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황무지에 꽃 피운 최첨단 산업국

나스닥 상장사 유럽보다 많아…지나친 안보 이기주의 지적도

1948년 5월14일. 팔레스타인 유대인 지역은 긴장과 기대 섞인 고요가 감돌았다. 북부 옛 도시 사파드부터 남부 네게브 사막 황무지까지, 예루살렘 골목길에서 새 도시 텔아비브 광장까지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유대인 65만 명이 라디오 주위에 모여들었다. 오후 4시 정각, 잡음을 뚫고 그들의 지도자 다비드 벤 구리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전사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유대민족의 역사적 권리와 국제연합의 결의에 의해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수립하고, 그 나라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이 세워진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다시 생긴 유일한 나라다. 나라 없는 민족이 겪은 고난은 컸다. 다시 돌아온 영토도 적국으로 둘러싸인 화약고였다. 힘겹게 돌아온 이스라엘서 살아가기 위해선 위험 지역을 안전한 곳으로, 척박한 땅을 비옥한 토지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 근면하고 창의적인 인력이 유일한 자산이었다.

동예루살렘 하르 호마(Har Homa) 지역 팔레스타인 소년의 집 뒤로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되고 있다. <사진=AP>

1인당 GDP 2만8700달러

이스라엘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죽었던 언어를 살렸으며 인구가 건국 당시보다 13배 늘었다. 최대도시인 텔아비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신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 따르면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이스라엘 회사는 유럽 전체보다 많다. 인구대비 벤처캐피탈 투자 액수는 미국의 2.5배, 유럽의 30배, 인도의 350배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세계 최고다. 1인당 GDP는 2만8700달러(2012년).

경제뿐 아니라 정치·군사·경제적으로도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로비단체들을 앞세워 국제정세를 주도하는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라엘만큼 능수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한 사례는 찾기 드물다. 거기엔 핵무기와 각종 첨단무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돼 있다. 덩치 큰 아랍국가들이 넘볼 수 없는 억제력과 가혹한 안보 독트린을 확립했다. 건국 초기 전쟁을 벌였던 이집트·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카타르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800만 인구, 한국의 3분의 1 면적의 이스라엘이 역경을 헤쳐 강소국으로 떠오른 가장 큰 요인으로 흔히 교육이 꼽힌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투비아 이스라엘리(Tuvia Israeli·59)는 “토론과 논쟁을 중시하는 교육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일궈낸 힘”이라고 말했다. 유대인이 자랑하는 교육서가 바로 토론과 논쟁 대화집이다. 이스라엘리 전 대사는 “유치원 때부터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뒤 많은 질문을 유도한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한다. 논쟁과 토론 교육은 아이들의 합리성을 길러주는 확실한 방법이며 이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올해 건국 65주년을 맞은 이스라엘은 기로에 서있다. 주변에 수많은 적을 둔 태생적 환경 탓에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서 자국 안보 이기주의에 너무 몰입해 보편적 정의를 등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비판이 높아졌다.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대재앙이었다.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지로 흩어졌다. 분쟁의 중심에 동예루살렘이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 지역을 독립국 수도로 삼을 계획인데, 이스라엘은 이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해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맞아 유대인들이 옛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열린 ‘살아있는 자들의 행진(March of the Living)’에 나섰다. 6각 별모양은 고대 이스라엘 다윗왕의 방패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국기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진=AP>

인적자원 하나로 일궈낸 강소국

동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병합한 지역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관할하지만 유대, 아랍, 아르메니아 기독교계가 구역을 나눠 함께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자치기구 청사 오리엔트 하우스도 이곳에 있다. 동예루살렘이 중요한 이유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성지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전산(Temple Mount)은 유대신앙의 중심지면서 무슬림의 메카이다. 시리아와 힘겨루기하고 있는 골란고원도 화약고다. 1979년 캠프데이비드협정에 의해 넘겨줬어야 할 골란고원을 수자원, 군사 요충지란 이유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위해 헌신하다 얼마 전 작고한 유대교 랍비 메나햄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중요한 종교적 속성이 없이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우리가 원한다면 단 5분 만에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부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건국 당시 이스라엘은 비교적 단일인종으로 구성돼 있었지만 지금은 세속적인 유대인과 소외된 아랍 소수인종, 다산으로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고 극보수 유대교 커뮤니티, 시오니즘을 강조하는 종교적 민족주의자, 옛 소련에서 온 이민자, 소외된 에티오피아인, 그리고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의 저소득 유대인들로 이뤄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변모했다.

슐로모 벤아민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신문 기고에서 “이스라엘의 국가의식은 아직 홀로코스트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국가로 진화하지 못했다. 현재 이스라엘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항상 최악의 경우만을 상정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 과거 지도자들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탈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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