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편견 딛고 ‘글로벌 인재’ 꿈 키운다

<사진=김남주>

‘이주노동자 대부’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새까맣게 그을린 바닥과 천장. 어지럽게 널린 집기들이 하나씩 건물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벽면 한 쪽을 차지한 급식대의 형체가 이곳이 식당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제 복구작업 들어가려고 청소 시작했어요. 연말이면 다시 무료급식소를 운영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난 30년간 이주노동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김해성(52) 목사를 10월29일 그가 일궈온 서울 오류동 지구촌사랑나눔 현장에서 만났다.

-이주노동자들이 자던 쉼터에 불이 났다. 어떻게 된 일인가.
“10월8일 밤 11시쯤이었다. 1층 급식소가 전소했고 부상자 10명이 치료받던 중 방화범 1명이 숨졌다. 아직도 3명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보험에도 들지 않았고, 사상자 10명 모두 의료보험이 없다. 가해자는 사망하고 가족들은 배상능력이 없는데다 모두 외국인이라 국가지원도 없다. 그저 망연자실했는데, 그래도 사랑의 손길이 계속되고 있다.”

김해성 대표가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성낙승 한국이민재단 이사장 일행과 함께 불탄 무료급식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남주>

-사망한 방화범의 치료비를 내주고 장례까지 치러줬다는데.
“쉼터에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뻔 했다. 일단 부상자들을 이송시킨 뒤 너무나 화가 나서 방화범이 누군지 보려고 고대구로병원으로 쫓아갔다. 도대체 왜 그랬나 싶어서. 그런데 그는 화재 와중에 추락하면서 뇌손상을 입어 수술을 받느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전히 분이 안 풀렸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찔렸다. 지금까지 외국인노동자를 돌보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며 정부를 상대로 투쟁까지 했는데, 역시 중국동포고 어려운 형편인 방화범에 대해 화를 이기지 못했던 거다. 목사로서 ‘원수도 사랑하라,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해 왔는데, 나에게 피해 끼친 사람을 미워하는 자신이 창피해졌다. 다시 중환자실을 찾아가서 의식 없이 사경을 헤매는 방화범에게 사과를 했다. ‘당신을 미워했다. 용서해 달라. 병원비, 혹시 사망하면 장례비 모두 책임질 테니 깨어나라.’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르지만 얘기했다.”

중국동포 쉼터 불지른 가해자 용서

-용서가 되나.
“용서 안 하면 또 어떻게 하겠나. 어차피 방화범은 배상능력도 없고, 결국 사망했다. 용서 아닌 용서를 하면서 내 마음이 평화를 누리게 됐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니 내 자신이 피폐해지고 상처를 받았던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마침 그날은 스리랑카 군사령관 일행이 방문한 날이라 숙소에 모셔놓고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일로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러 초기에 발견해서 그나마 이 정도지, 아니면 건물이 전소했을 텐데 그건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당시 4층 쉼터에는 중국동포 100여 명이 자고 있었다. 불이 옮겨 붙었으면 큰 인명피해가 날 수 있었고,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없었을 거다.”

-힘든 일을 겪었는데 긍정적이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1층 급식소 화재만이 아니라 전기, 가스, 상하수도시설, 2층병원 전산망, 사무실 통신 등 겉으로 보이지 않던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쉼터에서 사람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쉼터에 있던 사람들은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 카페와 체력단련실에 나눠 자고, 중국동포교회에서 밥을 해서 나르면 길거리에서 식사한다. 정부지원 하나 없지만 곳곳에서 후원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청소를 시작했으니 쉼터와 병원부터 우선 복구할 거다.”

