는데 집값과 자산가격은 훨씬 빠르게 뛴다. 수십 년 일해 모은 돈보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잘 골라 얻은 수익이 더 크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땀 흘려 일한 사람보다 ‘한 종목을 잘 잡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에게 근면과 성실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노동의 대가는 제자리인데 자산 보유자만 빠르게 부유해진다면, 일보다 투자에 희망을 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 국민 투자 열풍의 밑바닥에는 탐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만으로는 미래를 만들기 어렵다는 불안과 절망이 깔려 있다.

거래시간의 확대는 이러한 몰입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프리마켓은 출근 전 시간을, 정규장은 근무시간을, 애프터마켓은 퇴근 후 저녁까지 차지한다. 투자자의 선택권과 편의를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개인에게는 하루 종일 주가를 확인하고 매매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시장이 사람의 시간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를 시장이 점령하는 형국이다.

투자가 아니라 도박을 부추긴다

건전한 투자는 기업을 공부하고 성장 가능성을 판단한 뒤 오래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서는 기업의 실적보다 유튜브 방송과 온라인 소문, 정치인의 발언과 각종 테마가 주가를 움직인다.

정치인과의 학연·지연이 거론되면 정치 테마주가 뛰고, 정책 한마디가 나오면 관련 종목이 무더기로 급등한다. 투자자는 사업보고서보다 ‘내일 오를 종목’을 알려준다는 방송을 더 열심히 본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다. 합법의 외피를 쓴 도박에 가깝다.

빚을 내 투자하고, 손실을 만회하려 더 위험한 종목에 돈을 거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처음에는 여윳돈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생활비와 전세자금, 노후자금까지 집어넣는다.

금융회사와 일부 방송, 온라인 플랫폼은 끊임없이 매매를 부추긴다. 투자자가 자주 사고팔수록 증권사와 플랫폼은 돈을 번다. 손실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거래시간은 개인투자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충분한 금융지식과 절제력이 없다면 더 오래 거래하고 더 자주 손실을 볼 가능성도 커진다. 거래시간이 길어진다고 좋은 기업의 가치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동적인 단기 매매와 시세 추종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국민연금, 증시 부양기금 아니다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국민연금을 더 동원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증시 부양기금이 아니다.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평생 납부한 노후자금이다. 특정 시기의 주가지수를 떠받치거나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와 고액자산가가 더 많은 이익을 얻고, 떨어지면 국민연금이 떠받치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이익은 개인이 가져가고 손실은 국민이 나눠 부담하는 꼴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주가지수를 경제정책의 성적표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수 상승을 약속하고 정책자금으로 시장을 달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 심리를 더 키울 수 있다.

정부가 보장해야 할 것은 주가 상승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이다. 주가조작과 내부자거래, 허위공시와 불법 공매도를 엄벌하고,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처벌로 잃는 것이 훨씬 많게 해야 한다.

시장이 공정하지 않은데 거래시간만 늘리는 것은 투자자에게 더 넓은 운동장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더 긴 불안과 위험에 노출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노동으로 미래 꿈꿀 수 있어야

단기 매매보다 장기투자가 유리한 제도도 필요하다. 장기 보유에는 세제 혜택을 주고, 거래를 부추기는 과도한 알림과 선정적인 투자정보는 규제해야 한다.

금융교육도 ‘어떤 종목을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가치와 분산투자, 손실 가능성, 빚을 내 투자하는 일의 위험성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투자자가 자주 사고파는 것이 금융 선진화는 아니다. 좋은 기업을 찾아 오랫동안 함께 성장하고, 기업은 투자받은 자금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책은 노동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다. 청년에게 투자를 권하기 전에 일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와 합리적인 임금,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가 보장되지 않는 한 투기 열풍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식시장을 닫자는 말이 아니다. 일해서 번 돈을 좋은 기업에 장기간 투자하고, 그 성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주식은 노동을 대신하는 일확천금의 수단이 아니라 노동의 결실을 지키고 키워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아침 8시 출근길부터 저녁 8시 식탁에 앉을 때까지 직장인들이 주식 주문과 시세 알림에 매달리는 모습은 활기찬 자본시장의 증거가 아니다. 노동에 집중해서는 미래를 마련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청년은 급등주를 찾고, 노인은 노후자금을 걸고, 직장인은 일과를 쪼개 시세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종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였던 시장은 이제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통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온 국민의 하루와 정신을 주가 몇 칸의 등락에 맡겨놓고 이를 투자 선진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주식시장은 사람을 일터와 가정에서 끌어내는 투기장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미래를 지켜주는 자본시장이 되어야 한다. 거래시간과 지수를 늘리는 것보다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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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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