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국민을 흥분시키는 투전판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성장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한국 증시가 유례없는 변동성 속에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일부 대형주에 자금이 집중되고, 상장지수펀드(ETF)와 레버리지 상품을 통한 단기매매가 급증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어지는 거래시간 동안 직장인과 청년, 퇴직자들은 휴대전화 시세판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주식농부’ 박영옥은 요즘의 증시를 두고 “생산적인 자본시장을 만들겠다며 돈을 시장으로 끌어들였지만, 운영을 잘못해 투전판으로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식은 기업의 주인이 되어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투자여야 하는데, 지금은 기업의 가치보다 짧은 시간의 가격 차이를 노리는 거래만 남았다는 것이다. 박영옥 주식농부는 오랫동안 기업과 장기적으로 동행하는 가치 투자문화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신도 시장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깊은 피로와 무력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내 역할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놓지 못했다.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이 ‘주식농부’ 박영옥 대표와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과 대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전화와 SNS를 통해 10여 차례, 모두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편집자>
-지금 한국 주식시장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본시장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으로 돈을 끌어들이겠다는 정책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부동산 등에 묶여 있던 돈이 생산적인 자본시장으로 들어와 기업의 성장을 돕고, 기업이 번 돈을 배당과 주가 상승을 통해 국민과 나누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돈만 시장에 들어왔을 뿐, 정작 투자문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지 않습니다. 오늘 사고 내일 파는 식으로 시세차익만 좇습니다. 투자보다 거래가 앞서고, 기업보다 주가만 바라보는 시장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산적인 자본시장이 아니라 투전판이 됩니다.”
-특히 ETF와 패시브펀드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면서, 들어온 자금이 정작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지적이지요?
“그렇습니다. ETF는 본래 분산투자를 돕기 위한 상품입니다. 문제는 분산투자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자금을 시장에 끌어들였지만, 그 돈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자금을 공급하는 데 쓰이기보다 유통시장에서 계속 사고파는 머니게임에 머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가 기술개발과 고용, 새로운 사업에 쓰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미 시가총액이 큰 기업과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 안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됩니다. 그러면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습니다. 거래만 늘고 시장은 점점 투전판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상품에 지나치게 쏠린 구조에서 벗어나 개별 기업을 제대로 연구하고 발굴하는 액티브펀드와 장기투자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좋은 기업을 찾아 자금을 공급하고, 그 기업이 성장한 결과를 투자자가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우리 자본시장과 기업, 투자자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투전판’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강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시장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사실상 12시간 열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휴대전화만 바라봅니다. 사고팔고, 다시 사고팔고를 반복합니다. 예전 시골의 노름판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판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은 판을 운영하는 하우스입니다. 주식 거래가 많아지면 증권회사는 수수료를 벌고, 국가는 거래세를 걷습니다. 자산운용사와 관련 금융기관도 거래가 늘수록 유리합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에게는 무엇이 남습니까. 손실과 피로만 남을 수 있습니다.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하우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래시간 연장이 투자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편리함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프리마켓은 어느 정도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규시장 개장 전에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후 3시 30분 이후 밤 8시까지 계속 거래하도록 하는 것은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장이 끝난 뒤 오후 6시까지 단일가 매매를 했습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지금처럼 밤 8시까지 계속 가격이 움직이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주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직장에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주식을 거래합니다. 퇴근 후에도 가족과 대화하지 않고 시세판만 봅니다. 삶 자체가 피곤해집니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드시 자본시장 발전은 아닙니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면 운영시간을 줄이거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종목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도 걱정하고 있지요?
“AI 시대에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시장 전체가 몇몇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관련 기업과 ETF까지 합치면 시장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밸류체인에 집중됩니다. 여기에 레버리지 상품까지 붙으면서 상승과 하락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졌습니다. 하나의 산업이나 한두 기업에 집중된 시장은 외형상 강해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불균형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조선, 방산, 원전, 바이오, 전자, 소재·부품·장비 등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또 K-컬처로 일컬어지는 K-푸드, K-뷰티, K-엔터 등 수많은 미래 성장기업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 삶과 더불어 매년 안정되게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주주 환원에 적극적인 우량한 중소형 가치 있는 기업들이 있구요. 자본시장은 투자자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최고의 공유시스템입니다. 다양한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야 시장이 건강해집니다. 몇몇 대형주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해서 자본시장 전체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의 급등락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봅니까?