김해성 목사가 화재 현장에서 나온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지구촌 쉼터 건물앞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남주>

-이주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노동자 지원활동에 뛰어든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1980년이었다. 처음엔 탄압받는 도시빈민, 철거민, 노점상부터 시작했다. 노동자선교 교회를 만들어 노동상담을 했다. 1990년대 초부터 중국동포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불법체류다 보니 임금체불, 산업재해, 폭행, 사기를 당해도 신고도 못했다. 신고하면 상대를 처벌할 수 있지만 강제추방 되니 당하고만 있는 거다. 인권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보며 그들과 함께하게 됐다. 점차 다문화가족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지구촌학교’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활동한다.”

-지구촌학교는 국내 최초로 초등학교 인가를 받은 다문화 대안학교인데, 설립 계기는?
“내게는 직접 낳은 아들 딸 말고도 입양한 흑진주 3남매가 있다. 한국 아버지와 결혼한 가나 출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만난 아이들인데, 그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데려와 키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갔더니 교장이 와서 ‘너희 어느 나라에서 왔니’ 묻고, 그 다음에 교감이, 또 교무부장이 똑같이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 거다. 한국 국적인 아이들인데 눈물을 흘리며 집에 가겠다고 그랬다. 이 아이들도 가르쳐야 하지 않나. 지구촌학교에 다니며 흑진주 3남매는 꿈을 찾아가고 있다. 모델이 되고 싶어 하는 첫째 아이는 내년부터 장윤주씨가 모델수업을 해주기로 했다. 둘째는 어린이전교회장도 맡았는데 ‘오바마 대통령도 까만 얼굴이지만 대통령이 되지 않았냐’고 연설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더니 직접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번 와달라고 초청장도 보냈다. 언젠가 찾아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다.”

부모 잃은 ‘검은 피부색’ 3남매 입양

-다문화가정 자녀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뭔가.
“우리나라 다문화가정 대부분은 한국남자와 외국여성 커플인데, 시집오는 여성 중 현지에서 이혼이나 사별한 뒤 자녀를 놔두고 한국에 재혼으로 온 경우가 있다. 그들은 2년 이상 살면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현지 자녀를 데려올 수 있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들 역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외국아이들이나 마찬가지여서 한국어도 못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학교를 보내도 80%가 이탈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8000명 가까이 된다. 이 아이들은 지금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노르웨이처럼 인종폭동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은.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다. 지원이 아무리 많아도 한국인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다문화사회는 요원한 일이다. 캠페인만으로는 안 된다.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차별적인 발언이 신고되면 바로 벌금 등으로 처벌한다. 그냥 지원만 해서는 안 된다. 약자를 일으켜 세우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또 외향적 국제화보다는 안내판을 다양한 언어로 보여주는 등 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소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내향적 국제화가 필요하다.”

<사진=김남주>

-아시아 국가 중 스리랑카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던데.
“17년 전 성남에서 추운 겨울 일자리를 구하던 외국인 2명을 도와준 적이 있다. 스리랑카 젊은이들이었다. 그렇게 스리랑카 공동체가 형성됐고, 그들 중 한 명이 작은 아버지를 초청해 달라고 해서 극진히 대접했다. 스리랑카로 초청받아 가기도 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이후 국무총리가 되고, 지금은 대통령이 된 마힌다 라자팍사다. 그가 코끼리 두 마리를 선물해 서울대공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후 스리랑카에 자주 오가며 한국어학교와 병원을 짓고 있다. 지난해엔 반군지역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닭 10마리와 그물 1채가 필요하다고 해서 성금 3000만원을 모아 전달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지역을 안내해줬던 군사령관이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날 한국을 방문한 거고, 그래서 마침 사무실도 들르면서 화재를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군사령관에게는 공로패도 전달했다.”

김해성 대표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했다. 정부가 ‘다문화인차별금지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고, 이번 화재 역시 후원과 자원봉사가 이어지면서 복구가 시작됐다. “화재가 발생한 그 순간은 정말 눈앞이 캄캄했는데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한국에 일하러 오는 중국동포들은 점점 줄고 있고, 다문화 자녀들은 앞으로 나라의 미래가 될 텐데 어서 포용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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