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백 선배께 드리는 후배의 고언…임재훈 전 의원의 공개서한

이 글은 임재훈 국민의힘 안양시 동안구갑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SNS를 통해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입니다. 최근 안 장관의 방위병 복무 당시 군무이탈 의혹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을 계기로, 같은 시기 방위병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담았습니다. 본문은 필자의 견해이며, 아시아엔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문을 맞춤법과 띄어쓰기 외 변형 없이 그대로 옮깁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임재훈 국민의힘 안양시 동안구갑 당협위원장, 20대 국회의원] 안규백 형님! 건강과 평안을 소망합니다. 41~43年前 방위병 복무와 관련해서 전국민적인 우려와 조소가 증폭되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시점이 1995年 10月이었습니다. 형님은 불민한 저를 특히 주목하고 가까이 지냈습니다. 저도 1986年 2月 17日~1987年 8月 6日(18개월) 방위병(52사단 내곡동 소재 21연대 특수기동대대 2중대)으로 근무했기에 서로 동질성을 확인하고 유별나게 가까이 지냈습니다
※ 저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공채 1기로 정치권에 진입했습니다. 이후에 공채는 없어졌습니다.
※ 1986年부터 방위병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늘어났습니다.
※ 당시 방위 동기 7名과 40년째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흔치 않은 모임입니다.
우리가 다른 선후배 및 동기 당직자들과 달리 유달리 친하고 신뢰하는 관계였다는 점은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어떤 분들은 형제처럼 지낸다고 질시 아닌 질시가 대단했었습니다. 지금은 정파를 달리하거나 정치판을 떠났지만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는 수십명의 선배님들이 인정합니다.
※ 언제부턴가…아마 2016年 이후부터 소원해졌습니다. 상당수 선배님들께서 1,800여명이 참석했던 작년 저의 아들 결혼식에 형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의아해 하셨습니다. 祝文/祝電도 없었지만 물론 이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석하거나 축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편, 형님과의 추억을 소환하고자 1995年부터 작성한 수첩을 꼼꼼히 봤습니다. 대표적인 사연 10가지만 ‘최대한 완곡하게 기술’하고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수첩은 일기입니다. 다만, 암호화해서 분실해도 누구라도 읽을 수 없습니다.
※ 민감했던 기억은 일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1. 1995年 12月이었습니다. 당시에 형님은 원내기획실(행정실)에 근무했습니다. 형님은 두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절대로 아부하지 말고 정직하라는 당부였습니다. 당시에 특정 선배 당직자를 지목하면서 그분처럼 생활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무척 고마웠습니다.
※ 제가 김한길 前 대표를 모실때 ‘정직’을 기본 가치로 삼았습니다.
2. 조직국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면서 야간작업을 자주 했었습니다. 형님은 漢字에 매우 능하셨고 보고서는 주로 제가 작성하면서 명콤비로 유명했습니다. 당시에 조직위원장이셨던 윤철상 前 국회의원과 최재승 前 국회의원 그리고 故 박실 前 국회의원이 따로 불러서 격려해주시곤 했습니다.
※ 지금 경기도에서 정무직으로 근무하는 C 입당동기도 부단히 문서 작성을 했습니다.
3. 형님이 2008年 18代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시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 부서 및 동일한 환경에서 콤비를 이뤘습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숱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형님은 유난히 초저녁 잠이 많았고 사시사철 과일이 떨어지면 안되었기에 관련한 추억이 많았습니다.
4. 2003~2004年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갈라지고 새천년민주당이 폭망한 이후에 우리는 잠시 야인이 되었는데, 이때 형님은 고건 前 국무총리를 돕고자 애썼습니다. 저는 일정 시간이 지나서 黨에 복귀했는데 형님은 故 박상천 前 대표가 당대표가 되시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야인으로 있으면서도 유달리 자주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형님은 단 하루도 예외 없이 일정이 빡빡해서 야인의 한가로움을 즐길 여유가 없다고 푸념 아닌 푸념도 하셨습니다.
5. 故 박상천 前 대표가 당시 黨權을 잡도록 형님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오랜 시간 야인 생활을 탈피하기 위한 집념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형님은 무엇보다 ‘박상천’이라는 인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이끌고 故 박 前 대표의 개인 사무실이 있던 서여의도 ‘한서빌딩’ 12층에서 인사까지 시켜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셋이서 숱하게 만났습니다. 동여의도 한양아파트 H동 F층 자택에서도 종종 뵈었습니다. 故 박 前 대표는 워낙 애연가였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 연기로 괴로와했지만 참아냈던 형님이 눈에 선연합니다.
