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영웅루만금(長使英雄淚滿襟)…별보다 먼저 진 십자가의 기수들

얼마 전 의사수필가협회에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박경석 장군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중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기수가 330명이었는데, 전선에 처음 나간 날 86명이 전사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나와 두 명의 의사는 그 노병의 베트남전 참전을 기리며 ‘맹호들은 간다’를 불렀다. 나는 그 숫자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첫날에 86명.
전쟁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숫자의 의미를 알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의 목소리에서 들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전우들의 이름이었다. 최근 읽은 자료를 보니 그의 증언은 개인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육사 생도 1·2기는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포천~한강~판교 일대에서 축차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151명(생도 1기 65명, 생도 2기 86명)이 전사하고, 63명이 실종됐다.
육사 생도 1기와 2기, 모두 595명 가운데 245명이 6·25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생도 1기의 전사·실종률은 48%, 생도 2기는 45%였다. 네 명 가운데 거의 두 명이 돌아오지 못한 셈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생도 2기의 사연이다.
1950년 6월 1일 입교한 대한민국 최초의 4년제 육사 생도들은 겨우 24일간 교육을 받은 뒤 소총을 들었다. 장교가 아니라 한 명의 보병으로 전선에 투입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훗날 “후방으로 철수시켜 장교로 임관한 뒤 활용했더라면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장교가 되기 전에 먼저 군인이 되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미국 웨스트포인트 1950년 졸업생들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으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전사했고,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훗날 장군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군에서는 어떤 기수를 ‘별의 기수(Class of Stars)’라고 부른다. 유난히 많은 장군을 배출한 기수다. 그러나 어떤 기수는 별보다 십자가가 더 많다. ‘십자가의 기수(Class of Crosses).’

문득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부르던 찬송가가 떠올랐다. Stand up, stand up for Jesus, Ye soldiers of the Cross. “너, 십자가의 군병아, 주 위해 일어나.”
그 가사는 신앙을 노래하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라를 위해 스러져 간 젊은 생도들 역시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진 군병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두보가 무후사에서 제갈량을 추모하며 지은 ‘촉상(蜀相)’이다.
“出師未捷身先死 長使英雄淚滿襟”(군사를 일으켜 뜻을 이루기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적시게 하는구나) 두보는 제갈량을 노래했지만, 이 마지막 두 구절은 시대를 넘어 모든 전몰한 젊은이들을 위한 만가(輓歌)가 되었다.
육사 생도 2기에게도, 웨스트포인트 1950년 졸업생들에게도, 그리고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모든 젊은 장교들에게도 이 시는 그대로 바쳐질 수 있다.
별을 단 사람들은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십자가를 남긴 사람들은 역사의 양심을 만든다. 그래서 두보는 1,20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를 대신해 한 구절을 읊는다. 長使英雄淚滿襟(길이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적시게 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