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리포트] ⑦ 생명을 내어주는 소박한 이웃, 식민·독재 넘어 민주로
*기후변화 관련 국제활동단체인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가 3월16일부터 8일간 버마 남부 에야와디 삼각주 일대와 중부 만달레이 지역에서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수행 취재기 연재 7편 중 마지막 편을 싣습니다. <편집자>
아침밥 걱정에 늦잠도 못자고
양곤의 또 한 아침이 밝았습니다. 쌓인 피로를 풀 겸 늦잠을 즐깁니다. 마지막 날이니 공식 일정도 없지요. 하지만, 그게 그리 안 되네요. 호텔이 아침밥상을 언제 치울지 모르니까요. 어쩝니까, 일단 아침부터 들어야죠. 식후 다시 누우니, 잠이 오질 않네요.
한 주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첫 발의 두근거림. 버마NLD(민족민주동맹) 방문과 그 이들의 낙관적 정치. 수감생활에 지친 양심수와 가족의 고통과 희망. 쓰나미에 모든 걸 빼앗기고 망연자실한 에야와디 삼각주 저지대 사람들. 타들어가는 대지,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하늘을 섬기는 만달레이 주변 사막화지대 버마인들.
침대를 뒹구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수다를 떨다 지쳐, 널브러진 옷가지며 여행용품을 정리하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서너 시간을 보냈나요. 마웅 소(39·남)와 낀조(50·남)가 왔습니다. 그들도 늦잠을 즐긴 모양입니다.
여행을 함께 시작했던 낀조 친구 떼우(49·남). ‘8888민중항쟁’에 참여했다 18년을 감옥에 갇혀 살았던 인도계 버마 무슬림. 나흘 뒤부터 안보여 낀조에게 물으니, 어머니가 뇌졸중(중풍)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네요. 동행자에게 예의를 갖춰야죠. 정오가 다 돼 가는 시간. 병원을 찾았습니다. ‘반신마비’ 비보입니다.
‘반신불수’ 뇌졸중 떼조 어머니
떼우 어머니가 낀조와 마웅 소를 보더니 설움이 복받쳤나봅니다.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손짓을 하더니, 둘의 손을 잡고 고요히 잠이 들었습니다. 죽도록 고생한 아들과 친구들. 오랜 세월 영어의 몸을 벗고 이제 함께 살게 됐는데… 세월이, 세상이 야속합니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인근식당에서 떼우와 석별의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당에서 호텔까지 도보 30분 거리. 차가 막혀 걷는 게 빠를 정도. 도심 보행자의 고통과 위험이 상당합니다. 시내 주요도로에 횡단보도가 거의 없으니까요. 양곤에서 도로는 차량 통행용인 셈. 시민 걸음걸이는 독재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차가 빨간불에 서면, 그 틈을 타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길을 건넙니다.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죠. 여행자들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습니다. 난폭운전도 꼴불견. 운전 중 앞으로 사람들이 길을 건너면 경적을 울려대고 이리저리 비켜가며 곡예운전을 하니까요.
양곤의 대중교통 수단은 기차, 버스, 다이나, 택시, 자전거택시. 기차는 양곤 외곽을 마름모꼴로 한 바퀴 도는 순환선뿐입니다. 버스는 보통 규격과 좀 작은 게 있고요. 가격은 다르죠. 대부분의 버스는 한국·일본에서 운행하다 폐차하려던 중고품. 고쳐서 잘도 쓰네요.
‘다이나’(Dina)는 트럭을 개조해 짐칸에 의자를 덧댄 대중교통. 일본산 트럭제품 이름에서 유래. 양 옆에 마주앉고 그 가운데와 뒤에 난간을 붙들고 서서 탑니다. 버스보다 싸고 거리에 따라 요금을 달리 받죠. 택시는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대로.
