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여류: 아침 연지에서] 감천(感天)…뒤늦게 더욱 환한 자태로 모습 드러낸 연꽃처럼

연꽃 <사진 이병철>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감천(感天)’이란 단어였다. 우리 말로 흔히 하는 ‘지성(至誠)이면 감천’이라고 하는,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응한다는 의미인데, 왜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이런 단어가 불쑥 떠오른 것일까.

지극한 정성이란 무엇일까. 그 정성이 무엇이기에 하늘을 감동시키고 감복하게 하여 감응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일까. 하늘을 감동하게 하는 정성, 그 정성이란 무엇인가. 나는 한 해를 품어갈 한 글자로 ‘성(誠)’을 새긴 적이 있었다.

성(誠)이란 무엇인가. 성은 성리학의 주요한 개념으로, ‘성자천지지도야(誠者天地之道也)”라 했다. 주자는 성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천리와 하나 된 상태로 보았다. 인간이 수양을 통해 성에 이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이 천리와 합일하는 경지를 회복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성은 단지 도덕적 성실함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근원적 진실성이었다.

남명 조식 선생도 성을 매우 강조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명에겐 성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것이었다. 그는 언행일치의 실천적 진실성이 바로 성이라 했다. 남명에게 성이란 삶을 온전히 살아내려는 태도였던 것이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자와 남명의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감천의 전제가 성(至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성이란 ‘오롯함’의 다른 말과 같다. 그래서 지극한 정성이란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오롯이 모아 간절하게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늘은 감동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어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세상이 따로 있지 않다면, 간절히 정성을 모으는 나와 그 정성에 감응하는 하늘 또한 둘이 아닐 것이다. 결국 내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모으느냐에 따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리라.

연꽃 <사진 이병철>

감천. 아침에 불쑥 들어온 이 말과 그 응답의 전제로서의 지성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오롯이 마음을 모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 품고 있는 만트라, ‘고요한 중심, 환한 미소’를 오늘 아침에도 다시 되뇌인다. 내 안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둘이 아님을 생각한다.

내 만트라, ‘고요한 중심, 환한 미소’는 내 안의 평화를 일깨우기 위한 주문이자 기도이며, 내 자신이 먼저 평화의 존재로 살기 위한 매 순간의 다짐이다. 내 안의 고요한 중심과 환한 미소 속에 흔들리지 않는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깨어나면, 곧 그가 이루는 세상도 깨어나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오롯이 마음 모을 것은 결국 남은 날들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잘 늙어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잘 죽는 것, 그것이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일 것이다. 지금 내게는 이것이 가장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이다. 내가 건강하게 잘 늙어가고,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 이루는 것이 곧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함께하는 세상을 위한 마지막 역할이자 보시(布施)이기도 한 것임을 새삼 생각한다.

연지로 향하는 길, 처서를 지난 계절임에도 여전히 뜨거운 햇살이 내려쬔다. 연지의 꽃들은 대부분 지고, 이제 뒤늦게 피어나는 남은 것들이 마지막 꽃대를 힘겹게 밀어 올려 꽃송이를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한 송이 연꽃이 온전히 피어나는 순간, 연지는 다시 환해지고 세상은 새 빛을 얻는다.

한 송이 꽃이 피어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은 곧 정성과 감응이 하나로 이어지는 까닭이리라. 꽃대를 밀어 올려 꽃송이를 여는 것이 지성이라면, 그 한 송이 꽃으로 세상이 환해지는 것은 감천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오늘 아침에 내게 감천이란 단어가 다가온 것은, 이 연지에서 뒤늦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하게 피어 있는 것이 곧 지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하늘의 감응이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이끌어진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일 것이다.

뒤늦게 피어나 더욱 환한 자태로 모습을 드러낸 연꽃 앞에서, 환한 미소로 두 손을 모은다.

연꽃 <사진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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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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