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IT-과학칼럼

전차에서 전기차까지…장비의 성능은 사람을 지키는 능력이다

첨단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기술이라 할 수 없다. 장비는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생명은 다시 만들 수 없다. 전투력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며, 무기의 진정한 성능은 그 안에 탄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유비무환과 항재전장은 평소의 전투준비태세에 좌우된다.-본문에서 <생성형 AI 이미지>

군지휘관 시절 나의 머리카락을 새 하얗게 만든 것은 전투가 아닌 화재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대장 시절 육군 규정상 표준 기동 요망거리는 600킬로미터였는데 내가 지휘했던 대대는 육군 기준의 두 배 이상인 1200km를 기동해야 했다. 대대장 재임 33개월간 3600km를 기동했다. 그 당시 노심초사한 것은 화재로 부하들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 보다 장비 성능이 월등하게 좋아졌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 출범 후 하나회를 숙청할 당시 나는 미 3기동군단과 팀스피리트를 했는데 당시 우리의 전차를 보고 미군들은 자기들 패튼전차 박물관에 있는 전차라고 놀렸다. 걸프전 직후의 미군은 자신감에 넘쳐났다. 이후 우리군에도 K계열장비가 보급되면서 기동장비에 대한 걱정은 해소되었다. 중간에 어거지로 M계열장비도 기동간사격을 위해 도로를 구레이다로 밀고 기동간 사격훈련을 하는 억지쑈도 있었지만 전투상황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전기차와 전투차량 화재가 던지는 교훈

전기자동차 화재 사고 소식이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전기차는 친환경 기술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안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과충전이나 내부 단락이 발생하면 ‘열폭주(thermal runaway)’라는 현상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고온 화재로 이어진다. 화재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차량 내부에 있던 탑승자가 탈출하지 못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왜 자동차에는 자동소화장치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대부분의 차량에는 휴대용 소화기를 비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사고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차량을 멈추고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기가 쉽지 않다. 충돌 사고나 급격한 화재 확산 상황에서는 사람이 대응하기 전에 이미 위험이 통제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까지 등장한 시대다. 그러나 화재 대응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맡겨져 있다. 전기차 시대에는 차량 내부 센서가 온도 상승이나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즉시 소화분말이 분사되는 자동 화재 대응 시스템을 기본 안전장치로 장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차 지휘관이 겪은 화재의 긴장

화재 문제는 군사 장비에서도 오래전부터 중요한 과제였다. 필자는 과거 전차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차 화재 문제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당시 전차는 고출력 엔진을 사용했고 냉각을 위해 배기구가 엔진실 위로 돌출된 구조였다. 조금만 과열되거나 불꽃이 튀어도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기동 중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전차의 구조상 승무원이 화재를 즉시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앞서 달리는 전차 승무원은 자신의 차량에 불이 난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주행하고 뒤따르는 차량이 연기나 화염을 보고 경고하거나 보고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전차 화재는 단순한 장비 손실 문제가 아니라 승무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래서 대대장 시절 필자는 늘 마음을 졸이며 지휘해야 했다. 화재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과 책임감은 지휘관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지속적인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빠르게 하얗게 세어 버렸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지금도 백발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휘관에게 화재 사고는 단순한 장비 관리 문제가 아니다. 승무원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장비를 잃는 것보다 사람을 잃는 것이 훨씬 더 큰 비극이다.

사람을 지키는 장비가 전투력을 만든다

자동소화장치의 중요성은 실제 사고에서도 확인된다. 2017년 발생한 K9 자주포 화재 사고에서는 세 명의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2020년 승진훈련장에서 발생한 K1A2 전차 포탑내부 화재 사고에서는 자동소화장치가 작동하여 승무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두 사건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동소화장치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핵심 안전 장치라는 점이다. 우리 군의 최신 전차인 K2 흑표 전차에는 자가진단기능까지 보유한 4세대 자동소화장치가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야전에서 운용되는 K1 계열 전차는 여전히 40년전에 개발된 자체 진단기능이 없는 3세대 장비를 사용함으로 소화약제의 충분량 화재 탐지기 등 주요부품들의 정상 동작 유무에 판단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창정비나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할 때 최신 자동소화 장치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타이어를 부착한 전투장비로 인해 적 화염병 공격에 취약하여 외부타이어 화재 시에도 화재를 진압하는 장비를 미군들은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도 우리군이 사용중인 타이어를 부착한 전투장비에도 고려해야 될 시점이다.

이 교훈은 민간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는 시대에 화재 대응을 운전자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배터리 모듈에 자동 화재 진압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을 안전 기준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첨단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기술이라 할 수 없다. 장비는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은 다시 만들 수 없다. 전투력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며, 무기의 진정한 성능은 그 안에 탄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유비무환과 항재전장은 평소의 전투준비태세에 좌우된다.

지금은 100 km이상 장거리 이동은 M977 HEMTT대형 군용전술트럭이 중장비를 실어나른다고 하니 후배 전차지휘관들은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승무원 부족이라는 또다른 문제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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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전 1기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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