자전거택시는 ‘사이카’라고도 불리며, 영어로 ‘릭샤’(역거, 力車).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유래한 말이죠. 사람이 끌면 인력거, 자전거가 끌면 역거. 자전거 옆에 2명(작은이는 3명까지)이 앉을 수 있고요. 대도시에서는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려 이용자가 많지 않지만, 중소도시에서는 인기가 좋답니다.
‘8년 이주노동’ 마웅 소 한글학원
1주일간 묵었던 호텔을 떠납니다. 짐을 챙겨들고 마웅 소 집으로 갑니다. 그는 양곤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8년여를 살았고,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재. ‘8888항쟁’ 세대는 아니지만 한국NLD활동을 해 기자도 여러 번 봤던 이죠.
그는 지금 양곤에서 한글학원을 운영합니다. 자격시험 3급을 합격해야 한국 취업·취학이 가능(관련비자 발급)하거든요. ‘코리안드림’이 유효한지, 운영이 잘된다네요. 2년여 전 결혼해 양곤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집 한 쪽을 강의실로 만들어 학원을 운영 중입니다.
마웅 소 부인도 한글을 좀 하네요. 여행자를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를 곧잘 합니다. 여행기간 부부에게 폐를 꽤 끼쳤습니다. 그들 집에 여러 차례 들렀거든요. 갈 때마다 차와 맥주를 대접받고요. 마지막 날에도 오후 일정상 짐을 맡기러 갔다 또 신세를 졌습니다.
오후 일정은 아웅 쉐(53·남) 한국NLD 초대 의장 집에 들르는 것. 한국에 망명 뒤 13년째 귀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올 때,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선물꾸러미를 들고 공항까지 나왔죠. 호텔로 그의 아들·딸이 찾아와 아버지의 선물은 전했습니다. 집에 와달라는 초청도 받았고요.
점심 뒤 여유가 있어 마웅 소 집 주변 재래시장을 둘러봤습니다. 여행 둘째 날 보족아웅산시장에서 몇이 론지(남녀 공용 치마)를 샀는데, 이 의상에 둘러매는 보조가방(버마산 천으로 만든)을 구하려고요. 열대과일의 신선한 향과 퀴퀴한 생선 썩는 냄새가 묘하게 섞인 시장.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 더위에 지쳐갈 쯤 백화점으로 들어갔습니다. 구경도 하고 피서도 할 겸. 도심에 하나 둘 백화점이 들어서는 중인데, 간 곳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빕니다. 건, 개발·선진국도 마찬가지지만. 규모가 작아 큰 마켓이라 해야 옳겠습니다.
13년 생이별 가족, 진한 그리움
마지막 여정은 아웅 쉐 한국NLD 초대 의장의 집. 그의 부인과 아들·딸, 그리고 장모가 함께 살고 있는 곳. 아웅 쉐는 그게 어딘지 모르죠. 그가 한국에서 모아 보낸 돈을 밑천삼아 구입했다니까요. 사진으로만 봤겠죠. 그 집을 여행자들이 먼저 찾아가는 것입니다.
양곤의 외곽지역. 작은 위성도시 같은 느낌. 택시로 꽤 오래 이동했습니다. 순환열차 철로를 넘어 한참을 가더니 어느 마을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며칠 전 봤던 아웅 쉐의 딸이 환하게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그 뒤로 부인과 장모까지 마중나왔네요.
생활용품, 문방구, 과자와 음료수 등을 파는 아담한 가게. 집 안쪽은 생활공간. 가계 앞 마당 의자에 앉아 과일을 들며 담소를 즐깁니다. 오가는 이들을 구경하고, 이웃 아이들 놀이도 보면서. 또 한명의 아는 얼굴이 나타납니다. 호텔에 찾아왔던 아들. 일터에서 조퇴하고 왔답니다.
석양녘 한적한 시골 정취에 빠져 있는데, 집안으로 들어오랍니다. 한국에 있는 아웅 쉐와 인터넷 채팅이 성사됐다며. 13년 동안 보지 못한 가족. 직접 못 와 여행자편에 선물을 전하는 아웅 쉐. 그의 목소리와 얼굴에선 진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부인과 자식, 그리고 장모도 마찬가지겠지만.
