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아흔다섯 어머니에게 배운 존엄의 의미…”내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졌니?”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투표소에서 필자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며칠 전, 만 아흔다섯 살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어머니는 이제 혼자 걸을 수 없다. 화장실에 가실 때도 보호사의 부축을 받아야 한다.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하지만 투표만큼은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투표소에 들어가실 때만큼은 표정이 무척 진지하셨다.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며칠 전 아내가 내게 말한 것이 생각났다. “시간 나면 어머니 모시고 미용실에 한번 다녀오세요.”

머리를 다듬기 전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머니의 뒷머리가 제법 길어져 있었다. 평생 어머니는 미용실을 거의 다니지 않으셨다. 젊은 시절부터 손수 머리를 다듬으셨다. 자식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느라 자신의 머리에 돈과 시간을 쓰는 법이 없으셨다.

어릴 적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거울 앞에 서서 가위를 들고 머리를 다듬곤 하셨다. 미용실에 가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자식들 학비와 생활비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늘 인색하셨다.

미용실에서 황건 교수 모친이 머리 손질을 받고 있다. 왼쪽 뒤에서 아들이 이 장면을 담고 있다.

그날은 동네 상가 3층에 있는 미용실에 휠체어를 밀고 들어갔다. 미용사는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길게 자란 뒷머리가 잘려 나가자 인상이 한결 깔끔해졌다. 얼굴도 밝아 보였다. 실제보다 몇 살은 젊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작 모시고 올 걸.’

그날 밤이었다. 주무시기 전에 워터픽으로 치아를 닦아드리려고 세면대 앞에 모셨다. 어머니는 벽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나를 부르셨다. “아범아.” “왜요?” “내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졌니?”

이날 낮 미용실에 다녀온 후 짧아진 머리의 황건 교수 모친 김경선 여사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어머니, 오늘 낮에 미용실 가셔서 자르셨잖아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떠올렸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다. 젊음도 사라진다. 건강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정함마저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아흔다섯 살의 노모에게 필요한 것은 젊음을 되찾는 일이 아니었다. 주름을 없애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머리를 단정히 다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을 젊음과 같은 뜻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름다움은 젊음보다 존엄에 더 가까운 말인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른 사실조차 잊어버린 어머니는 그날 밤 거울 앞에 서 계셨다. 짧아진 머리카락을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단정해진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기억을 잃어갈 수는 있어도, 존엄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날 밤 어머니는 여전히 아름다우셨다. 아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다우셨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