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리포트] ③ 풍요의 삼각주 ‘에야와디’에 드리운 먹구름
*기후변화 관련 국제활동단체인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가 3월 16일부터 8일간 버마 남부 에야와디 삼각주 일대와 중부 만달레이 인근에서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수행 취재기 7편 중 3번째를 소개합니다.
양곤에서 차로 5시간거리 남부 안다만연안 보글레이
양곤에서 이틀간 조사활동을 마친 일행은 셋째 날 에야와디 삼각주로 향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곡창지대. 안다만 연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14만명이 죽고 150만명의 환경난민이 생겼을까? 그 까닭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죠. NLD지도부, 기상학자·환경활동가로부터 나르기스 피해현황과 그 연유를 들었기에 현지에서 확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겨울 건기가 막 끝나가는 철, 평균온도가 40도 안팎입니다. 하루 중 가장 시원하고 신선한 때는 새벽. 늦잠꾸러기 기자도 6시면 눈을 떴습니다. 알람 없이도 그리되더이다. 새들의 지저귐에 성가셔서요. 열대 숲 향기 가득한 정원 한 귀퉁이. 식전 원두커피 한잔이 정겹습니다. 1시간여의 새벽 수다. 양곤의 유혹, 그 ‘첫 경험’입니다.
마웅 세인 윈 시인이 거들어 성사된 차량대여. 호텔을 벗어나자 깐도지 호수입니다. 출퇴근에 등교시간인 모양입니다. 학생과 일반인 구별이 안 되는데, 버마인들은 잘 아네요. 여성 직장복과 학생복이 헛갈려서요. 색과 디자인이 같은 유니폼이 아니다보니 그런 것이지요.
버마인들은 남녀 안 가리고 전통의상 ‘론지’(치마)를 입습니다. 위·아래가 트인 둥그런 천. 위쪽을 허리에 맞게 잡아매면 됩니다. 간편하고 시원하죠. 주머니가 없어, 보통은 보조가방을 맨답니다. 그게 싫으면 허리춤에 휴대전화와 지갑을 꼽고 다니고요.
열대 새들의 지저귐, 새벽 수다
기자도 론지를 사 호텔에서 입고 다녔는데, 실수를 몇번 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다 끝을 발로 밟아 훌러덩 벗겨진 일도 있지요. 유종순 선배가 론지 입은 낀조만 보면 속에 뭐 입었는지 보자고 장난을 해 웃곤 했지요. 여성들의 론지는 좀 다릅니다. 몸매를 드러내도록 만들어서 그런가요? 색상·문양도 남자 것과 다르고요. 자주 보니 아름답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심을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양곤의 도로는 잘 닦여 있는데, 최근 차량이 늘어 정체가 심하다고 합니다. 문득, 탁 트인 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양곤을 가로지르는 이라와디 강. 저 강물이 굽이 흘러 바다로 스며드는 곳. 오늘 여행자들이 가려는 곳입니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최북단 카친주를 가로지르고 중부 만달레이를 휘도는 강. 남부 저지대에서 여럿으로 갈려 에야와디 삼각주 곳곳을 적시며 안다만해역으로 흘러드는 버마의 젖줄. 2000km를 흘러 버마 안에선 가장 긴 강. 지류 중 하나가 양곤시내를 가로질러 마르타반 만으로 흐릅니다.
목적지는 보글레이. 양곤에서 남서쪽으로 5시간여 차를 달려야 도착하는 곳. 기자가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취재가 수월할 것 같다며 여행자들이 권한 것이었죠. 덕에,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요. 열대 뙤약볕을 고스란히 쬐어 얼굴과 팔뚝이 시커멓게 타기도 했지만요.
5시간여 자동차 여행. 나흘 간 여행자를 실어 나르며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서툰 영어로 설명해 준 운전자 마웅 또(39·남). 서울에서 3년, 일본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번 돈으로 승합차를 장만, 여행사 지입차량으로 운영하고 있답니다.
결혼하느라 귀국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 다시 가고프냐고 물으니, 가능하면 그렇고 싶다네요.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유리의 어느 양말 공장에서, 도쿄의 한 식당 주방에서 일할 때가 그립다네요. 한국·일본 요리 전문가랍니다. 말할 때마다 ‘아노…’를 연발하기도 했죠.
운전자 ‘마웅 또’, 5시간 호구조사
3시간여를 달렸을까요. 허기진 여행자들이 지쳐갈 즈음.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건물 앞에 많은 이들이 운집해 있고요. 마웅 또에게 물으니 대학학력고사가 있어 부모들이 학교 앞에 몰려와 그렇다네요. 이 마을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했습니다. 시원한 맥주에 전통 음식을 시켜놓고. 수다를 떨며 2시간.
