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리포트] ⑥ 이라와디 강가 농민들의 척박한 삶과 꿈
*기후변화 관련 국제활동단체인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가 3월 16일부터 8일간 버마 남부 에야와디 삼각주 일대와 중부 만달레이 인근에서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수행 취재기 7편 중 6번째를 소개합니다.
사막화 ‘옌난지엉’ 현지조사 뒤 마웅 소 고향 ‘낫따린’으로
티베트에서 발원해 버마를 북남으로 종단하는 이라와디 강. 은마이와 말리강이 만나고 쉬웰과 타핑강을 껴안으며 만달레이를 굽이돌아 친드윈강과 합쳐 장대한 자태를 뽐내는 이라와디. 중부 파코쿠 고원지대를 에둘러 옌난지엉을 지나 에야와디 삼각주까지 2000km를 흐르는 생명수. 그 평화의 강가에서 사막화 조사활동을 벌입니다. 말라버린 젖줄을 한탄하는 모정을 떠올리면서요.
절벽 아랫마을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 어렴풋하지만 붉게 물든 동녘.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갑니다. 간발의 차이로 놓쳤습니다. 불그스레한 잔영을 품은 이라와디. 스친 태양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나 봅니다. 게으름뱅이 여행자에게 대평원은 산들바람을 선물합니다. 볼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미간을 파고드는 은은한 향기. 새 세상에서 맞은 여행의례라 해야겠습니다.
아침은 이라와디 대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식탁에 차려졌습니다. 빵 두 조각과 반숙 달걀 한 개. 그리고 따스한 홍차 한 잔. 장염 증세로 미음을 들던 오기출 총장. ‘살아있네’를 연발하던 유종순 선배와 여행 길잡이 버마인들. 모두가 화려한 아침식탁에 모여 앉았습니다. 밤새 못 다 한 수다삼매경에 빠져듭니다.
초대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이웃마을 폭동으로 현지로 못 가게 돼 그 곳 농민들을 데려온 것입니다. 여행자 숙소에 농민 여섯과 여행자가 둘러 앉았습니다. 옌난지엉 네 마을에서 온 젊은이들. 농업과 목축업을 하는 청년들. 힘든 발걸음을 한 것이죠.
이라와디 대평원 보며 ‘아침’
팡웨 마을의 고 레(29·남), 수 미얀 나이(20·여), 고 아웅두 르윈(26·남), 차웅 마을의 고 보쉐이(24·남), 엘레강 마을의 킨 킨 소우(32·여), 용곡 마을의 고 킨 마웅 수(32·남). 고 보쉐이와 고 아웅두 르윈은 수의사.
사막화 지역 특징 중 하나는 물부족과 목축업 폐해. 이곳도 예외는 아닙니다. 팡웨 마을에만 염소·소·돼지가 600여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방목을 하진 않지만 농장에 풀어놓고 키운다네요. 물이 줄어들고 풀을 뿌리째 파먹는 염소 때문에 목축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네요.
사막화에 따라 만성 영향부족에 시달리는 가축. 갖가지 질병에 시달린답니다. 설사도 많고 물집(고름) 잡이는 일이 잦아 바짝 긴장한다고요. 증상이 나타나면 1주일 안에 치료해야 살아 날 수 있어, 예방주사가 필수. 질병을 다스리지 못해 마을 가축 1/3을 잃은 곳도 있다네요.
농업환경 역시 악화일로. 10년 전만 해도 목축업과 함께 잘됐는데, 강우량이 줄면서 위기를 맞고 있답니다. 생계를 위해 나무를 베 숯을 만들다 보니 숲이 파괴돼 그렇다고. 물을 찾아 관정을 파는데, 9년 전에는 400피트면 물을 확보했지만 이젠 800피트를 파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관정 뚫는 일은 호주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들이 1981년부터 지원하고 있답니다. 엘레강·용곡 마을도 관정을 파 식수를 확보하고 있고요. 팡웨 마을에선 부자 1명이 관정을 뚫었지만 혼자만 써, 주민들은 개천물을 사용한다고. 자연호수가 사라지며 목축이 어려워지자 인공호수를 조성하는데, 역시 외부(외국 NGO) 지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딴 데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답니다. 성공한 사람을 따라가는데, 대부분 양곤, 만달레이 등 대도시 공사장, 술집, 농장, 커피산지 등으로 간답니다. 만달레이 동쪽 50km 거리에 있는 핑우르윈(메이묘, 식민시절 영국 장군 ‘메이’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으로 간 이들도 많고. 팡웨에 120가구 700명이 사는데 청년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노령층만 남았다고 합니다.