오기출 사무총장이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이것저것 골랐습니다. 갱지로 만든 노트, 깎는 나무 연필. 소박한 문구를 사며 옛 추억에 빠져드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 몽당연필과 갱지 시험지를 생각했을까요? “싸게 말고, 정가대로 받으라”며 계산을 합니다.
조금 뒤 저녁상이 차려졌습니다. 인천공항을 떠나올 때 유종순 선배가 그랬죠. 아웅 쉐 부인 음식솜씨 좋다고. 그도 자기 집에 가면 맛좋은 국수 줄 거라며 꼭 들르라고 했지요. 다시, 버마 예법. 손님만 상에 둘러앉습니다. 주인 들은 저만치 떨어져 지켜보고요.
‘행복의 물단지’, 버마의 마음
한 접시에 2인분씩은 담았나 봅니다. 지극 정성의 대접. 가운데는 5~6인분을 더 쌓아 놓고요. 맛 좋은 볶음국수를 즐깁니다. 아웅 쉐가 그리워 할 부인의 솜씨. 여행자들이 대신 호사를 누렸습니다. 가까스로 한 그릇을 비우는데, 더 먹으라고 성화입니다.
부인, 아들과 딸, 그리고 장모에게 여행자들은 오늘 하루 아웅 쉐가 된 셈이네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태도와 표정. 여행자들 가슴도 찡합니다. 자유롭게 두 나라를 오가는 여행자들. 몸이 묶여 그리 못하는 아웅 쉐와 그의 가족들. 괜히 미안해지네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못하고 여행자들 시중만 들고 있으니. 얼른 떠나야 저녁을 들 거라 여겼거든요. 집을 나와 골목길을 돌아드는데, 어느 집 대문 앞에 세워놓은 ‘예오센’ 위에 새긴 글자가 석양빛에 영롱합니다.
‘행복의 물단지’. 버마의 마음일까요. 집 앞을 지나는 나그네 누구든 목마르면 마시라는. 4~5리터를 담는 도자기. 우리 꿀단지와 같습니다. 도심, 시골 어디든 집 앞에 놓아뒀죠. 더운 나라, 땀을 많이 흘리는 이들에게 소중한 생명수. 생면부지의 여행자에게 버마인들은 그렇게 스스럼없이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버마인들. 그들에게 삶과 재물, 그리고 희노애락은 그러니까 나누는 것입니다. 호텔의 방명록에 쓰인 어떤 글귀가 그리 말하네요. ‘무담시, 왔다가는데. 본시 왔다 가는 것이 없으니… 이뭤고.’ 조선 초부터 불교에 전해오는 게송(偈頌)처럼. 생야일편 부운기(生也一片 浮雲起). 인생이란 이는 한 조작 구름이니…
공항으로 가는 데, 국회 외통위 소속 인재근 의원이 버마에 왔다는 소식입니다. 공항에서 찾다, 수행하는 한국국제협력단 직원을 만났습니다. VIP실에 있다는 소릴 들었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여드레간 안내한 마웅 소, 낀조와 악수·포옹을 나눕니다. 출국 수속대로 향하는 여행자들. 그 뒤로 들리는 “또 와요, 형들”. 진한 석별의 정이 밀려옵니다.
기회의 땅 양곤, ‘안다만 앵무’ 큰 날갯짓
세상의 새 중에서 지능이 가장 뛰어나고 화려한 앵무. 먹이를 움켜쥐고 힘차게 날갯짓하는 ‘안다만의 앵무’ 버마. 오랜 식민지와 독재를 딛고 이제 막 민주주의를 키우는 동남아 금빛 찬란한 나라. 그 기회의 땅에서 여행자들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삶을 봤습니다. 그 끈끈한 정에 이끌려 친구가 됐고요. 소박하고 따뜻한 이웃이 모여 사는 곳. 그 양곤의 밤이 깊어갑니다. 밍글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