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은 하마스의 겨울?
“이란에 뺨 맞고 이집트에 사형선고 받았다.” 최근 하마스(Hamas)의 한 고위관리가 진퇴양난에 빠진 하마스의 입지를 한탄하며 한 말이다. 중동지역 반정부 시위 이후 이슬람 세력의 집권과 함께 떠오르던 팔레스타인 이슬람 조직 하마스가 요즘 심상치 않다.
2011년 이집트 반정부 시위 이후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s)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튀니지에서 이슬람 정당 안 나흐다가 집권할 때만 해도 하마스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하지만 현재 하마스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뿐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국이던 시리아와 이란으로부터 냉대받는 등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돌아보면 반정부 시위는 하마스에게 마냥 유리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하마스는 예측 불가능성을 동반한 반정부 시위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겪으면서 고비마다 조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그 책임을 지게 됐다. 하마스는 시리아 반정부 시위 초기 시리아 반군의 손을 들어 주면서 전통적인 우방국인 시리아와 이란의 눈밖에 났다. 당시 하마스 정치국 위원장인 칼레드 마샬은 시리아 정부군이 시리아 국민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해 시리아와 이란의 분노를 샀다.
이란은 수십 년 간 하마스에 대한 경제·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마샬의 발언을 계기로 하마스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였다. 이란의 하마스에 대한 지원 중단은 가자지구(Gaza Strip)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 정부에 적잖은 경제적 타격을 가져왔다. 전통적인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 수니파 이슬람 조직인 하마스를 적극 지원해온 이유는 팔레스타인 해방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하마스의 무력투쟁을 돕기 위해서였다.
이란·시리아 지원중단, 심각한 타격
하마스에 불리하게 된 또 다른 변수는 새로 선출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대외관계에서 온건한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심양면으로 하마스를 적극 지원해왔던 시리아도 반군을 지지하는 듯한 하마스의 발언에 발끈해 그동안 하마스 정치국 위원들에게 제공해왔던 망명처에서 떠날 것을 요구했다. 하마스는 별 수 없이 이집트로 해외본부를 옮겨야 했다.
하마스가 시리아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우방국인 시리아와 이란뿐 아니라 이들과 긴밀한 공조관계에 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Hezbolla)와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 조직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이라는 대의 아래 연합전선을 펼쳐왔다.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리아와 공생 관계에 있는 헤즈볼라는 긴 내전으로 힘겨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해 무장대원을 시리아에 파견해 내전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하마스에 가장 큰 타격은 무르시 대통령의 실각과 이집트 군부의 권력장악이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소속인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 하마스는 이집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쏟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르시는 지난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할 때 하마스를 적극 지원하기보다 서둘러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중재하면서 자국의 안정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도 하마스는 여전히 이집트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히 공조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상황은 이집트 군부가 지난 7월 무르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권력을 잡으면서 급변했다. 이집트와 하마스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았다. 이집트 군부는 시나이 반도의 치안불안을 부추기는 이슬람 조직들이 하마스와 관련이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더구나 가자지구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 땅굴을 이집트 국경 쪽에서 막아 가자지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전철 밟나
이집트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의 앙숙관계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이집트 자유 장교단이 파루크 국왕을 몰아내고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무슬림형제단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자유 장교단이 권력 나누기를 거부하자 무슬림형제단은 1954년 자유 장교단의 지도자 가말 압둘 나세르 암살을 시도하면서 양측 관계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된다. 나세르는 무슬림형제단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통해 무력화시켰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이집트에서 목도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과 이집트 군부 간의 권력투쟁 양상은 1950년대와 닮은꼴이다. 1924년 창설돼 90여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무슬림형제단은 제대로 정치력을 발휘해보기도 전에 너무 허무하게 권력을 군부에 뺏기고 말았다. 결국 하마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비극적인 운명을 하마스가 따라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란과 시리아를 대신할 수 있는 하마스의 우방국은 카타르와 터키 정도인데 카타르는 최근 아들이 국왕직을 계승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인데다 하마스에 대한 지원을 껄끄러워하는 다른 걸프국가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터키는 하마스에 눈을 돌리기에는 시리아 문제가 더 시급하다.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가자지구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이집트의 반무르시 조직 타마루드를 본딴 팔레스타인판 타마루드 조직이 하마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마스가 이처럼 심각한 안팎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