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자살’ 생각하는 인도 실직자들

‘경기침체’, ‘대량해고’, ‘실직자’, ‘비관자살’. 이는 과거 유럽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신흥국 선두주자 인도 신문의 기사제목이다. 2012년 실직자 자살은 89명으로 집계되었다. 2011년 43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비관해 자살을 택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하반기 미국발 글로벌 경기 침체 당시에도 실업에 대한 기사가 이토록 심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과 무역 비중이 높았던 인도는 글로벌 경기 악화로 보석 가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산업의 타격이 컸고, 비정규직의 대량해고가 있었다. 경제개방이후 취업률 100%를 자랑하던 IIM과 IIT 졸업생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변도 있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임금 인상률도 주춤했다.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사 관리 방향을 정비했다. 성과에 비례해서 무능력자를 해고하고, 가능성 있는 인재를 새로 뽑아 기업에 수혈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했다. 당시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대량해고’, ‘업무가중’, ‘경쟁 심화’, ‘경력 관리 심화 ’, ‘직장에서 살아남기’ 등이었다.

그러나 거대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인도는 다른 국가보다 빠르게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게다가 선진국의 비용절감 활동으로 인도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일부 산업은 오히려 활성화 되는 경향까지 보였다. 인도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자 ‘그린채널(Green Channel)’을 통해 기존 경력자들을 다시 채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렇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인도의 실업 문제는 빠르게 잊혀졌다.

2011년 말부터 인플레이션에 대한 문제와 인도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2013년 현실로 나타났다. 올해 1/4분기 인도 경제성장은 5%를 기록했고, 2/4분기에는 10년 간 최저 성장률인 4.4%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 둔화는 노동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지난 몇 달간 산업 분야에 관계없이 수 천 명이 직장을 잃었다. 자동차, 인프라, 은행권 등 기존에 인도 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산업도 경기 둔화로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도 정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National Sample Survey Organisation), 2012년 취업률은 2년 전인 2010년에 비해 1.1%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까지 채용 계획을 갖고 있던 기업들도 하반기 채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인도 상공회의소(FICCI)에 따르면, 현재 수출 부문과 제조 부문이 고용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FICCI 조사결과 65%의 기업이 올해 고용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인도 주요 인사컨설팅 업체(Naukri.com)의 조사결과 2013년 3/4 분기 고용전망은 지난 8년 중 최악의 상황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내년에는 실업자가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 제조업 대량 해고가 있었던 2009년과 비슷한 수치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고학력자 취업도 암울하다. 인도는 경제 개방 이후 고급인력양성을 꾸준히 향상시켜 매년 엔지니어 75만 명, MBA 졸업자는 50만 명, 그 외 대학 졸업자는 300만 명을 배출하고 있는데, 경기가 빠르게 회복 되지 않으면 이들의 취업문이 막막한 것이다.

현재 인도의 경기 둔화 상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와 다르다.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이 해외인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면, 이번 경제 위기는 인도 국내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시점에 인도는 자국의 경제 체계 및 관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처럼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기와 노동시장 문제를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힘들다. 또한 과거 수출 중심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제조업 뿐 아니라 인도 경제를 이끌던 서비스업 부문도 상당부문 타격을 받고 있다.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방침도 다르다. 과거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사를 조정하였지만, 이제는 기업의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회사의 문을 닫고 있다. 현 노동시장 상황은 글로벌 생산 체인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한다. 그동안 인도 임금 인상률이 빠르게 진행되면, 비용절감을 위해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를 뜨고 있다. 심지어 인도 기업들도 주변의 저임금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 직후 인도노동시장은 능력 있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능력 있는 개인도 해고 위기에 놓일 수 있다. 또한 경기가 회복되어 재취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줄어들게 되었다.

최근 실직자들의 부류는 과거와는 다르고, 실업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수의 실직자가 비정규직이었다면, 최근 해고 대상은 전문직 종사자와 고소득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인생이었다. 경력 면에서 이들은 더 나은 직장과 임금을 찾아 ‘선택적’으로 이직하던 이들이다. 신흥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은 향후 소득을 고려하여 이미 대출로 집을 마련하고, 생활수준을 유지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이들에게 실직은 가장으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과 대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안겨 주었다.

또한 그동안 쌓아온 일과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이들 스스로 냉철하게 판단할 때, 경기가 회복되어 빠른 시일 내에 재취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갖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이들은 가장이라는 무게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좌절과 두려움을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기 침체가 실직을 낳고, 이로 인한 비관 자살은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장의 역할과 부담이 어느 사회보다 큰 인도에서 중산층 가장의 실직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이고, 결국 실직 비관 자살이 다른 사회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진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북벵골만 사업단 전임연구원>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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