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리포트] ① ‘평화의 도시’ 양곤, 선연하고 찬란한…
*최방식 ‘인터넷저널’ 편집국장이 지난 3월16일부터 23일까지 버마를 현지 취재한 여행기를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취재는 2008년 5월 14만명이 사망하고 150만명의 이재민을 냈던 나르기스 피해 지역과 만달레이 인근 사막화 현장을?조사하는?민간조사단을 수행하며 이뤄졌습니다. 최방식 국장은 2005년 버마 민족민주동맹 한국공동체 지원활동을 해왔으며, 2006년 버마 난민촌과 무쟁투쟁, 그리고 8888항쟁(1988년 2000여명이 살해당한 민중항쟁) 뒤 국경산악지대에서 무장투쟁을 했던 ABSDF(학생무장투쟁 본부 격)?당케 의장을 현지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버마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시죠.
‘푸른아시아’ 기후변화조사단과 여행을 시작하며…’밍글라바’
하얀 구름 한 가운데 넓고 포근한 자리. 고즈넉함, 그 사이로 밀려오는 풋풋한 향. 나지막한 재잘거림. 귀에 선 새소리. 분명, 낙원이었습니다. 여느 아침과는 사뭇 다른. 상쾌함을 좇아 명상, 그 끝에 다다른 고요. 그리고 평화. 양곤(Yangon)의 아침입니다. ‘밍글라바(버마 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
문득 잠에서 깨지요. 희미한 노랫소리에 문을 열어젖힙니다. 푸르게 솟아오른 코코넛 나무. 이방인의 낯선 눈길이 따가운지 검은 새 한 마리가 가지를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까마귀, 아님 열대 앵무. 그 비행 뒤로 평온하고 따사로운 미명이 대지에 내려앉습니다.
꿈에 그리던 버마입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땅. 첫발을 내딛은 여행자에게 기시감이 엄습합니다. 팔 벌려 창공을 껴안아 봅니다. 정글, 그 땅에 발 딛고 만끽하는 안다만의 향기. 그 꿈이 그리 느닷없이 이뤄지듯, 버마인들 소망도 그리 되려나. 평화로, 민주주의로.
버마와의 각별한 인연은 8년여 전 시작됐죠.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도움으로 태국 국경지역 버마난민촌 취재를 다녀오고부터. 군부정권에 추방당한 농학자, 살라이 톤 탄 박사의 귀국투쟁을 취재하려던 것이었죠. 박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세계만방에 버마군부의 횡포를 알렸죠.
상쾌한 열대아침, 따사로운 미명
그 뒤로 버마 민주주의는 기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 버마사랑작가모임 등 단체조직에 참여하고, NLD코리아의 행사에 관심을 갖고 취재기사를 썼죠. 샤프란혁명, 나르기스 등 현지에서 전해오는 여러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요. 그 곳을 늘 그리워했던 까닭입니다.
꿈은 이뤄진다고요. 간절함이 넘쳐. NLD코리아 지원에 앞장서온 유종순 선배(열린사회시민연합 전 대표)가 기후변화 관련 활동단체인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 요청으로 버마 기후변화 조사활동에 참여한 것입니다. 기자를 동행자로 불렀고요. 여드레간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3월 16일 낮 인천국제공항. NLD코리아의 전 의장·부의장인 아웅 쉐(53·남)와 르윈(52·남)이 배웅을 나왔습니다. 선물꾸러미를 바리바리 싸들고서요. 망명자로 15년여 못 가본 조국, 그리운 가족에게 사랑을 건네려는 것이죠. “이 건 딸에게, 이쪽은 아내에게, 봉지 김은 장모님 좋아해서….” 물건을 꺼내놓으며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데 애잔함이 묻어납니다.
유 선배 장난기 발동. “아웅 쉐, 이 화장품은 아내에게 주면 안 돼. 이 거 쓰고 더 예뻐지면 어쩌려고. 15년 동안 못 봤는데, 앞으로도 언제 만날지도 모르잖아. 바람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화장품은 딸에게 주고 아내에겐 다른 걸 줘.” 공항 한 귀퉁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르윈도 기자의 손을 잡고 부탁합니다. “멋진 사진 많이 찍어와요. 그 거 보고 내가 그림을 그릴 테니….” 건네 달라는 선물은 없지만, 오래 못 가 본 조국 산천이 그리운 모양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신부전증을 앓아 늘 몸이 허약했는데 수술 뒤 좀 나아졌다고 합니다.
