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신건호 칼럼]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포모’와 ‘조모’를 넘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적토마는 목적을 향한 추진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달릴 힘이 있어도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지 못하면 그 에너지는 쉽게 고갈(枯渴)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방향을 정하는 힘은 자기희생에서 나온다.

‘붉은 말의 해’ 불(火)의 양기와 말(馬)의 역동성이 만나 새 각오를 다졌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2025년을 돌아보면 자기 눈의 들보에서 파생된 정치적 갈등이 ‘극단(極端)’을 확산시켰고 개인에게까지 피로감을 남겼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포모(FOMO) 증후군’, 혹은 그 반대 지점의 ‘조모(JOMO) 증후군’에 빠져야 했다.

대세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 지난해 우리는 이 ‘포모(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싶다. ‘매진 임박’ 같은 초조함에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심리를 구매로 유인하는 마케팅 전략과도 같은 ‘포모’ 증상이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포모의 조급함은 타인의 행동을 비판 없이 따라가는 추종 심리로 이어져 “줄이 길면 나도 서야 할 것” 같은 ‘펭귄 효과’로 번졌다. 그래서 누군가의 선동에 ‘뭔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판단은 흐려지고 선택은 불안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낳았다. AI 돌풍에 따른 ‘뒤처짐’에 대한 불안, 급등한 집값을 놓치지 않으려 대출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영끌’ 현상도 결국 ‘포모’의 사회적 버전이다.

이런 ‘조급함’은 SNS의 발달로 가속도가 붙었다. 분신(分身)이 돼버린 휴대폰으로 타인의 성공이나 삶의 패턴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면서 비교는 ‘일상(日常)’이 되고 불안은 ‘습관’이 되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미국의 오만함에서 보듯, 정보가 넘쳐날수록 강자의 ‘저돌(豬突)’은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여기서 파생된 상대적 박탈감은 분노와 불안을 낳고 있다.

‘포모’의 흐름과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조모(Joy of Missing Out)’다.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참여하는 활동을 오히려 ‘놓침’으로 즐기는 태도다. ‘조모’는 비교를 부르는 행위, 즉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거나 정치적 갈등, 대인 관계를 멀리하면서 순간의 ‘나’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이는 단절(斷絕)의 위험이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포모’와 ‘조모’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쪽은 욕망의 ‘과잉’이고, 다른 한쪽은 단절이 주는 ‘위험’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를 알아차리는 힘, ‘중도(中道)’의 통찰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도’란 흔히 중간지점, 혹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절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나 그룹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붓다가 말한 중도는 훨씬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 붓다는 빠져서는 안 되는 두 극단인 ‘쾌락의 탐닉’과 ‘자기학대의 고행’을 경계하면서, 그 사이에 ‘지혜의 길’을 발견하는 것을 ‘중도’라 했다.

이는 단순히 둘의 중간을 걷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나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말한다. 아무튼 중도의 8정도(八正道) 가운데 현대인에게 절실한 것은 ‘정념(正念)’으로, “지금 내 마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는 힘”이다. 이 힘이 작동할 때 우리의 마음은 ‘자극의 과잉’에서 빠져나와 생각과 감정이 제자리를 되찾기 시작한다.

따라서 경쟁자를 향한 ‘무조건적 반대의 충동’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는지를 통찰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포모’에도 ‘조모’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적토마는 목적을 향한 추진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달릴 힘이 있어도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지 못하면 그 에너지는 쉽게 고갈(枯渴)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방향을 정하는 힘은 자기희생에서 나온다.

“자기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는 인요한 전(前) 의원 같은 마음가짐에서 오는 결단, 즉 삶의 방향은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는 ‘통찰력(洞察力)’에서 결정된다. 이는 붉은 말의 에너지가 강조되는 해(年)일지라도 자기 기운을 잘 다스려야 “비로소 균형을 잡는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버나드 쇼)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점검하고 스스로에게 “응답하라”고 묻고 답해야 한다. 자기 삶을 ‘통찰’하라는 이야기다. 이 질문의 근원은 “지금 무엇에 휘둘리고 있는가?”이다.

이는 ‘포모’의 불안에서 벗어나고 ‘조모’의 놓침과 방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붓다가 말한 중도의 마음을 갖는 시작이기도 하다. 이 같은 출발은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제시한 레디코어(Ready-core)의 삶, 즉 “불확실성 시대에 항상 준비된 라이프스타일”을 가치로 삼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더 나아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24살에 수도자의 길을 택한 조 마리 가르멜 수녀(54)는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발을 내딛어야 그다음에 갈 발자국만큼 앞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힘들어도 다음 발자국만큼만 보이면 ‘이 길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삶의 원리가 됐다”고 말했다.

2026년 새해, 가르멜 수녀의 삶처럼 각자의 선한 발걸음이 고흥의 우주선과 같은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는, 그러면서 지나친 치우침은 배려의 마음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래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2026년이 되기를 바란다.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전무, 전 kbc광주방송 보도국장, '언론보도와 명예훼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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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견

  1.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양극단으로 치달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용의 삶은 우리의 의식을 자유롭게 하며 넓게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줍니다. 제발 포모니 조모니 이런 삶을 지양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양심있는 삶으로 풍성한 2026년 되기 바랍니다.

  2.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나’가 되려고 노력해야겠어요.

  3. 내 삶의 완벽함보다는 빈칸을 남겨두는 …

    그래서 칼럼의 마지막 글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2026년이 되면 우리의 일상에 의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힘을 잃지 않는 사회가 되었음 한다.
    중도를 지키는 지혜의 길을 걷기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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