숲파괴가 부른 ‘대지의 역습’
차웅 마을의 경우 64가구 320명이 사는데,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 농사·목축이 시원찮아 부모에 의지해 산답니다. 숯을 구워 팔아 살기도 하고. 자립할 일거리가 없어 마을 전체가 위기라네요. ‘환경난민’이라 해야 할지 모르나 농촌의 경제가 어려워지며 고통을 겪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아직은 마을공동체를 유지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
엘레강 마을의 경우 세계식량기구(WFO)·월드비전 지원으로 나무심기를 한답니다. WFO가 식량(쌀과 콩)을 지원하고 월드비전이 묘목을 제공한다네요. 12그루를 한 묶음으로. 묘목관리자를 현지에 파견해 나무 심기와 기르기를 점검하고 교육을 시킨답니다. 가축이 뜯어먹어 훼손되면 벌금(마을 촌장 관리) 매기고. 2006년 시작했다네요.
버마 정부는 건조지역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답니다. 물을 확보하고, 나무를 심으며, 생계를 지원하는 건 해외NGO가 하고. 정부가 하는 유일한 일은 10%대 이자 대출. 그 돈으로 씨앗을 구입하고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하네요. 가구당 평균 부채가 50만잣(원화환율 1대1).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답니다.
한국NGO가 들어오면 현지 주민과 함께 활동하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호주에 본부를 둔 월드비전도 그렇고, 태국에 본부를 둔 ‘매파루앙재단'(Mae Fah Luang Foundation)의 경우 1~2달씩 현지에 거주하고 본부를 오가며 활동한다고. 푸른아시아에는 토양피복 사업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물, 농사, 녹화가 해결책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2시간여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함께 점심을 하고, 마을까지 태워다 줬죠. 인근 마을 폭동으로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들이 하차한 곳에서 잠깐 주변 사막화지역을 둘러봤습니다. 끝 간 데 없이 열기를 내뿜는 황량한 땅. 그 사이로 줄맞춘 녹색 행렬. 주민들이 심은 나무들입니다.
호주가 원산지인 열대성 상록수 유칼립투스. 코알라가 좋아하는 나무. 뿌리가 물을 많이 함유해 황폐한 사막화지역 물 공급원으로 활용되는 수종. 호주 건조지역에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잎사귀는 열을 내리는 약초. 오일은 기관지염, 천식, 백일해 및 폐기종 치료에 특효.
농업·목축업 안돼 ‘환경 난민’
사막화 조사를 마치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가는 길은 좀 다른 여정. 여행안내를 맡은 마웅 마웅 소 집에 들르는 것. 옌난지엉에서 남북을 잇는 2개의 길 중 동쪽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이라와디강을 끼고 달리는 서쪽 2번국도. 그 길을 따라 내려오다 만나는 도시 낫따린이 그 곳. 4시간여 차로 달린답니다.
마웅 소가 현지조사여행을 시작할 언급했는데, 그 땐 흘려들었지요. 이제야 뭔 말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 전 그는 “종순 형, 아버지가 뱀 요리 준비해둔댔어”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우린 웃고 넘겼죠. 이제야 뱀 요리 먹을 사람을 확인하니 딱 한명. 안내하는 버마인 낀조.
낫따린까지 6시간여 걸렸나요. 고속도로가 아니다보니 주요 도시를 통과할 때마다 지체돼 그런 것이죠. 마웅 소, 지리 감각이 안 살아나 그런지 “1시간 남았어”, “30분 남았어”가 모두 어긋납니다. 일행, 한마디씩 하고 넘어갑니다. “니네 집 맞아.”