“외국에서는 주요 지수가 하루 3~5%만 움직여도 급등이나 급락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장에서는 일부 종목이나 지수가 매우 짧은 기간에 10% 이상 움직이는 일이 나타납니다. 시장이 역동적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시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시장이 너무 빠르게 오르면 그만큼 빠르게 무너질 위험도 커집니다. 자본시장은 원래 어느 정도 투기적 요소가 있습니다. 버블이 생겼다가 무너지는 과정도 반복됩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그런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변동성을 키우는 상품과 제도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주식투자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업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투자자의 돈이 기업으로 들어가면 기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듭니다. 그 결과 기업이 성장하고 이익을 내면 투자자는 배당을 받거나 기업가치 상승을 통해 성과를 나눕니다. 이것이 자본시장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이 돈을 벌고 성장해서 얻는 자본이득보다, 짧은 시간 동안 가격이 오르내리는 데서 생기는 시세차익만 좇습니다.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격표를 사고파는 것입니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그 기업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기업의 가치를 보고 적정한 가격에 산 뒤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투자입니다.”
-투자자들은 기다리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주식을 답답해합니다. 누가 어떤 종목으로 단기간에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갖지만, 기업가치를 공부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저는 기업의 본질가치를 보고 바닥권에서 사서 기다리는 투자를 해왔습니다. 물론 제가 선택한 기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기업을 공부하고 분산 투자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도 모른 채 유튜브나 블로그, 주변 사람의 말만 듣고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돈을 받아 투자하는 청년, 퇴직연금을 주식에 넣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장이 오를 때는 모두 돈을 벌 것 같지만, 떨어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습니다. 주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증시 열풍이 노동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노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보람을 얻습니다. 노동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보다 주가를 먼저 봅니다. 업무시간에도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합니다. 그러면 회사와 자신의 일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가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을 일으키고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생각보다 주식으로 쉽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앞서면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집니다. AI도 주식도 도구일 뿐입니다. 자신이 정확히 알고 철학과 책임을 갖고 활용해야 합니다. AI가 모든 판단을 대신해 주거나, 주식이 노동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시장의 실제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나타났을 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장의 혼란이 커집니다. 첫째,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어지는 거래시간이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애프터마켓 축소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ETF와 레버리지 상품이 시장의 쏠림과 변동성을 얼마나 확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셋째, 거래량과 지수 상승만을 정책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기존 투자자와 중소 상장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장 전체를 봐야 합니다. 넷째, 장기투자자가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배당과 기업지배구조, 주주와의 소통을 개선해야 합니다. 자본시장 정책은 화려한 숫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국민이 함께 성장하도록 만드는 일이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기업문화와 자본시장을 바꾸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지쳐 보입니다.
“솔직히 많이 힘듭니다. 저는 주식농부로서 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주주가 기업의 주인으로 존중받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문화와 자본시장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업 현장에 가보면 소통이 막혀 있는 곳이 많습니다. 상장기업을 경영자의 개인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식회사의 의미나 상장회사의 책임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수년 동안 싸우면서 몸도 많이 상했습니다. 이제는 충분히 했으니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계속 말해 달라고 합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잘못된 현실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 고민합니다.”
-저는 박영옥 회장이 지금 주식을 둘러싼 어려운 국면에서 등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박영옥 주식농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도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시장에 대응하다 보면 글을 쓰고 사회적 발언을 할 힘도 없어집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방향을 이야기해야겠지요. 주식이든 AI든 자신의 철학 없이 휩쓸리면 판단을 잃게 됩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불안과 욕심에 흔들립니다. 좋은 기업을 찾고, 그 기업의 주인이 되어 함께 성장한다는 투자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다시 말해야 한다면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식으로 단기간에 인생을 바꾸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누군가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경영자는 어떤 철학을 갖고 있으며,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빚을 내거나 노후자금을 한꺼번에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레버리지 상품과 단기매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식이 자신의 일과 가족, 건강을 빼앗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은 삶의 일부이지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주식투자는 농사와 같습니다. 좋은 씨앗을 고르고 정성껏 돌본 뒤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매일 씨앗을 파헤쳐 싹이 났는지 확인하면 농사를 망칩니다. 우리 자본시장도 다시 기다림과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도 살고, 투자자도 살고, 나라 경제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박영옥은?
‘주식농부’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본질가치와 장기투자를 강조해 왔다.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성장하는 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저술과 강연, 주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