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묵상 | 누가복음 6장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예수님께 주어진 시간은 단 3년뿐이었습니다. 당장 3년 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온전히 인수인계받아 이끌어 갈 인재들이 필요했습니다. 제자 선발과 제자 훈련은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이어 갈 바로 그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철야 기도 후에 발표된 열두 명의 최종 명단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거의 ‘인사 참사’ 수준입니다. 하나같이 모자란 사람들을 뽑으신 것입니다. 세리 마태는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매국노였고, 셀롯당 시몬은 극단적인 반로마 운동권 출신이었습니다. 함께 뽑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인사 참사의 화룡점정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밤새워 기도한 끝에 배신할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부르심은 임무와 사명이기 전에 용납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그저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뿐입니다.
이 기이한 인사는 성경의 첫 장면부터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만드셨을까요?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신 게 아니라, 인간의 배신을 애초에 용납하기로 결정하셨다는 표시가 선악과입니다.
제자답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용납을 나도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조건 없는 용납’을 온전히 용납하려면 내게는 내세울 자격이 단 한 줌도 없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옆자리의 마태나 시몬과 내가 도긴개긴이라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조건 없는 용납’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저 인간보다 조금이라도 낫다는 것을 어떻게든 입증해 보려 노력합니다. 아직 예수님의 용납이 용납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애당초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자격 같은 것은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드셨듯,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사람에게도 제자가 될 기회를 주셨습니다. 유다에게는 매일매일이 기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용납을 용납할 기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팔 기회만 노리다가 예수님이 주신 기회를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나에게도 두 가지 기회가 다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기회를 살리고 어떤 기회를 날릴지는 내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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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Se8hdIDvD4?si=j_AdmiYfnxoYBZ3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