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9월 9일 오후 2시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생명사랑·겨레사랑·평화사랑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올해 평화대상은 니시모리 시오조 전 일본 고치현의회 의장이 받는다. 실천대상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와 안규리 라파엘나눔 이사장, 문예대상은 정호승 시인과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공동 수상한다. 한일 평화, 사법 정의, 의료봉사, 시와 뮤지컬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만해의 정신을 실천해온 다섯 사람이다. 시상식은 9일 오후 2시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다.
평화대상 수상자인 니시모리 시오조 전 의장은 30여 년 동안 일본 사회에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알리고 한일 양국의 우호와 화해를 위해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 안에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성찰하고 안중근을 단순한 저격범이 아닌 동아시아 평화를 고민한 사상가로 조명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니시모리의 수상은 일본인 역대 수상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와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의 계보를 잇는다. 와다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 역사 연구에, 우쓰미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BC급 전범과 일본의 전후 책임을 밝히는 데 힘써왔다. 세 사람의 수상은 만해대상이 국적보다 역사적 양심과 평화를 위한 실천을 중시해왔음을 보여준다.
실천대상 수상자인 박준영 변호사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한 사람들의 재심을 맡아 사법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왔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 사회적 관심에서 밀려났던 사건을 다시 법정에 세우며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법률가의 전문성을 권력이나 이익보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이 수상 이유다.
공동 수상자인 안규리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일하며 30년 가까이 이주노동자와 독거노인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돌보아왔다. 1997년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 설립에 참여했고, 이후 라파엘나눔을 통해 국내외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지원과 의료인 교육을 이어왔다. 박 변호사가 법의 문턱에서 밀려난 사람을 변호했다면, 안 이사장은 의료의 경계 밖에 놓인 사람을 찾아갔다.
문예대상 수상자인 정호승 시인은 반세기 넘게 사랑과 외로움, 고통과 희망을 쉽고 따뜻한 언어로 노래해왔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을 통해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일깨웠다.
박명성 예술감독은 한국 뮤지컬의 제작 기반을 다지고 세계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작품 제작에 머물지 않고 공연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고 후배 예술인들을 지원해온 실천도 평가받았다. 문예대상이 시와 소설을 넘어 국악·무용·연극·영화·뮤지컬로 영역을 넓혀온 흐름을 보여주는 수상이다.
만해대상은 1997년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의 원력으로 제정됐다. 제1회부터 숭산 스님과 가톨릭농민회가 함께 수상했다. 불교계가 만든 상이지만 특정 종교나 국가, 인종에 문을 닫지 않겠다는 방향을 출발점부터 분명히 한 것이다.
역대 수상자의 면면은 이러한 지향을 보여준다. 평화부문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만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도 2021년 평화대상을 받았다.
단체 수상도 적지 않다.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민간인을 구조한 ‘하얀 헬멧’,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구한 ‘세이브 우크라이나’, 세계 각지의 전쟁과 재난 현장에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 월드센트럴키친이 평화대상을 받았다. 평화를 정치적 선언에 가두지 않고 생명을 구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장한 선택이었다.
실천부문에서는 소록도 한센인들을 돌본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레트 피사렉, 성남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과 위기 청소년을 돌보는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 히말라야 오지 주민을 지원해온 청전 스님,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생태학자 제인 구달 등이 수상했다. 종교도 불교·천주교·개신교·성공회·원불교·이슬람 등으로 폭넓다.
문예부문에서는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와 중국 작가 모옌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조정래·김용택·천양희·오정희·이민진 등 국내외 문인들이 선정됐다. 국악인 안숙선과 황병기, 가수 이미자, 연극연출가 임영웅, 영화인 김동호, 발레리나 강수진 등도 수상했다. 문예를 글에만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로 넓혀온 것이다.
올해 제30회까지 만해대상 수상자는 단체를 포함해 33개국 155명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아시아 14개국, 유럽 11개국, 아프리카 5개국, 북미 2개국, 오세아니아 1개국이다. 인제 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에는 이들의 사진을 모은 ‘수상자의 벽’도 설치됐다. “생명을 존중하고 고통을 덜며 서로를 일으키는 마음”이 만해가 밝힌 삶의 길이라는 문구가 수상자들을 잇는다. 만해대상이 이미 한국을 넘어선 국제적인 상임을 보여준다.
제30회 시상식은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은 해에 열린다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만해가 말한 ‘님’은 한 사람의 연인을 넘어 빼앗긴 조국과 자유, 진리와 평화를 아우른다. 올해 다섯 수상자도 일본에서 동양평화를 알리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의료에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시와 공연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해왔다.
만해대상 30년을 관통하는 기준은 유명세나 지위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종교에 속했는지도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 곁으로 갔는가, 생명을 살렸는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행동했는가가 수상자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인제에서 열리는 제30회 시상식은 지난 수상자들을 기념하는 자리를 넘어, 만해의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다시 묻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만해축전은 동국대학교·강원특별자치도·인제군·조선일보·재단법인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만해대상은 만해축전추진위원회가 수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