이라와디 강 하류. 저지대 논과 늪지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조수석에 앉은 덕에 늪지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죠. 집들이 쪽배가 다닐 수 있는 작은 실개천 주변에 서있습니다. 도로에서 보자면, 대나무(야자수) 몇 개로 엮어 개천 위에 세운 외나무다리를 건너 집에 들어가도록 돼 있습니다.
늪지 위에 기둥 몇 개 박고 주거공간을 만든 겁니다. 집 곁엔 쪽배 하나. 건기여서 그런지 펄 위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주변에선 오리나 물소가 진흙탕에서 목욕을 즐깁니다. 열대 오후 따가운 햇볕을 피해 잠든 이들이 눈에 띕니다. 논에서 일하는 이도 보이고요.
2시간여 더 달렸나요. 꽤 규모가 커 보이는 도시입니다. 보글레이에 도착한 것이지요. 버마는 전국을 7개 행정구역(Division, 버마어로 yin)과 7개 자치주(State, 버마어로 pyine)로 나뉘는데, 에야와디구역(디비전) 피야폰군(디스트릭트) 내 도시. 숙소에 짐을 풀고 인근 한 환경단체 사무실에 모여 앉았습니다.
나르기스 피해 복구 나무심기, 주민 교육, 해외구호단체와 현지인 연결 활동을 하는 ‘라다나에이아르’ 대표 뚜라 아웅(남). 메인말라 섬 복원 책임자인 모요 윙(남). 인근 라와이 서쪽 섬 복원 책임자이며 ‘스완이개발기금’ 책임자인 라 민트(남). 유엔개발계획 버마지부 보글레이 담당자 코 뮤(남).
나르기스 때 쓰나미가 6m 높이로 몰려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온이 40도였고(섭씨, 원래 30도). 에야와디 삼각주 건물 3/4이 파괴됐답니다. 13만6000명이 사망 실종됐고, 150만명(에야와디주 인구 650만명)이 난민이 됐죠. OECD산하 개발도상국 원조관할기구인 DCD 아세안지부가 공식 집계한 자료랍니다.
펄 가득한 실개천, 늪지 위 집들
나르기스 피해가 이토록 컸던 이유를 환경운동가들은 맹그로브 숲이 사라져 그렇다고 했습니다. 건재했다면 당시 풍속을 1/3(시간당 40마일) 정도 줄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시간당 120마일의 강풍과 쓰나미가 강타했다고 합니다. 저지대 대부분 산이나 언덕이 없어 대피할 곳도 없었다고.
쓰나미 최고의 방책이라는 맹그로브 숲이 사라진 건 주민들이 그 나무로 숯을 만들어 파는 통에 그리 됐다네요. 에야와디 삼각주 최고의 상품이 쌀과 숯이었다니. 전통가옥 지붕에 맹그로브 나무를 사용한 것도 훼손 이유 중 하나. 애초 맹그로브 숲이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훼손돼 나르기스 피해가 컸답니다.
바닷물이 휩쓴 뒤 몇년간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답니다. 지금도 농사가 안 되는 곳이 많다네요. 훼손된 농경지를 버리고 숲지대 나무를 베고 대체 농지를 개간하는 이들도 많다고. 소나 물소도 사라져 퇴비가 줄다보니 대부분이 화학비료를 사용한답니다. 논갈이도 소 대신 기계로 하고요.
150만여명의 환경난민은 양곤 인근이나 해외, 심지어 태국 내 버마국경지대 난민촌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공식 자료를 내놓지 않아 통계자료는 없답니다. 2015년 총선을 앞두고 유엔과 정부가 인구센서스를 2014년 실시한다니, 곧 확인할 수 있을 거라네요.
바닷물이 요즘 짜고 시다는 한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조사단체 ‘와이라이트’에 따르면, 산도가 높아져서 그렇다고. 새우 등을 잡아 건어물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이 벌이가 시원찮아 애를 먹는데 이유가 있었군요. 기후변화로 수온수질이 바뀌고 어족자원이 변하니 그런 것이지요.
농업·어업을 하던 주민들은 나르기스 뒤 농어업을 포기하고 해외 구호품으로 연명해왔답니다. 요즘엔 지원이 줄어 생계가 어렵다고 합니다. 3인가족의 경우 월 3만5000잣은 벌어야 하는데, 평균 수입이 1만6000잣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20%대 고리대금업이 극성을 부린답니다.
190km/h 나르기스 6m 쓰나미
현지사정을 감안해 유엔개발계획(UNDP)이 여성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저리대출을 실시하고 있답니다. 여성공동체 1모임(20가구)당 300만~700만잣을 2~4% 저리로 대출한다네요. 30억잣을 종자돈으로 400개 모임에 대출중. 하지만 2012년 대출사업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새 프로젝트를 기획중이고요.