비행 6시간이 왜 그토록 길었는지. 자다 깨기를 거듭했습니다. 랜딩기어 소음에 머리가 묵직하더니, 육중한 기체가 뜨거운 대지에 멈춰 섭니다. 온 몸에 퍼지는 열기. 열대세상을 직감합니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영상 40도에 적응하려는 것이죠. 흥분을 가라앉히며 첫 발. 땅에 엎드려 뽀뽀부터 하겠다던 다짐. 깜빡 잊고 말았습니다.
흥분된 첫발, 땅에 뽀뽀하려던…
세 버마인이 환하게 다가옵니다. 한국에서 NLD코리아 활동을 하다 귀국한 마웅 마웅 소(39·남)와 낀조(50·남). 낀조와 ‘8888운동’(민중항쟁, 2000여명 사망 실종)을 같이 한 떼우(49·남).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환전소로 가니 돈이 떨어졌다며 내일 오랍니다. 호텔 갈 택시비도 없는데. 마웅 마웅 소가 택시비는 자기들이 낼 테고, 환전은 내일 도심 사설환전소에서 하면 된다고 일러줍니다.
양곤 도심 한 가운데 어느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여독도 내려놓고. 그리고 맞이한 양곤의 새벽. 마당 한 귀퉁이 의자. 커피향 가득한 머그잔 하나 들고서 열대의 신선한 아침을 맞습니다. 어제 밤 봤던 낀조와 떼우가 전통의상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환전 걱정을 하니, 낀조가 떼우의 배를 가리킵니다. 떼우가 돈(잣, kyat)을 두둑하게 뱃속(상의 옷 속)에 넣어가지고 온 것입니다. 전통의상 ‘론지’에 주머니가 없어 그런 것이지요. 불룩한 게 우스워 ‘얼마나 가져왔냐’고 물으니, 100만 잣이라네요. 원환율이 1대1 정도이니 거금입니다.
첫 도심 나들이는 론지를 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양곤 최대의 보족아웅산시장. 큰 규모도 놀랍지만, 붉은 루비 등 화려한 보석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걸음마다 시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거꾸로 된 게 분명합니다. 여행자들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이지요. 이방인에게 베푸는 관심이겠죠?
시장 인근 친족(버마 130여 소수 부족 중 하나)이 운영하는 한 전통음식점에서 볶음국수를 점심으로 즐겼습니다. 시원한 맥주도 한잔 곁들이고. 갑작스런 더위에 몸이 놀랐는지, 머릿속은 더운데 몸은 땀을 흘리지 않습니다. 예쁜 친족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즐기는 미얀마 음식. 맛이 일품입니다. 1000잣의 팁이 아깝지 않게.
양곤 순환열차를 타려고 중앙역사에 들어섭니다. 가지각색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꽁야’(씹는 담배)를 즐기는 남자들. 옥수수를 파는 여성들. 가사 차림에 명상에 잠긴 스님. 목 주위 땀을 연신 닦아내는 군인들. 여기저기를 뛰며 신난 어린이들. 두 시간여를 넘겨야 나타나는 열차. 기다리는 누구도 짜증내지 않습니다.
떼우의 배, 100만 잣에 부풀어
순환열차가 바람을 가릅니다. 오랜 기다림 만큼이나 설레는 출발. 여덟(?) 칸을 이은 기차인데, 두 칸씩만 터놨습니다. 농산물을 가지고 기차에 오른 이들. 가족과 함께 어딘가를 가는 승객들. 꽁야, 아이스바, 물, 주스, 빵, 떡 등 가지각색의 음식을 팔러 오르내리는 상인들. 기자일행만 행색이 눈에 띕니다.
20분여를 달렸을까. 여행자 한명이 덥다며 아이스바를 사 나눠줍니다. 어린 시절 “맛있다”를 연발했던 ‘아이스께끼’ 딱 그겁니다. 그런데 큰 실수. 한입 무는 데, 마주한 의자에 꼬마 대여섯이 입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먹던 걸 줄 수도 없고, 장사는 가버렸고. 참 미안했습니다.
더 앉아있기 민망해 문간으로 나와 계단에 걸터앉았습니다. 풍경도 잘 보이고, 사진을 찍기도 수월하니까요. 여행자를 훑어보던 시선들. 좀 의아해 하는 눈초리입니다. 편하고 좋은 자리 놔두고 왜 문앞 바닥에 앉나 싶었던 모양입니다. 내 맘이죠. 뭐.
