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억류되거나 행방불명된 직원들을 위한 국제연대의 날’

매년 3월 25일이 오면 유엔 본부와 세계 각국의 인도주의 단체 사무실에는 주인을 잃은 ‘빈 의자’가 놓인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딸이었으며, 동료였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자리를 기억하기 위한 날, 바로 ‘억류되거나 행방불명된 직원들을 위한 국제연대의 날(International Day of Solidarity with Detained and Missing Staff Members)’이다.
이날의 기원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출신 언론인이자 당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근무하던 알렉 콜렛(Alec Collett)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날이 바로 3월 25일이었다. 그의 행방은 오랫동안 확인되지 않았고, 2009년 레바논 베카 계곡에서 유해가 발견되면서 비극적인 결말이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은 인도주의 활동가와 국제기구 직원들의 안전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을 담아 이 날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다.

공격받는 인도주의, 무너지는 최후의 보루
그러나 콜렛 사건 이후 40년이 지난 오늘, 세계는 결코 더 안전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자지구 전쟁, 수단 내전, 미얀마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구호 활동가와 언론인, 유엔 직원들은 여전히 공격과 납치, 살해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최소 280명 이상의 구호 요원이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납치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고되었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 이후 인도주의 활동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주의 활동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법은 분쟁 상황에서도 인도주의 요원과 의료진, 언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오히려 정치적 협상 카드로 이용되거나, 진실을 차단하기 위한 표적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구호 요원 한 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가 돌보던 수천 명의 난민에게 전달될 식량과 의약품이 끊기고, 그 지역의 고통을 세상에 알릴 목소리 하나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현지 직원’이 가장 취약한 고리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로컬 스태프’, 즉 현지 채용 직원들의 안전 문제다. 국제사회는 서구권 국적 활동가가 납치되었을 때는 외교적 압박과 언론 보도를 집중하지만, 분쟁 지역 현지 직원들이 억류되거나 실종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은 경우가 많다.
유엔과 주요 인도주의 단체 보고에 따르면 분쟁 지역에서 피해를 입는 직원의 상당수는 현지 직원이며, 이들은 국제적 보호망과 외교적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진정한 국제연대란 국적이나 언어, 종교를 기준으로 보호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존엄을 동일하게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방관은 범죄의 공범이다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억류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세상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범죄를 기록하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식량을 나누고 학살의 현장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다. 가해자들은 우리가 그들을 잊기를 바란다.
이름이 사라지고, 얼굴이 잊히고, 빈 의자가 먼지 속에 묻힐 때 폭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당화된다.
그래서 3월 25일의 의미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이 날은 기억을 통해 책임을 요구하는 날이다. 각국 정부는 1994년 채택된 ‘유엔 및 관련 인원의 안전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Safety of United Nations and Associated Personnel)’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또한 인도주의 요원 공격이 발생했을 경우,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포함한 국제 사법 체계가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처벌받지 않는 폭력은 반복되지만 책임이 따르는 폭력은 멈추게 된다.
다시, 연대의 손을 잡으며
THE AsiaN은 창간 이후 아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인권 문제를 기록해 왔다. 때로는 이름 없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했고, 때로는 위험 속에 있는 활동가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정보는 누군가가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이름 없는 구금 시설과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기자와 활동가들이 있다. 그들의 빈 의자가 다시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는 침묵이 아니라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알렉 콜렛이 2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세계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지금 억류된 이들에게 그 늦은 시간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억류된 모든 언론인과 활동가의 즉각적인 석방과 안전한 귀환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