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8일 필자는 천타치아나 씨에게 김승력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여하는 ‘익산시 외국인 정책 방향 설정 세미나’에 동행하도록 안내했다. 고려인에 관심을 보인 전주장동교회 김태영 목사와 고려인 연구자도 초대했다. 한국생활 14년 만에 처음으로 안산을 벗어나 한국의 다른 도시를 찾은 천타치아나 씨는 김승력 센터장의 차를 타고 익산시를 다녀갔다. 이후, 그녀는 12월 8일 익산시 왕궁면 성광교회 고려인 세미나에서 “우리 가족의 한국생활 14년” 주제로 발표했다. 또 마침 고려인 이주 160주년 행사(연해주 아리랑가무단의 익산 원광대 공연, 12월 9일)로 전주한옥마을(12.8일)에서 숙박한 아리랑가무단 통역자로 전주도 방문했다. 그녀로서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지난 6월 17일 오전 10시 12분. 천타치아나 씨가 카톡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저 합격했습니다. 69점” 그렇지 않아도 요양보호사 시험이 6월 16일이라 결과가 궁금했던 차였다. 6월 11일 청주시(청주시 외국인주민 지원센터)가 수행 중인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과정’ 고려인 수강생을 모집하는 안내문이 나와서 더 그랬다. 2025년부터 국내 체류 재외동포의 한국 정착을 위한 ‘지역별 재외동포 정착 지원사업’(2025년 상반기)에 선정되었으나, 지자체가 추경을 신청해 6월이 되어서 시작되고 있었다. 청주 지역의 고려인 동포들이 요청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재외동포청 내부 심사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 동포들이 320시간(이론 240시간, 실습 80시간)의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천 타치아나 씨의 합격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다. 그녀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이 필요한데, 고령화 한국사회에서 요양보호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비로 8주간 이론과 실습수업을 마치고 단번에 합격한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어 통역 수준인 그녀에게도, 수업은 대단히 어려웠다.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교재 내용을 번역해 놓고 수업에 임했고, 또 수업 후에 복습도 해야 했다.

왜, 한국정부와 지자체는 ‘귀환’ 동포, 특히 고려인 가족에 관심이 적을까
2022년 10월 27일 아시아발전재단은 국회의원 엄태영, <아시아엔>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제7 간담회실에서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2(동포가족) 사업과 고려인 콜호즈”(고려인마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필자의 발제는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유형2)과 인구감소지역, ‘고려인동포 콜호즈(집거지)’가 가져올 효과(效果)는 무엇인가?”였다. 즉, 인구감소지역에 ‘고려인 콜호즈’(고려인마을)를 조성하자는 주장이었다. 가족을 동반한 고려인 동포가 정착하면 지역의 경제인구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학교도 살아날 수 있음을 소개했다.(<아시아엔> 2022-10-29 “[토론회 후기] 인구감소지역에 ‘고려인 콜호즈’가 조성된다면”)
3년이 지나가는데, 아쉽게도 “고려인 동포와 상생 발전하는 제천!”을 강조해온 충북 제천시만이 현재 270여 명의 고려인이 완전 정착하고 450여 명이 제천 이주를 기다리고 있다. 왜, 다른 도시는 외국인주민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는 가족 동반 동포를 외면하고 있을까? 아니 고려인 동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 듯하다. 필자는 그동안 전북자치도 김제, 익산, 전주 외 여러 지방 도시를 방문해 열심히 설명했다.
때마침 2025년부터 재외동포청이 사실상 ‘고려인 동포의 정착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상반기 공모 결과 현재 12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미 연간 2억 원 이상의 고려인 지원사업을 시행 중인 광주광역시와 안산시를 제외한 다른 지자체는 모두 추경을 반영해 수행 중이다. 국비 매칭 사업으로 지자체가 추경을 올리면 100% 가능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2025년 하반기 공모 사업이 연기되어 7월 4일 마감이다. 89개 인구감소지역과 18개 인구감소관심지역 지자체뿐만 아니다. 지역의 거점도시 가운데서도 지역소멸시대 가족을 동반한 귀환 동포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1(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고려인과 조선족(중국) 동포는 가족을 동반하고 있어 경제 생활인구의 증대에서 그 효과가 3~4배에 이른다.

유치원(幼稚園)이 노(老)치원 된 한국사회 고려인도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게 해야
6월 18일 오후 천타치아나 씨와 함께 양재동 아시아발전재단을 찾았다. 재단이 주최한 (제1차) 고려인 제과제빵 훈련(2025.1.2.~2.28)에 한국어가 서툰 고려인 청소년들과 한 조를 이루어 훈련을 받고 통역도 감당했던 천타치아나 씨가 (제2차) 온라인(러시아어) 면접(오후 3~5시)에 참여하기로 해서였다. 고려인 제과제빵 훈련 기회를 준 아시아발전재단 조남철 상임이사와 천타치아나 씨에게 기념사진을 남기자고 요청했다.
재단에 도착하기 전에 천타치아나 씨와 오찬을 나누면서 지난 4월부터 8주에 걸친 요양보호사 교육 경험을 들었다. 예상한 바대로였다. 고려인은 한국인 수강생과 별도로 통역이 수반된 특별반을 편성해야 함을 천타치아나 씨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이제까지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조선족 중국동포들이 식당과 가사도우미, 간병인은 말할 것도 없이 요양보호사로 일해왔다. 그런데 중국동포들 자신이 고령화로 시설에 들어가고 있다. 생활 한국어를 익힌 고려인이 식당과 간병(看病) 일을 시작했다. 나아가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요양보호사를 희망하는 고려인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천타치아나 씨는 ‘고려인 요양보호사 1호’로 고려인 동포들에게 본인의 경험을 알리고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벌써 2024년 8월 익산시 행사에서 만난 전주장동교회 김태영 목사가 천타치아나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유치원(幼稚園)이 노(老)치원으로 간판을 바꾸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지방은 더더욱 절실하다. 인구감소, 지역소멸시대 고려인 동포의 지방 도시 정착은 고려인이 바라는 양질의 자녀교육에도 유리하다. 지역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려는 고려인 동포 지원사업은 재외동포청의 ‘지역별 재외동포 정착 지원사업’으로 더 확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