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유독 강한 이스라엘, 왜?

이스라엘 창조경제의 산실인 와이즈만 연구소 <사진=위키미디어>

와이즈만 연구소 중심 독보적 산·학·연 협력 모델

세계 최대 복제약 제조업체이며 제약 매출 세계 9위 테바(Teva), 바이오 농업 분야의 세계적 기업 에보젠(Evogene), 로켓 기술을 응용해 초소형 카메라로 내장을 촬영하는 첨단 내시경 기술 개발사 기븐 이미징(Given Imaging)…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생명과학 업체들이다. 1996년 186개였던 이스라엘 생명과학(BT) 관련 업체가 2010년 1100개로 크게 늘었다. 790만 인구에 경상북도 크기만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BT산업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먼저 이스라엘 과학기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연구소를 꼽을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에서 신기술에 기반한 새 제품이 끊임 없이 나온다. 텔아비브 남쪽에 자리잡은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는 이스라엘의 기술개발 본산지로 2300여 명의 연구진이 있다.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다 요나스 (Ada E. Yonath)도 이 연구소 소속이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하임 와이즈만이 건국 이듬해인 1949년 설립한 국책 연구기관이다. 1959년 기술지주회사 예다(YEDA)를 설립해 첨단기술 상업화를 유도해왔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특허권을 통한 연간 로열티 수입액만 1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59년 설립된 예다라는 기술이전 전문회사를 통해 특허관리와 상용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다에서 기술을 이전 받은 많은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로 성공을 거뒀다. 많은 전자·IT 업체들 또한 와이즈만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다.

기븐 이미징이 개발한 필캠. 알약 안에 장착된 초소형 카메라가 환자의 몸속에 들어가 내장 상태를 촬영한다. <사진=기븐이미징>

주요 대학에도 예다와 같은 기술이전센터가 설치돼 있다. 텔아비브 대학의 라못, 히브리 대학의 이쑴 등이 그것이다. 이스라엘 주요 3개 대학의 특허료 수익은 연간 10억 달러, 전체 대학은 연간 20억 달러가 넘는다. 3000여 개 특허를 갖고 있는 텔아비브 대학은 플래시 메모리에 이용되는 에러 커넥션 알고리즘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테바가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한 배경엔 이스라엘 특유의 산·학·연 협력 모델이 있다. 와이즈만 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코팍손’을 개발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코팍손의 신물질도 와이즈만 연구소가 최초로 발견해 예다를 거쳐 테바에 건너가면서 1995년 신약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첨단 군사기술을 의료기기에 응용

이스라엘 군이 보유한 최첨단 방산기술 상업화에 성공한 업체들도 많다. 기븐 이미징은 군사기술을 의료기술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에서 만든 알약을 환자가 삼키면 알약 안에 장착된 초소형 카메라가 환자 내장 상태를 촬영해 준다. 마취할 필요가 없고 환자가 구토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제품은 ‘로켓 머리에 붙는 초소형카메라가 알약에 들어간다면?’이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미사일 타깃을 추적해가는 기술을 연구하던 로켓과학자 가브리엘 이단의 아이디어가 창업의 씨앗이 됐다. 이단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내놨을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은 상용화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적인 카메라 제조사 올림푸스도 이 사업에 뛰어들어 알약 안에 들어가는 소형 카메라를 제작하고 있다.

테바의 히트제품 아리셉트(Aricept). 세계 최대 복제약(제너릭) 제조업체인 테바는 지난해 한국 제약회사 한독과 합작법인 ‘한독테바’를 설립했다. <사진=테바>

이스라엘 생명과학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분야가 동시에 골고루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과학 산업의 62%를 차지하고 있는 의료기기 분야는 이스라엘이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로 의료기기 특허 세계 1위, 의료기기 솔루션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은 생명공학과 제약 분야가 각각 12%씩 차지하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업체가 에보젠이다. 세계적인 바이오그룹 컴퓨젠(Compugen)이 2002년 설립한 자회사 에보젠은 바이오 농업 분야의 선두주자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만들려면 농작물의 유전자를 밝히고 그 안의 특징을 증명한 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에보젠은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농작물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농작물에서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에보젠이 보유한 유전자 특허는 1500개 이상이며 온실에서 매년 130여 개 품종을 재배해 유전학 연구를 하고 있다.

숙련된 기술인력, 잘 조성된 하이테크 환경, 투철한 기업가 정신,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 유대인 네트워크 등이 이스라엘 생명과학산업 발전의 엔진이다.

이스라엘에서 통하는 정책이 다른 나라에도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아이디어도 현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이스라엘 식을 고집하기보다 각자 실정에 맞는 과학정책 개발에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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