30여분 남겨두고 한 중소도시를 지나는데 낀조(49·남)가 말문을 엽니다. 빠웅떼라는 도시인데, 처가 마을이랍니다. 1992년 결혼했는데, 부인이 양곤대 물리학과 동기의 동생. 친구의 동생을 찍어놨다가 결혼한 것이죠. “왜, 친구가 아니고 그녀 동생이냐”고 물으니 “동생이 좋았다”는 말 뿐입니다.
낀조는 1998년 한국에 왔습니다. 8년여를 성형(주조) 일을 했다고요. 그와 말하다보면 수없이 “형, 이거 아니잖아”를 듣습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 관리자한테 구박받으며 익혔던 말. 그의 말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맘이 아팠습니다. 그를 박대한 한국문화가 미안해서요. 3남2녀의 넷째. 이젠 딸 하나를 둔 아버지죠.
어둠이 내려서야 낫따린에 도착했습니다. 골목길로 차가 들어서는데, 서성이는 이들이 보입니다. 마웅 소의 아버지와 어머니.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또 얼마나 서성였을까요? 집으로 들어서니 누나도 반갑게 맞습니다. 아직 시집을 안 갔다고 하네요.
안내자 낀조의 사랑이야기
수지 여사 사진이 집안 가득합니다. 아들이 수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 벽 한가운데 붙여놨습니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불빛이 희미합니다. 자주 끊겨 비상 배터리도 준비해 놓았네요. 하루 종일 음식준비로 바빴던 모양입니다.
상차림을 기다리는데, 폭동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옵니다. 그 일로 현지방문도 못했는데. 지난해 6월 서부 라카인주에서 벌어진 종교갈등이 그 뿌리. 무슬림 로힝야족 수백명이 살해당하고 10만에 가까운 난민이 생겼죠. 1700년대 버마왕조에 복속당한 서남부 방글라데시 연접지역에 사는 80만여명의 사람들이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여행 뒤 알려진 소식.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라이트워치(HRW)는 불교도가 주도해 ‘인종청소’를 벌이고 있는데, 버마 정부가 묵인하고 있다고 폭로했네요. 140만 여 명의 인도아리안 혈통 로힝야족. 중국티베트어족이 주류인 버마에서 발붙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 일부가 이주해 자리를 튼 메이크틸라. 거기서도 박해를 받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개혁·개방에 속도를 내는 버마정부. 정권의 노력을 반기며 민주정부를 세우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아웅산 수지와 NLD. 모두가 소수인종문제 해결을 고심하지만, 로힝야족만 예외입니다. 버마 시민으로도 소수인종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거든요. 오죽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라고 유엔이 꼽았을까요.
순식간에 저녁밥상을 차렸습니다. 뱀 요리를 기대한 낀조는 조금 실망. 시장을 뒤졌는데, 없어 포기했다고 하네요. 정성들인 요리. 맛이 없을 수 없죠. 시원한 맥주도 준비하고요. 여행자만 둘러앉고, 주인은 뒤로 물러나 있네요. 같이 하시자니, 예법이 그게 아니랍니다.
손님 먼저 식사를 마치면 쥔장들이 하는 게 관습. 손님이 한둘이면 가장과 같이 식사를 하고, 많을 경우에는 손님 먼저라네요. 우리도 옛날에는 손님과 아버지가 식사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던 때가 있었죠. 다른 상에서 먹기도 했고요. 손님에게 고봉밥을 대접하던 시절이 아련합니다.
마웅 소 고향집 들러 ‘호사’
‘최고의 정성’. 마웅 소 아버지가 요리한 것이죠. 가족 내 최고 솜씨를 자랑한다고. 5시간여 승용차 여행에 배도 고팠지만요. 세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녁을 들었습니다. 더 앉아 있고 싶은데, 보고만 있는 쥔장들에게 미안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 뭔가를 싸들고 와 마웅 소에게 건넵니다. 며느리에게 주라는 것이지요. 차가 멀어지는데도 거기 서 그냥 바라봅니다. 아들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동구 밖에 서 계시던 제 어머니처럼. 마웅 소에게 물으니 1년에 한 번 들른다네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밥만 먹고 휑하게 가버리니, 또 얼마나 야속할까요. 아쉬움에 애틋함에, 먹먹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