※ 故 박 前 대표는 18代 국회 이후에 신반포로 이사하셨고 2015年 8月에 소천하셨습니다.
※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1975年에 입주해서 그런지 1, 2, 3, F, 5, 6층으로…..표기했습니다. 곧 재건축에 돌입합니다. 박지원 의원도 한양아파트에 거주하십니다.
※ 故 박 前 대표 자택엔 애연가답게 크리스털 재털이가 아닌 김칫독 만한 옹기항아리 재털이가 앞베란다에 있었습니다.
6. 1997年 7月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 공항에 착륙 중 추락하여 故 신기하 원내총무 등 수백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김대중 총재의 지시로 故 유재건 의원, 임채정 의원, 박광태 의원, 故 김명규 의원을 모시고 통역으로 괌에 출장갔습니다.
※ 귀국할 때는 사이판을 경유했는데 上記 네 분이 용돈을 거하게 주셨고 나중에 부서 회식비로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1$에 800원이었습니다. 아득한 시절입니다. 그러다가 5개월 후에 외환 위기가 닥쳤습니다.
※ 당시 현장에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민경욱 前 의원(당시 KBS 기자)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갑자기 출국했는데 형님을 급하게 만났습니다. 형님이 故 신기하 원내총무와 워낙 가깝게 지내셨기에 시종일관 애통해 하셨고 잘 다녀오라고 소정의 여비도 챙겨주셨습니다.
7. 형님은 저의 1995年 입당 동기들을 끔찍이도 챙겨주셨습니다. 당시에 정식 급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형님이 수시로 밥을 사셨고(주로 대하빌딩 지하 식당) 저는 김밥가게를 하셨던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김밥을 가끔 가져와서 나누었습니다. 그때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당직자들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의 친구(저는 이모님이라 부릅니다)가 4평짜리 김밥가게를 헐값에 팔았습니다. 사실상 거저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열심히 장사해서 그 보답으로 1995年에 잠실 1단지(야구장 건너편) 주공아파트로 갚았습니다. 지금은 최소 30억~40억을 호가합니다. 그 이모님의 사위가 현재 K 국회의원(국민의힘)입니다.
8. 형님은 3형제를 두었는데 참으로 반듯하게 성장했습니다. 훗날 해병대에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신촌에서 막내 아들이 돌잔치 할 때 당사를 옮겨 놓은 것처럼 대단했습니다. 형님의 후덕함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형님을 싫다고 하는 당직자가 없었습니다.
※ 一例를 들겠습니다. 저와 입당 동기였던 J 現 민주당 당직자는 형님이 처음 국회의원에 되었을 때 축하의 맘으로 자신의 남편의 넥타이를 고르듯이 정성스럽게 구매해서 선물했던 기억도 납니다.
9. 형님의 친구가 거금을 빌리고 갚지 않고 잠적 아닌 잠적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워낙 거금이라 반드시 잡아낼 요량이었는데 특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다소 흐른 후에는 오죽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체념하면서 그 친구분에게 측은지심을 가지셨던 형님이었습니다
10. 다독가였던 형님은 가끔 저에게 책 선물을 하셨습니다. 술을 거의 한모금도 못하셨기에 시간 활용을 독서에 알뜰하게 할애했습니다. 후배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지금은 해외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K 입당 동기가 형님에 대한 존경심을 종종 발현했습니다.
※ 저도 형님의 영향 때문인지 4천여권의 장서를 갖고 있다가 6년 전에 살고 있는 아파트를 수리하면서 상당수는 버렸습니다. 이렇듯 형님은 인간적으로 존경받기에 충분한 분 입니다. 지금은 정파를 달리하지만 그 마음은 동일합니다. 형님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사람 좋은 규백이 형으로….’
그런데 형님의 방위병 군무이탈 ‘의혹’으로 자칫 평생을 거쳐서 쌓아왔던 명예가 일순간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도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형님만이 아실테니까요.>
형님의 당시 상황에 대해 모를 수 밖에 없는 대변인을 통해서 입장을 표명하시지 말고 형님께서 직접 결자해지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형님께서 1995年에 저에게 당부하셨던 것처럼 국민들께 정직하게 입장을 직접 표명하시면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국민들은 어머니의 품처럼 안아줄 겁니다.
형님은 23代 국회에도 진출하여 최다선 의원이 되시고 더 큰 정치를 도모하시고자 한다면 이번 사태를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 간주하시고 꼭 명예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거듭 국민들께 직접 입장을 정리해서 진실하게 표명하시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시면 됩니다.
Vice versa 5選 국회의원 및 대한민국 국무위원의 명예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불명예의 대명사로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게 되실 겁니다.
저는 여전히 형님을 아주 많이(Utmost)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