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인도 정부가 성폭행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

2012년 12월16일 밤 9시30분 무슨 일이…

2012년 12월 16일 사립중고등학교의 전세통학버스 운전사인 람 씽(Ram Singh)은 친동생을 포함한 동네친구들 5명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아침부터 소위 ‘파티(Party)’를 벌였다. 실직한 택시운전사, 과일장사, 체육관 청소부, 지방에서 온 구직자, 17세의 소년 등으로 구성된 참석자들은 우리가 델리의 거리에서 아주 쉽게 마주치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저녁 무렵 술이 거나해진 그들은 람 씽의 통학버스를 불법영업 전세버스로 가장하여 ‘뭔가 재밋거리’를 찾기로 합의했다. 밤 9시 30분 경 물리치료사 과정을 공부하는 23세 여학생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버스에 탔다. 이 남녀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람 씽 등은 먼저 남자를 쇠몽둥이로 때려 기절시키고 여자를 뒷좌석 쪽으로 끌고 가 윤간했다. 저항하는 여자를 쇠몽둥이 등을 사용해 폭행했고 윤간이 끝난 후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여자 몸에 가했다. 그들은 초주검이 된 남녀를 델리공항 근처의 고가도로 밑에 버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밤 11시 경, 길에 버려진 두 남녀는 행인에게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여자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복부에는 내장이 5%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12월 27일 이 여자는 싱가포르의 장기이식 전문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다음 날 사망하고 말았다. 이것이 일명 ‘다미니(Damini, ?점화(點火)란 뜻의 힌디어)’사건으로 알려진 2012년 12월 16일 델리 집단성폭행?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인도?성폭행, 2011년?2만4206건 신고

‘다미니’는 원래 성폭행 피해자를 위해 사회는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투쟁해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1993년 인도영화의 제목이다. 12월 16일의 사건이 성폭행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분노를 점화시켰다는 의미에서 피해자를 ‘다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직후, 인도 각지에서 정부의 강력한 예방책 수립과 범죄자에 대한 신속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델리의 시위는 진압에 최루탄과 물대포가 동원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격렬했다. 정치권도 여러 대책을 제시하느라 바빠졌고 수상 만모한 싱(Manmohan Singh)은 ‘다미니’를 애도하기 위해 신년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집권 국민회의당의 당의장이자 가장 강력한 정치인인 소니아 간디(Sonia Gandhi)도 평소 잘 응하지 않던 TV 인터뷰에 나와 ‘나는 한 사람의 여자인 동시에 어머니로서 시위대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오늘 우리는 그 피해자가 정의로운 대접을 받을 것임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들도 이 사건 이전이라면 대충 취급했을 성범죄를 머리기사로 다뤘고 해외언론들은 인도의 성범죄에 대한 분석 기사를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단연, 성범죄는 2013년 인도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성범죄가 종종 일어난다. 이 경우 우리는 범죄자에게 분노하고 피해자를 동정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거리에서 격렬하게 정부를 성토하지는 않는다. 인도의 국가범죄통계국(National Crime Records Bureau)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강간은 2만4206건이 발생했다. 즉, 22분마다 1건 꼴로 강간이 발생한 것이다. 사회적 인식과 인습에 의한 미신고 건수가?포함되진 않았지만, 인도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강간한 경찰에게 무죄 선고… 정부에 대한 분노 커

인도인들의 분노는 강간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법체계의 무능과 나태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의 결핍으로 더욱 불타오른 것이었다.

2012년 11월 13일 뻔잡(Punjab)주 빠띠알라(Patiala)의 18세 소녀가 같은 마을의 남자 두 명에게 강간당했다. 소녀는 사건 직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였지만 담당경찰관들은 사건접수조차 하지 않았고 그 소녀는 사건 발생 2주가 되는 날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에 따르면 지난 2주간 그녀와 그 가족들은 소위 중재자라고 나선 사람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받았으며 경찰서에 찾아가도 몇 시간씩 기다리게만 할 뿐 이렇다 할 피해자조사도 없었다고 한다. 이 소녀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항의를 하자 비로소 주정부가 개입하여 경찰관들을 징계하고 피의자들을 체포했다.

1973년 발생한 강간사건에 대한 형사소송법(Criminal Law Amendment Act)을 바꾼 역사적 사건 즉, 마투라(Mathura)사건의 경위도 한번 살펴보자. 남편 실종을 신고하러 간 16세의 신부가 경찰서 내에서 경찰관 2명에게 강간당했다. 인도 연방최고법원은 피의자인 경찰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이유는 피해자가 소리를 질러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고 신체상 어떤 상해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미 성적으로 익숙한 상태였으므로 합의(consent)하의 성관계였다는 것이었다.

세계적 수준의 법률가들로 구성되었다는 연방최고법원의 판결이라고 하기에는 상식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이 판결은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그 이후 재판에서는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면 그것을 그대로 추정(presume)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었다. 꼭 강조해야 할 점은 이 법 개정에만 10년이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또 짚고 넘어가지 할 것은 ‘두 손가락 검사법(Two Fingers Test)’이다. 인도의 법률학 교과서는 이 ‘두 손가락 검사법’이 법정에서 증거로 통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검사법은 ‘의사가 두 개의 손가락을 피해자의 질(膣)속에 넣어 이완성(弛緩性), 처녀막 손상, 사건 이전의 성경험을 판단’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받게 될 또 한 번의 상처와 개인의 성결정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감각한 이 검사법은 몰상식의 극치다. 인도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만하다.

어쨌든, ‘다미니’사건은 강간에 대한 인도법률체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강간에 대한 최고형은 사형으로까지 강화되었고 스토킹(Stalking), 관음증 등 그 동안 범죄로 규정되지 않았던 성범죄에 대한 처벌도 신설됐다. 다미니를 살해한 범인들 중 1명은 재판 진행 중에 이미 자살하였고, 나머지 범인들도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압도적이다.

단, 사건 당시 가장 터무니없게 잔인한 짓을 했던 17세의 범인은 미성년법정으로 넘겨져 아마 3년 정도 후에는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 석방 후 그가 정상적인 생활, 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생명을 부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법률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는다고 해서 인도가 성범죄에서 자유로운?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도의 여류작가인 소니아 파렐로(Sonia Fareilro)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다미니의 본명을 영원히 모를 수 있지만 그 얼굴은 알 수 있다. 우리 여자들이 거울을 볼 때마다 그곳에 다미니가 있기 때문’이라며 인도의 현실을 개탄했다.

사실상 지난 6년간 인도의 강간사건은 2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인도 전역에는 장기체류자와 단기여행자를 포함하여 약 1만5000명에서 2만명의 한국인이 상주하고 있다. 인도에서 생활해야 하는 여성들은 파렐로의 다음 글을 기억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생활, 더 나가서는 생존의 기법을 터득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10대가 되었을 때, 나는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배웠다. 가능하면 혼자 서있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걷는다. 집 밖에서는 가슴을 양팔로 감싸야 한다. 남자들의 시선과 미소에는 절대로 응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사이를 지날 때는 항상 어깨를 앞서게 한다. 자가용을 타지 않는 한 어두워진 뒤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고홍근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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