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작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Issyk-Kul) 호수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정 중 찾은 루흐 오르도(Rukh Ordo)는 가톨릭과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등 세계 주요 종교를 상징하는 예배당과 건축물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독특한 종교문화공원이었다. 서로 다른 신앙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키르기스스탄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공원을 걷다 한 여인의 동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검을 든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받침대의 명판에는 Joan of Arc(1412–1431)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는 이전 직장에서 같은 세례명을 가진 교우 한 분이 떠올라 잠시 그녀의 생애를 찾아본 것이 전부였다. 살아서는 이단으로 몰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화형을 당했지만, 죽은 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여인. 열아홉 해의 짧은 생애는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며칠 전 뉴스에서 한 젊은 여성을 ‘올다르크’라 부르는 기사를 읽었다. 순간 이식쿨 호숫가에서 보았던 그 동상이 떠올랐다. 같은 소리의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이 품은 시간은 전혀 달랐다.
잔 다르크가 가장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위해 나서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녀를 통해 왕관을 얻은 이들은 침묵했고, 당대의 법정은 그녀를 이단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 판결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스물다섯 해 뒤 재심에서 명예가 회복되었고, 다시 수백 년이 지나 그녀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학생 시절 읽었던 톨스토이의 단편 ‘God Sees the Truth, But Waits’가 문득 떠오른다. 진실은 때로 사람의 시간보다 더디게 걸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성급한 판결보다 긴 시간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식쿨 호숫가에서 만난 청동의 여인은 지금도 검을 들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검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름은 같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 남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을 살아낸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