한 시간여를 달렸나요. 빵과 떡을 쟁반에 인 젊은 여인이 오릅니다. 살까 망설이다 그만뒀는데, 눈인사를 건네옵니다. 씽긋~. 다음 정거장서 내립니다. 사실은 앞 뒤 칸으로 이동하는 거지요. 서너 정거장을 지났는데, 그 여인이 다시 오릅니다. 익숙한 듯 인사를 건넸죠. 다음 정거장서 다시 내리고 기차가 출발하나 싶었는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철로로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급정차 뒤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잠시 웅성거림. 세상에, 빵 팔던 그 여인이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고치며 철로에서 승강장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곤 쟁반에 널브러진 빵을 주워 담네요. 무사하네요. 팔·다리에 찰과상만 입고.
양곤의 속살을 들여다봤습니다. 도시 외곽의 삶을 적나라하게. 1970년대 중반 우리 형편을 생각하면 될 겁니다. 가난하지만 자연 속 천진난만한 삶. 때론 쓰레기가 넘쳐나고 시궁창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파괴로 가망 없는 개발선진국보단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인사 빵 파는 여인 하마터면…
가난한 삶이 넘쳐납니다. 정차할 때마다 물통을 들고 기차에 오르는 10대 아이들. 목마른 승객에게 물 한 컵씩 팔고 50잣(?)씩 받는 것이지요.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씹는 ‘꽁야’를 팔거나. 대게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벌이에 나선다고 합니다.
세 시간의 충격과 흔들림은 이내 황홀경으로 이어집니다. 이토록 휘황찬란함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요? 외국인에게만 받는 입장료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쉐다곤 파고다입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태양에 달궈진 바닥. 맨발로 걷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쉐(황금)다곤(언덕)은 양곤의 상징. 석가모니 8개 머리카락을 묻고 그 위에 세운 황금 탑. 11세기경 자그만 어촌마을 언덕 위 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 다곤. 꽁바웅 왕조를 세운 알라웅파야 왕이 250여 년 전 ‘분쟁의 종식’ 뜻을 담아 ‘양곤’으로 바꿔 부른 땅. 여행자가 ‘평화의 도시’ 그 한 가운데 선 것입니다.
인도양으로 기울며 마지막 열기를 내뿜는 태양. 선연함에 더한 찬란함. 그 앞 여행자들은 넋을 잃습니다. 황금빛으로 꽉 들어찬 세상. 불법(佛法)이 지배하는 서방정토? 60톤이 넘는 금과 6000여개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3000여개의 루비로 장식된 99미터의 황금탑. 60개가 넘는 주변 금탑. 이를 확인하는 건 여행자의 사치일 뿐입니다.
자신의 태어난 요일(버마에선 8개, 수요일을 오전 오후로 나눠)을 상징하는 동물이 새겨진 불상에게 나이만큼 물을 붓고 소원을 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탑돌이 중 낀조에게 설명을 부탁했는데, 낀조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형, 여기가 56번째 부처네…”
기도하는 버마 여인. 향을 사르는 노인. 석양 황금빛을 맞으며 퍼포먼스 중인 여승. 넋 놓고 탑을 바라보는 여행자. 카메라놀이에 열중인 동자승. 여행자들을 몰고 다니며 설명에 열중인 가이드. 여기선 모두가 구도자일 뿐입니다.
“형, 여기가 56번째 부처네…”
첫날의 여행을 마치며, 술 한잔 마다할 수 없죠. 안내한 세 명의 버마인, 주간지 ‘더네이션’ 편집인과 한 방송사 소속 여성 비디오아티스트, NLD회원 몇이 레스토랑에 모였습니다. 버마에 몇 번 와본 유 선배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온 꽤 괜찮은 식당입니다.
낀조가 위스키를 하나 꺼내듭니다. 버마산인데 700~1000잣 하는 대중적인 술. 생맥주에 위스키 병뚜껑으로 하나씩 부어 이른바 ‘폭탄주’를 즐깁니다. 이곳 술문화라 하네요. 한국에서 전해진 폐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양곤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씹는 담배’ 꽁야 만드는 아저씨 노란 티셔츠. ‘강남스타일’ 그림이네요. 알아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