요즘도 독일 등 유럽지역 국제기구가 들어온답니다. 정부가 국내 NGO와는 가버넌스를 허용하지 않아 국제기구가 주도하고요. 한국의 NGO도 가능할 것이랍니다. 푸른아시아는 주민과 직접 사업을 할 수 있다면 들어가겠다는 입장. 몽골과 달리 중국에 안 들어가는 이유도 주민과 직접사업을 당국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버마 환경운동가들은 국제NGO가 할 수 있는 일로 주민들의 경제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을 꼽았습니다.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다 해도, 생계난에 쫓긴 주민들이 숯을 구워 팔려고 숲을 훼손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면서요.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숲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죠.
모임을 마치고 보글레이 한 식당에 모여 앉았습니다. 간담회에 참여한 현지 활동가들이 ‘괜찮은 식당’이라며 안내했는데, 이름이 ‘MB가든’입니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 이니셜이야기를 해주니 호기심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안다며 “어떻냐”고 물으며 한국정치에 관심을 보이네요.
저녁식사 내내 음식 심부름을 하는 꼬마 둘이 곁에 서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를 여행자들의 이야기 들으면서. 그 큰 눈을 깜빡거리면서요. 꼬맹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음식을 즐기려니 미안할 정돕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 급여는 없고 팁으로 산다는데….
한 아이에게 나이를 물으니 12살. 또 다른 아이는 16살. 일이 어떠냐고 물으니, 집이 가난하고 딴 일자리도 없어 여기서 일한다고 합니다. 다행히 “일은 재밌다”고 했습니다. 여행자들은 일어서며 꼬마들에게 1000잣씩을 쥐어줬습니다. 아동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아, 지못미. ^^*
“주민 삶 처참, 긴 생계난에 짐 싸”
버마인 이름 앞에 ‘우’나 ‘마웅’이 붙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연령에 따라 이름 앞에 달리 붙이는 존칭. 청년일 경우, 남자는 마웅, 여자는 떼. 중년일 경우, 남자는 고, 여자는 마. 장년이상일 경우, 남자는 우, 여자는 더를 앞에 붙입니다. 마웅 마웅 소는 이름이 마웅 소이고 맨 앞 마웅은 청년임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7년여 전 버마 농학자로 조국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살라이 톤탄 박사를 방콕에서 만났을 때, 박사로부터 ‘살라이 방식’이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라이는 친(Chin)족에 붙는 이름. 자기 부족으로 여기겠다며 그리 부른 것. 이젠 ‘우 살라이 방식’이라 불러야 할 모양입니다. 두어 번 ‘마웅 살라이 방식’이라 소개하기도 했지만요.
버마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 하나. 모기가 별로 없는 점. 열대지방에 가면 당연히 모기 걱정을 하는데, 별 고생?않고 다녔거든요. 한 여행자는 바르는 모기약을 배낭에 넣어 실내로 가려다 검색 해프닝(액체폭약을 우려한)까지 벌였는데, 정작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밤 10시쯤 됐나요. 샤워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켜는데 아웅산 수치 여사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내용을 알 순 없지만, 영상을 보니 짐작할 만합니다. 만달레이 북서부 150km에 자리한 사가잉주 모니와시. 중국과 합작투자한 구리광산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과 당국간 갈등. 작년 말부터 논란이 됐는데, 당국이 밀어붙이다 여의치 않자 수치 의원을 대표로 한 조사위원회를 꾸려 주민을 설득했던 것이죠.
수지는 “반대시위 과정에서 무리한 진압을 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하지만 외국과 합작투자는 국가신뢰성과 관련이 있어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설득했죠. 주민들은 수치 제안을 거부하며 “어머니 수치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발했고요. 외신은 “수치가 정치를 시작하고 마주친 첫 시련”이라고 전했습니다.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다음날 고된 현지조사를 위해 일찍 자리에 누웠지요. 잠이 오질 않습니다. 보글레이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고요,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져 갑니다. 그리고 이어진 휘황찬란한 꿈.
‘수치, 주민반발 첫 도전’ TV뉴스
황금빛에 물든 거대한 인도양이 출렁입니다. 그 위로 한 마리의 앵무새가 힘차게 날아오르지요. 여행자가 누운 에야와디 삼각주를 발톱에 움켜쥐고. 길고긴 타닌타이 꼬리와 카친주와 샨주 양 날개를 퍼득이며. 시트웨 부리를 뽀쪽하게 내밀고서.(버마 지도를 보면 앵무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