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항전 ‘하마스’는 어떤단체?
이스라엘 실체 인정 않는 무슬림형제단 분파
“휴전 거부로 이스라엘 반감 확대 반사이익” 분석도
이집트가 제안한 휴전 중재안을 거부하며 결사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다.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 앞글자를 딴 하마스는 적대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이슬람 무장 세력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지정했고 지난 6월 출범한 팔레스타인 통합정부 구성에 하마스가 파타와 함께 한 축을 이루자 이 통합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정파는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와 요르단강 서안을 지배하는 온건 성향의 파타로 양분돼 있다.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 운동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출신 인사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러한 태생적 조건으로 하마스는 2012년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의 대통령 당선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2000년 9월 시작된 제2차 인티파다(봉기) 후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을 주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로부터 테러조직으로 지정됐다.
테러 조직 지정에 따른 유럽 국가의 경제 제재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으로 이곳 주민의 삶은 극도로 열악해 졌다.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에 2004년 하마스 창시자인 아흐메드 야신과 그의 후계자 압델아지즈 란티시가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협조적인 온건 성향의 파타에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06년 총선에 참여, 전체 132석 중 76석을 확보하며 집권당이 됐다.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이 파타의 부정부패와 무능함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통합내각이 깨지고 나서 하마스는 가자에서 파타를 몰아내고 독자적인 행정부를 꾸렸으나 이스라엘이 강도 높은 봉쇄정책을 강행하는 바람에 가자 통치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다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22일간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대화보다는 투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수립한다는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스라엘은 파타가 하마스와 통합하는 걸 극도로 꺼려 왔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2012년 11월 8일 동안 교전한 끝에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 협정을 맺었으나 이후에도 양측의 로켓포 공격과 보복 공습이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올해는 유대인 정착촌 청소년 3명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납치, 살해된 사건이 기폭제가 돼 지난 8일부터 일주일 넘게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하마스가 이집트가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휴전 거부로 반사 이익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계기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자의 무장단체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포탄을 발사할 때 주변에서는 ‘텔아비브를 폭발시켜라’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또 하마스는 교전 기간 이스라엘의 더 깊숙한 진영까지 로켓 포탄을 발사하고 가자 발 무인기와 무장 대원을 이스라엘 상공과 해변에 침투시키는 등 기존보다 향상된 무기와 용맹함을 과시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가자에 있는 알아즈하르대의 므카이마르 아부사다 정치학과 교수는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폭격 작전을 흡수해낼 수 있는 조직”이라며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피해를 하마스와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이스라엘 측으로 돌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아울러 FT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하마스의 입지가 강해진 반면 파타는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서 비판에 직면해 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여 외부 접촉이 철저하게 차단돼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 ‘천장 없는 교도소’로 불리기도 한다.
약 180만명의 가자 주민과 하마스는 지난해 7월 무슬림형제단의 이집트 무르시 정권이 군부에 축출되고 나서 강력한 후원국을 잃게 됐으며 최근 경제난까지 겹쳐 주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