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는 국제질서의 파괴자인가, 재설계자인가? 트럼프는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회피해 온 질문을 강제로 꺼내 놓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한국의 전략적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최근 일부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의 회귀”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하나의 전제, 즉 트럼프를 국제질서의 파괴자로 본다는 관점 위에 서 있다. 만약 이 전제가 흔들린다면 그의 행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는 질서를 파괴하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 작동하지 않는 질서를 드러내고 재구성하려는 전략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쓴 저서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를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표현은 거칠지만, 그는 동맹을 ‘시혜의 관계’가 아니라 ‘거래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트럼프를 기존 미국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매버릭, 즉 이단자로 바라본다. 트럼프는 미국이 그동안 안보를 책임져 왔으니 이제는 동맹국들도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펼친다.
위선적 안정의 종말
냉전 종식 이후 30년간 국제질서는 자유주의와 규범의 언어로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일관되게 힘의 논리가 작동해 왔다. NATO의 동진, 유고 공습, 이라크 전쟁, 리비아 정권 붕괴, 시리아 내전 개입은 모두 인권과 국제규범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힘의 비대칭이 낳은 결과였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논리는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세련된 언어로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국제관계를 힘의 정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특징은 바로 이 포장을 벗겨낸 데 있다. 그는 기존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환상을 깨고, 국제정치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야만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직한 현실 인식의 복귀다. 문제는 힘의 논리 자체가 아니라, 그 힘을 감추며 도덕적 우월감을 유지해 온 위선이었다.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국제관계를 도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그린란드와 베네수엘라 압박의 전략적 의미
그린란드 문제를 단순한 ‘부동산 집착’으로 치부하는 해석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린란드는 북극 항로 통제, 미사일 조기경보, 중국의 북극 진출 차단, 희토류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요충지다. 미국이 이를 전략 자산으로 직접 관리하려는 움직임은 패권국의 본능적 대응이지, 변덕이나 충동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우주항공전에 대비한 ‘골든돔’ 구축 과정에서 그린란드를 최적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권국에 대해 영구 임대나 장기 사용 계약을 맺는 방식도 가능함에도, 노골적으로 “내놓으라”거나 “팔라”고 압박하는 방식이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면, 1870년대 알래스카와 그린란드 구매를 의회에 설득했던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의 통찰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서반구 진출을 차단하는 전략적 후방이다. 미국이 이를 방치할 경우 중남미 전체가 반미 블록으로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의 접근은 무모한 개입이라기보다 미국의 전략적 후방을 재정렬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의 유전을 장악함으로써 에너지 가격에 대한 안정적 통제를 도모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NATO의 균열을 트럼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분석 역시 충분하지 않다. 유럽은 수십 년간 방위비를 줄이며 안보는 미국에 의존했고, 경제는 중국과의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왔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 속에서 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트럼프는 이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동맹은 도덕적 연대가 아니라 상호 기여의 계약이며, 계약이 불균형하면 재협상이 요구되는 것은 국제정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국에 기회를 주는가, 압박을 시작하는가
트럼프의 행보가 중국에 기회를 제공한다는 분석 역시 단선적이다. 서반구 정리, 에너지 자립 강화, 공급망 재편, 동맹 재정의는 모두 미·중 장기 경쟁을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동시다발적 관리가 아니라 우선순위 집중과 구조조정이다. 이는 오히려 미국이 향후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제 조건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대만 침공 여부가 시진핑 주석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말하지만, 중국은 이미 대만에 대해 방어가 가능한 수준의 무기 체계를 판매해 왔고, 자국의 경제·정치 상황상 대만 침공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일본과의 동맹, 즉 한미일 협력 틀 속에서 대만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전략적 시선은 이미 남중국해로 이동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휘하는 북한군은 주요 전쟁 상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전쟁은 군수로 수행되는데, 러시아에 탄약을 지원한 북한은 전투 예비량을 채우는 데도 급급한 상황이다.
한미동맹의 진짜 시험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 역시 트럼프의 의도보다 한국의 전략 부재를 돌아보게 한다. 미국 국가안보전략 문서에서 북한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억지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동맹국에게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역량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동맹의 성숙을 요구하는 신호다.
불편한 방식의 정상화
트럼프의 방식은 거칠고 불편하다. 비유적으로 말해 그는 양털을 거칠게 다루어 깎지만, 양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정치는 본래 편안한 영역이 아니다. 그가 던지는 문제는 국제질서의 파괴가 아니라, 기존 질서가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직시하라는 요구다. 안정의 언어로 위선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인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인지는 이제 각국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트럼프는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회피해 온 질문을 강제로 꺼내 놓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한국의 전략적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