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리의 이스라엘] 스티븐 호킹 박사, 이스라엘 보이콧 논란

호킹 박사의 보이콧 결정을 비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팅들

일반인들에게도 ‘블랙홀’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이자 전 영국 캠브리지대 수학 교수인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스라엘 초청 방문 거절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호킹 박사는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주최하는 회담에 초청받아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최근 참석자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됐다. 처음에는 건강 상의 이유로 불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에 “팔레스타인 대학 지지 영국 협의회(BRICUP)”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호킹 박사가 이스라엘 보이콧의 일환으로 참석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 홈페이지가 공개한 호킹 박사가 회담 주최측에 보낸 서한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 회담에 참석할 경우 평화 정착에 대한 제 견해를 발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안지구에서 강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담 참석을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학계로부터 수많은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이콧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고려하여, 회담 참석을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참석했다면, 현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은 재앙으로 이끄는 것과 같다는 제 의견을 말했을 것입니다.”

호킹 박사는 이미 이스라엘에 네 차례 방문해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학계와 교류가 있었으나, 지난 2009년 초 가자지구-이스라엘 전쟁(캐스트 리드 작전; Operation Cast Lead)을 계기로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게 됐다. 그는 당시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로켓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분명히 균형이 맞지 않는다. (중략) 1990년대 이전의 남아공과 같은 상황이며, 이는 계속돼서는 안 된다”라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 행사에 대한 보이콧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가까이는 작년 12월, 가수 스티비 원더가 이스라엘군 후원단체 초청 공연에 참가를 취소했고, 작년 1월에는 국내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재즈 가수 나윤선 씨의 “홍해 재즈 페스티벌(Red Sea Jazz Festival)” 참가에 대해 보이콧을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나윤선씨는 참가했다).

그러나 학계의 ‘거물급’ 인사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이콧을 한 경우는 없었기에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행사 주최 대표인 이스라엘 마이몬 변호사는 “터무니없고 부당하다”며 호킹 박사의 결정을 비난했다.

오는 6월에 열리는 이 회담은 대통령 주관으로 매년 개최된다. 올해가 5회째다.?각 분야의 대표들을 초청해 정치, 경제 및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토의하는 행사로 올해는 특히 페레스 대통령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열린다. 올해 참가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페레스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 여러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 등지의 정계, 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이 참가한다. 모두 각 분야의 최고 인물들이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중량급 인사는 찾기 어렵다.

대통령 회담(Presidential Conference) 홈페이지

주최측 뿐 아니라 각계에서도 호킹 박사의 보이콧을 놓고 비난이 잇따랐다. 이스라엘의 하아레쯔 신문에는 카를로 스트렌저 텔아비브대 교수의 “위선과 이중 잣대”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이 실렸다. 자신을 좌파 지식인이자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소개한 그는, 다른 나라와 이스라엘을 비교하며 이스라엘에 대해서 보이콧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참가 철회를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이란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동성애자를 사형시키고, 중국은 티베트를 수백년 간 점령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체첸을 괴롭히고 있을 뿐더러, 미국도 관타나모 수용소를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 침해는 무시할만 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법 센터(Israel Law Center; Shurat HaDin)’와 같은 친이스라엘 운동단체들은 온라인상에서 그의 결정을 비난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심지어는 호킹 박사의 전동 휠체어에 장착된 음성 변환 컴퓨터에 들어간 인텔사의 i7칩이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기술이므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려거든 그 칩부터 그의 컴퓨터에서 빼버릴 것을 주장했다. 이는 “보이콧하려면 입닥쳐”라는 표현과 함께 페이스북을 비롯한 온라인상에서 널리 퍼졌다.

또 처음으로 보이콧 소식을 전한 가디언지에서 실시한 “호킹 박사의 보이콧은 옳은 일인가?”라는 주제의 설문조사에 참여해 반대에 투표할 것을 주장했다(하지만 결과는 62:38로 옳다는 주장이 앞섰다). 이를 가지고 우파 매체에서는 뉴스를 재생산해 “과연 호킹 박사는 음성 변환 장치를 보이콧 할 것인가?”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호킹 박사와 같은 루게릭 병을 앓는 에스테반 알터만이라는 한 이스라엘 사진기자는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그 병을 앓기 전 호킹 박사가 2006년에 히브리대 강연을 왔을 때 사진을 촬영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스라엘의? ALS(루게릭 병) 연구의 성과를 함께 나눕시다”며 참가 철회 번복을 요청했다.

또 한 매체에서는 호킹 박사가 보이콧한 이 행사에 전 팔레스타인 장관이자 팔레스타인 의회(PLC) 의원인 지야드 아부 자야드를 비롯, 팔레스타인 계획도시인 라와비를 개발한 바샤르 마르시를 비롯한 여러 팔레스타인 대표들도 참석하고 있었고, 올해에도 PLC 의원인 무닙 알 마스리가 참석할 예정이라는 것을 보도하며 은근히 호킹 박사의 결정을 비판했다.

다행히 적어도 이스라엘처럼 공개적으로 보이콧을 당한 경험이 없는 한국의 국민으로써 이들의 분노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 이런 반응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스트렌저 교수의 칼럼을 읽고서는 마치 모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말했다는 그 유명한 “왜 나만 갖고 그래~”를 육성으로 듣는 듯했고, 음성 변환 장치에서 인텔 칩을 빼버리라는 주장에는 만약 우리나라를 누군가 이렇게 보이콧한다면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들이 그가 아이폰을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들어간 A5칩은 대한민국의 삼성이 생산한거니 빼버리라, 고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011년 7월에 의회를 통과한 ‘이스라엘 보이콧 처벌법’은 정착촌 및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을 주장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보이콧으로 인한 피해액을 증명할 필요도 없이 법원의 심리를 통해 배상금을 판결하도록 돼있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법대로라면 행사 주최측이 호킹 박사에 대해 배상을 요구할 수있는 근거도 이미 마련돼 있다. 이번 일을 통해 팔레스타인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후츠파 정신’으로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넘겨버릴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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