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크 루소(1712~1778)의 <고백록>은 서구 근대 자서전 문학의 출발점이자, 인간 내면에 대한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기록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부끄러움조차 숨기지 않고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시아엔>은 루소의 원전을 바탕으로 그의 유년기부터 철학자로서의 성숙, 글쓰기를 통한 구원, 그리고 고립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10회로 나누어 싣습니다. 연재를 통해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고백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 인간의 선언을 마주하게 됩니다. <편집자>
루소의 출생과 청년기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공으로 일하던 아버지 아이작 루소와 평민 어머니 수잔 베르나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루소 출산 닷새 후 출산 후유증으로 숨졌다. 이때 콘스탄티노플의 직장에 있던 아버지는 제네바로 급히 귀환했으나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과 앞으로 편부 슬하에서 자라게 될 불쌍한 아들을 탄식과 경련이 섞인 포옹으로 슬픔을 삭여야 했다. 이에 대해 루소는 “나의 출생은 어머니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내가 겪게 될 불행 중 첫 번째 불행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10세 땐 아버지마저 가출해 숙부에게 맡겨져 여러 직업에 종사하며 각지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1724년부터 루소는 법원 서기가 되기 위한 직업 교육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그는 1728년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사제가 될 의향이 없어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음악 쪽으로 방향을 튼다.
1730년 스위스 로잔으로 이주하여 가명으로 악사로 일했으며, 이듬해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 후 리옹을 거쳐 샹베리 등지에서 생활했다. 1732~40년 음악에 몰두하고, 많은 독서를 하며 다방면에 걸쳐 교양을 쌓은 그는, 1741년 계몽주의자이자 백과전서파인 드니 디드로, 장바티스트 르 롱 달랑베르,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야크 등과 파리에서 만나 친교를 맺었다.
루소는 여러 귀족 부인과 사귀었지만, 1745년 하녀 마리 테레즈 르 바쉬에르와 23년간의 동거 끝에 결혼했다. 문제는 루소가 그녀와의 사이에 낳은 5명의 아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이다. 이유는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 양육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위대한 교육이론가라는 명성을 받은 그도, 자신의 자녀 양육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