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노무현 평전> 출간을 계기로,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1997~2000년 세 차례 직접 인터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기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당시 인터뷰와 구 기자의 회고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이 남긴 말과 정치적 선택을 다시 짚어본다. <편집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노무현 평전>이 나오자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는 20여 년 전 자신이 직접 만났던 노무현을 떠올렸다. 구영식 기자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평전> 발간 소식을 전하며 “그의 측근들 가운데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윤태영 선배가 써서 신뢰와 권위가 깊고도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자 생활 초기에 세 차례에 걸쳐 노무현을 인터뷰했던 기억을 꺼냈다.
“그 인연 속에서 기자인 나에게 들려준 그의 ‘말들’이 지금도 ‘죽비소리’로 들려온다.”
첫 만남은 1997년 10월 6일이었다. 당시 구영식은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의 2년차 기자였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도렴빌딩에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한 이인제가 탈당해 독자 출마에 나선 시기였다. 인터뷰 제목은 <반칙의 정치, 용서 못한다>였다. 구 기자는 이 제목이 “당시 노무현의 정체성을 가장 잘 집약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은 이 자리에서 진보와 보수, 지역주의에 앞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기본을 말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것이 우선이며, 정치인의 도덕성은 결국 정직성과 공정성에 있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공정할 것, 자기 욕심 때문에 공적 이익을 희생시키지 말 것.”
노무현은 자신에게 “싸울 장은 있었지만 건설의 장은 주어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건설의 망치, 건설의 장만 주어진다면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5년 전의 얘기였다.
두 번째 만남은 구 기자가 월간 <말>에서 일하던 때였다고 한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영남 민심을 취재하러 부산에 내려간 그는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노무현의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지역주의의 높은 벽 앞에서 노무현은 격앙돼 있었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죠.”
두 차례 부산에서 패한 뒤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지만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자신이 또 낙선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정치를 계속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구 기자는 이를 사실상의 ‘정계은퇴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노무현은 이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책임뿐 아니라 유권자의 책임도 거듭 강조했다. 정치인은 당락에 사활이 걸려 있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유권자는 그렇지 않다며, 학연과 혈연, 지역 분위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판단으로 한 표를 행사해달라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선거에서 졌다. 그러나 지역주의에 맞서 거듭 부산에 출마한 그에게 붙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전국적인 정치적 자산이 됐다.
세 번째 만남은 2000년 12월 12일이었다.
부산 선거사무실에서 본 지 약 11개월 만이었다. 이번에는 장소도, 노무현의 지위도 달라져 있었다.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 입주해 있던 해양수산부 장관실이었다. 노무현은 넥타이를 매고 장관으로 구 기자를 맞았다.
그가 이때 한 말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김대중표 노무현’과 ‘노무현표 노무현’이라고 구영식 기자는 기억한다. 노무현은 장관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과거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임 있고 대안이 있는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비판의 칼날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책임감과 도전정신은 절대 무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현재 ‘김대중표 노무현’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곧바로 다음을 내다봤다. “이 다음의 상황은 ‘노무현표 노무현’입니다. 그 상황에 기대를 걸고 있죠.” 그리고 2년 뒤 노무현은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구영식 기자가 <노무현 평전>을 읽으며 다시 꺼낸 세 장면은 1997년 변호사 노무현, 2000년 낙선을 각오한 부산의 정치인 노무현, 그리고 같은 해 말 국무위원이 된 노무현을 차례로 보여준다.
세 인터뷰를 관통하는 말도 선명하다. ‘반칙하지 않는 정치’, 지역주의에 맞서는 선택, 그리고 문제 제기를 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인의 책임이다.
<노무현 평전>을 쓴 윤태영은 노무현의 정치 여정과 대통령 재임 기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록해온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구 기자가 윤태영을 두고 “노무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권의 평전이 과거의 취재수첩까지 다시 열게 했다. 구영식 기자에게 <노무현 평전>은 한 전직 대통령의 생애를 정리한 책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 기자 시절 자신이 마주 앉아 질문했던 정치인의 말과 표정, 그리고 그가 선택했던 길을 다시 불러내는 책이기도 하다.
27~29년 전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을 다시 읽으며 구 기자가 ‘죽비소리’라고 표현한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공정할 것, 자기 욕심 때문에 공적 이익을 희생시키지 말 것.”
<노무현 평전>의 출간과 함께 구영식 기자의 오래된 인터뷰가 다시 묻는다.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정치는 그때 노무현이 말했던 ‘정치인의 기본’에서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