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안보지형 뒤흔든 이집트·시리아 사태
유혈사태로 치달은 이집트 정국불안과 시리아 내전이 중동지역의 안보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중동 안보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입지를 중심으로 중동 정세를 살펴본다.
이스라엘의 안보 독트린은 강력한 국방력과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억지력(deterrence) 확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선제공격도 불사했다. 수십년 간 유지해온 이스라엘의 안보전략이 남부의 이집트 사태와 북부의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처음으로 평화협정을 맺은 아랍국가다. 군부와 이슬람세력인 무슬림형제단 간 대결구도에서 누가 승리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만약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최악의 경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전면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또 이스라엘은 가장 중요한 아랍 동맹국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은 아랍 우호국은 요르단과 모로코 정도인데, 이들 국가가 중동의 맹주인 이집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집트-이스라엘 밀월관계 막 내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지난 30년간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왔다. 1981년 권좌에 오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므나헴 베긴 총리를 시작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까지 8명의 이스라엘 총리와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통치와 철수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이집트와 긴밀히 공조했으며, 이스라엘 해군 잠수함과 군함은 이란의 영향력을 감시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자유롭게 통행한 것은 물론 수단에서 가자 지구로의 무기 밀반입도 감시할 수 있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남부전선에 제공한 안보 덕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시리아를 견제하는 북부전선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1985년 이후 국방비를 대폭 삭감해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의 실각은 이스라엘-이집트 밀월관계 종말을 의미한다. 2011년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주요도시로 번지면서 이집트군이 시나이 반도 샤름 엘-셰이크로 진입한 것은 평화협정 위반인 셈이다. 이집트 새 정부가 시나이 반도에 이집트군을 재배치하겠다고 나설 경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원치 않는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새로운 안보전략을 짜야 한다.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매년 약 15억 달러의 경제·군사원조를 받으며 중동에서 가장 고도화·서구화한 군을 보유하고 있다. 병력 약 50만명과 F-15 100여대를 포함한 전투기 500대, 최신예 M-60을 포함한 탱크 3000대 등 막강전력을 자랑한다. 새 이집트 정부가 무바라크와 달리 가자지구를 차지하고 있는 하마스와 관계개선을 모색한다면 이스라엘 남부전선의 긴장고조는 시간문제다.
이스라엘 남부전선의 또 다른 위협요소는 시나이 반도 내 이슬람주의 단체들이다. 이 지역 주민 70%는 중동지역의 유목민 베드윈인데 알카에다 세력이 확장하면서 이집트 정부로부터 차별 받던 베드윈족이 이슬람화하거나 자생 살라피(극렬 이슬람주의자) 조직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이스라엘 목표물에 대한 이들의 공격이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군사적 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압델 파타 앗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최근 시나이 반도내 이슬람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지시했던 것이다.
비대칭전 무력사용 수위조절 딜레마
시리아 내전과 반군 내 이슬람세력의 득세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잠잠했던 이스라엘 북부전선의 새로운 안보불안 요소로 지목된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탄탄할 때에는 이집트와의 공조 없이 시리아 단독으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낮았던 만큼 이스라엘 안보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자브핫 안누스라’에 반군이 몰리고 다른 이슬람 성향의 반군이 조직되면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반군이 승리하면 다음 적은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스라엘의 우려다.
이스라엘의 안보전략은 이제 전통적인 국가간 전면전보다 하마스, 시나이 반도 이슬람조직, 헤즈볼라, 시리아 반군 이슬람조직 등 비국가 단체와의 비대칭전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올 7월 국방예산 감축에 따른 군 간소화 계획을 마련했다. 재래식 무기를 줄이고 최신 잠수함 도입, 사이버전 등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사는 다음 비대칭전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오느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비대칭전에서 이들 조직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도로·항만·공공건물·교량·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공습하는 과도한(disproportionate) 무력사용을 통해 보급을 차단하고 적의 피해를 최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2008~09년 가자지구 하마스를 겨냥한 ‘캐스트 레드’ 전쟁에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면서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이는 이스라엘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면 2012년 ‘구름 기둥’ 전쟁에서는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공습도 자제하면서 실제 민간인 피해가 비교적 적었다. 헤즈볼라의 경우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에서 무자비한 공격에 따른 기반시설 파괴와 민간인 피해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전쟁 이후 6년간 헤즈볼라의 도전이 없었던 만큼 이스라엘의 억지력이 효과를 발휘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전면전과 비대칭전 모두에 대비할 것인지, 다음 비대칭전에서 억지력 확보를 위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할 것인지, 국제사회의 동의와 지지를 얻기 위한 제한적인 공격에 그칠지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