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연해주 파르티잔스크를 오가며 고려인 동포의 연해주 정착 등을 돕고 있는 동북아생명누리협동조합 이오석 이사장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다. 지난 3월 12일 리버사이드에서 장태한 교수를 만났던 LA의 한흥수 친구가 한국에 체류 중이었다면 무조건 참석했을 텐데…. 아쉬웠다. (<아시아엔> 2025-6-13 “[임영상의 글로컬 뷰] 미국 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 한국 전시회도 열렸으면….”)
35세 청년 감독의 다큐 영화, <청춘, 도산에게 말을 걸다>

<청춘, 도산에게 말을 걸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도산 선생에게 말을 건 첫 번째 청춘이 바로 35세 김규린 감독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영화는 LA 한인 동포 청년들의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한 감사 인사로 막을 내렸는데, 김규린 감독이 누구인가 궁금했다.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와 후원기관인 보훈부와 대전문화재단 등의 자막이 스크린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는데, 영화에서 보았던 얼굴, 김규린 감독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객석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김규린 감독인가요?”
“저는 장태한 교수 소개로 시사회에 참석한 한국외대 명예교수 임영상이고, 이분은 러시아 연해주를 왕래하는 이오석 목사님입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휴대전화를 건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김규린 감독은 뉴욕시립대학교 브루클린칼리지 미술석사(MFA in Theatre & Technical) 출신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뮤지컬·공연·영화·전시·교육 등 장르를 넘나드는 콘텐츠 기획·제작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6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러 차례 LA를 왕래하며 USC(남가주대학교) 구내의 도산 가족이 살았던 집(현재 한국학연구소)과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을 찾았다.

또 LA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리버사이드로 이동해서는 시내의 도산 선생 동상과 기찻길 옆 파차파 캠프 자리 등을 장태한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했다. 필자로서는 다시 도산의 여정을 찾는 듯해 반가웠다.
그런데 아쉬움도 남았다. 도산이 처음 활동하던 샌프란시스코와 1920~30년대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도산이 모금 활동을 위해 자주 찾았던 리들리–다뉴바가 빠진 것이다. 특히 100년이 넘은 리들리 버제스 호텔에는 2008년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헌정한 기념 동판 등을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LA 한인 청년들을 만난다.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극단 시선(Seasun)의 대표이자 ‘도산 뮤지컬’ 창작자인 클라라 신, 뮤지컬에 참여한 배우들, 뮤지컬 노래 작곡가, 영어 자막 번역자 등이다. 영화의 주인공들 모두 한인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한 도산에 대해 충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나아가 AI 시대 일자리에 대한 불안 속에 살고 있지만, 도산의 독립 정신과 삶을 돌아보며 “지금 우리는 어떤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청춘, 도산에게 말을 걸다>는 한국과 재미(캘리포니아) 한인뿐 아니라 중국 동포와 고려인 동포 청춘들도 꼭 보았으면 하는 다큐 영화다. 독립운동가 도산은 재미 한인 사회의 대표적 지도자였고 가족이 캘리포니아에 살았지만, 그는 한국과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활동했다. 1910년 2월, 도산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칭다오(靑島)에 들어가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했고, 이상촌 건설 후보지를 찾아 동북으로 향했다.
다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는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일제의 강제병합 소식을 들었다. 도산은 근 1년간 러시아 연해주에 머물며 재러한인사회를 순행하면서 동포들의 단결을 호소하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다음에는 꼭 리들리(버제스 호텔)를 찾을 것이고, 2편에 넣을 겁니다.”
김규린 감독의 말이다. 제작비 등의 문제가 있겠지만, <청춘, 도산에게 말을 걸다> 2편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동북, 그리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도산의 발자취도 영화에 담겼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