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제품, 북한서도 사용하는 날 오겠죠”
남북경협현장 ‘개성공단’ 관리하는 홍양호 이사장
아직은 넘지 못할 휴전선. 하지만 북한 땅을 매일 오가는 남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서울에서 개성을 오가는 출퇴근 버스 1대가 직원들을 태우고 휴전선을 넘는다. 기업인과 공공기관, 유통업체 직원들의 승용차 250~300대가 뒤를 잇는다. 화물차들의 행렬도 이어진다. 이들 차량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5km만 달리면 개성공단이다. 창밖 풍경은 나무 없는 산과 농토들. 지난해 다섯 달 넘도록 막히긴 했지만 남북 사이에는 이렇게 열린 길이 나 있다.
개성공단사업을 총괄하며 남북 당국과 기업, 관계기관들의 협의 조정을 맡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홍양호(59) 이사장은 “개성공단에서는 북쪽으로 개성시, 남쪽으로 문산아파트와 판문점 등 남북이 한눈에 보인다. 일단 들어가면 3.3㎢(100만평) 울타리 안에만 있어야 하는 제한이 있지만 나름대로 커뮤니티들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차관을 거쳐 지난 2011년 10월부터 3년 임기로 지원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홍 이사장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또 다른 직함이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남측에서 만든 법인이고,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에서 만든 ‘개성공업지구법’에 규정된 북측기구다. 북측은 개성공단 지원 주체인 남측 인사를 위원장 자리에 올렸다. 현재 유일한 공식 남북교류 현장인 북한 땅으로 출근하는 홍 이사장을 서울 사무실에서 만났다.
-북한에서 일하는 특별한 직업이다. 매일 개성으로 출근하나.
“월요일 오전 8시 반에 개성공단으로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월요일에 개성으로 들어가면 수요일 오후에 서울로 나온다. 다시 목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금요일 저녁 서울로 퇴근한다. 부위원장은 상주하고 있는데 주말에 교대 근무를 한다.”
-개성공단 모습을 소개한다면.
“관리위원회 직원들은 개성에 50명이 상주하고, 지원재단은 서울에서 20명 정도가 근무한다. 관리위에는 버스운영과 기반시설물 관리 등을 위해 북측 근로자 540여명이 있다. 공단 내 소방서에서는 남북 직원 각각 6명, 31명이 함께 근무한다. 270여대의 버스는 모두 북쪽 기사들이 운전한다. 북한 근로자 5만 명 중 개성시내에 사는 3만7000명, 인근 개풍군과 장풍군 지역 근로자들을 출퇴근시키는 버스다. 나머지 700~800명 근로자는 도보나 자전거로 출퇴근 한다. 공단 안에 꿩이 뛰어다니는데, 현대아산과 북한이 5 대 5로 투자한 ‘평양식당’에선 꿩 요리와 송이덮밥 등을 판다. 북한에서 투자한 ‘봉동관’이라는 식당도 있다. 신원에벤에셀이 지은 교회에서는 수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 예배가 열린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남북경제협력의 대표사업이다. 2004년 분양을 시작해 현재 122개 기업이 섬유, 전기전자, 기계금속, 식품 등 업종에서 생산 활동을 한다. 천안함 사태 등으로 경제교류가 중단된 5·24 조치에도 꿋꿋이 가동되던 개성공단이지만 지난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그야말로 남북 간 ‘신뢰’의 중요성을 절감한 사건이었다. 이후 166일 만인 지난해 9월 재가동되면서 자금사정과 영업 등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 중이다.
북측 근로자 변화 “품질과 납기 중요해”
-남북 직원들의 관계는 어떤가.
“우선 같은 말을 쓰니 정서적으로 친근하다. 체제나 이념 얘기는 안하지만 자연스럽게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공단에 버려진 쓰레기는 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줍곤 했는데, 처음엔 무관심하던 북측 근로자들이 점차 ‘수고한다’고 말을 건네기도 하고,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횟수도 줄더니 결국은 그들도 주변 거리를 함께 청소하기에 이르렀다. 변화는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 북쪽 근로자들이 제품생산에 대해 처음엔 ‘물량’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품질과 납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우리로선 변화로 보인다.”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는 징후로 볼 수 있나.
“남쪽기업이 ‘품질과 납기는 기업의 생명줄이다’라는 현수막을 공단에 걸어 놓아서 깜짝 놀랐다. 공장 안에는 있지만 밖에 걸어 놓았다는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체험을 말해주는 것이다. 품질이 안 좋으면 서울로 간 물건이 검수를 받아 다시 불량품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주문자생산 위주의 기업에게 불량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알게 된다. 즉 치열한 ‘경쟁’을 통해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시장’에 내다팔 수 있다는 걸 배운다.”
초코파이, 라면 등 간식…가동 중단 땐 재고로 쌓이기도
-북쪽 근로자들의 특징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다. 남쪽 생산성을 100이라고 한다면, 북쪽은 70~80은 되는 것 같다. 중국은 60, 베트남은 40~50 정도니까 생산성이 높은 편이다. 남쪽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다. 각 기업들이 북쪽 근로자를 잘 이해시키고 훈련시키기 나름이다. 그렇게 자꾸 수주가 들어오면서 해외 수출도 한다.”
-북쪽 근로자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나눠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달에 500만~600만개 나갔다. 낮에 2~3개, 야간에 2개씩 1인당 하루 4~5개를 나눠줬다. 이밖에도 찰떡파이, 커피믹스, 소시지, 라면 등을 간식으로 준다. 그런데 지난 해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면서 초코파이, 라면 등 5억~6억 원 어치가 재고로 쌓였다. 북한에 들어가는 제품들은 규격이 달라 유통질서 때문에 남한에 팔 수도 없었고 난감했다. 사정을 알고 강원랜드와 우리은행이 각각 5000만원, 1억 원 어치를 사 줬다. 경기도도 도와줬다.”
-개성공단 생산물품의 90%는 내수다. 해외투자유치 전망은.
“인건비와 물류비, 무관세, 토지분양가 등이 경쟁력이지만, 정치 군사적 위험이 불안 요인이다. 현재 개성공단공동위원회와 4개 분과위원회 등에서 공단 국제화 등의 문제를 논의 중인데, 통행 통관 통신 등 3통 문제가 잘 해결돼 나간다면 외국기업 투자가 좀더 가시화될 것이다. 3통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전자출입체계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물품을 전수 검사에서 선별 검사로 전환하는 등의 문제다. 남북관계가 활성화된다면 북한 소비시장 진출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은.
“개성공단은 지금 남북교류의 유일한 끈이자 남북과 동북아를 묶는 더 큰 경제공동체 형성의 단초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중소기업의 활로이며, 군사적으로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한다. 공단 확대를 위해 북측 노동력을 더 확보해야 한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70% 이상인데 북한 보육교사가 상주하는 공단 내 탁아소는 600명만이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1세 미만 아기들만 맡길 수 있는데, 앞으로 더 확대할 예정이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사무실에 놓여 있는 달력에는 조금 색다른 점이 있다. 1월1일뿐 아니라 2일과 3일 아래 빨간 줄이 있는 식이다. 양력설에 사흘을 쉬는 북한의 공휴일 표시다. 즉 빨간 줄이 있는 날은 개성공단 휴무일이기도 하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는 남북. 개성공단 경제협력이 정치·사회·문화 협력으로 다시 확산될 날이 곧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