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역학관계 재편,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 두번째)가 지난해 11월24일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직후 열린 내각 회의에서 이번 협상은 ‘역사적 실수’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협상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란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신화사>

17년을 끌어온 이란 핵문제가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다. 6개월 유예기간 동안 이란이 합의사항만 잘 이행한다면 포괄적 합의에 이를 수 있게 됐다. 장기간 국제사회 불안요소로 남았던 이란 핵문제가 일단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환영 일색이다. 서방언론에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합의’라고 평가했다.

중동에서도 이란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나라들은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 시리아는 이란의 협상 타결이 힘겨운 내전상황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만족하는 분위기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강경정파 하마스 또한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반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부 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인터뷰에서 “미국은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정책이 아니라 완전히 혼돈과 혼란”이라고 말해 미국의 외교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이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역사적 합의’가 아니라 ‘역사적 실수’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사우디를 필두로 한 걸프 지역 왕정국가들은 겉으로는 일단 반기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동 국가의 반응이 이처럼 갈리는 것은 이번 서방과 이란의 핵협정이 단순히 핵개발 일시 중단이 아니라 역내 역학관계 재조정을 불러올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중동전문가들은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인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며 이집트, 사우디 등 친미국가와 미국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12월8일 2014년 예산안 심의 의회에서 핵협상 타결로 경제 부양효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진=AP>

러시아의 ‘중동 복귀’

미국은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을 통해 중동 출구전략을 펴 왔으며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은 미국이 더 이상 중동에서 군사력 사용을 원치 않음을 분명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리아 화학무기 해법도 중동 출구전략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은 이미 2011년부터 비밀 협상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란과의 비밀 협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리아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에 역내 동맹국들이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차지한 이집트 군부는 무르시 지지세력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경제·군사 원조를 보류한 미국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대규모 러시아 사절단을 카이로로 불러 회동을 갖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면서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보냈다.

사우디와 다른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란 관계개선을 국가 존립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도 문제지만 사우디는 이란이 이번 협정을 통해 고립을 탈피하고 자국뿐 아니라 바레인과 카타르 내 시아파 무슬림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영향력 확대도 경계대상이다. 이는 결국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확대로 이어지며 지금까지 사우디가 누리던 위상을 심각히 훼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아랍에미리트, 터키, 바레인 등은 벌써 이란과의 관계개선 모색에 나서는 분위기다.

사우디는 미국의 시리아 해법이 결국 이란의 영향력만 키웠다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거부하는 초강수를 뒀다. 사우디는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도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으며, 만약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핵농축 활동 중단을 명시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대이란 결의안을 포기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 의도를 숨기고 있으며 중간합의로 시간을 벌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반면 미국의 목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고농도 우라늄 농축은 불용하지만 저농도 농축은 용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차이를 보인다.

이번 제네바 합의에 따른 미국과 이란 간 데탕트 분위기는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국제 역학관계 변화를 가져왔다. 러시아의 중동 복귀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핵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합의 저지를 위해 날아간 곳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화학무기 자체 폐기를 골자로 하는 외교적 해결안을 내놓아 시리아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이란과 함께 시리아 관련 안보리 결의안 도출을 반대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가 러시아에 손짓을 보내는 것도 중동에 불고 있든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당장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헤게모니는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릴 것이 분명하다.

핵협정으로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대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제재로 발목 잡혔던 이란이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주변 아랍국가와 화해에 나선다면 자연히 이란의 입지가 넓어지게 된다. 더 이상 미국 독주체제가 아닌 중동의 춘추전국시대가 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