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이스라엘 대사 “부산에 아시아 첫 홀로코스트 박물관 개관”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
주한 이스라엘 대사의 이름은 투비아 이스라엘리(59·Tuvia Israeli)다. 루마니아 태생의 투비아 대사가 이스라엘리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어린 시절 이스라엘 땅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다.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가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오면서 모두 개명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지난 달 21일 서울 종각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만난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는 이러한 개인사 때문인지 홀로코스트 참상을 알리고 이스라엘 문화를 소개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는 최근 부산에 연 아시아 첫 홀로코스트 박물관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서울에도 이스라엘 문화원이 있지만 부산에 연 문화원은 홀로코스트 박물관도 겸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자행한 대학살의 참상과 독일의 사죄, 피해회복 노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진과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습니다. 부산에 오면 꼭 한번 들려주세요.”
부산 이스라엘 문화원은 이스라엘에서 온 제이 크로니쉬 부부가 전액 출자해 해운대구 센텀아이에스타워에 들어섰다. 홀로코스트 사진전 외 히브리어 강좌, 탈무드 강의도 진행된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주한 대사관으로는 드물게 온라인 채팅공간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도 개설했다. 이스라엘을 알리려는 의지가 크다.
“이스라엘 힘, 토론 중시하는 교육에서 나와”???
대사는 인터뷰 중 책 한권을 소개했다. <창업국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이 선진국으로 올라선 비결을 분석한 책이다.
“이스라엘에서는 IT산업 종사자의 60% 이상이 벤처기업에 근무합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많은 것이 부족하죠. 농사를 짓기 위해 물 솔루션을 개발했고, 안보를 위해 보안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인구 약 750만명, 면적은 한국의 3분의1에 불과한 나라지만 역경을 헤쳐 나가며 이스라엘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됐다. 투비아 대사는 토론과 논쟁을 중시하는 교육도 지금의 이스라엘을 일궈낸 힘이라고 했다. 유대인이 자랑하는 탈무드도 토론과 논쟁의 대화집이다.
“유치원 때부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뒤 항상 많은 질문을 유도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하는 거죠. 논쟁과 토론 교육은 아이들의 합리성을 길러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입니다. 이런 훈련 속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거죠.”
퇴보가 아닌 발전의 장이 되는 의무 군복무도 이스라엘만의 강점이다. 군수산업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이스라엘에서 군복무는 취업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까닭에 3년간의 군복무에 대해 불평을 하는 이는 적다.
“고등학교 때부터 재능 발굴을 해서 군복무 때?적재적소로 보냅니다. 정부가 성실히 군복무 하는 젊은이들에게 대학 교육과 기술 등의 트레이닝을 지원해 줍니다. 군복무가 끝날 때 쯤이면 해당 분야의 기술자로 성장하죠. 전역 후 취업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개인이 윈-윈하는 시스템이죠.”
한국 생산인프라, 이스라엘 아이디어 결합하면…????
이스라엘과 한국은 1962년 외교관계 수립 후?지정학적 환경, 높은 교육열, 우수한 인적자원 등 여러 공통점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예술,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펼쳐왔다. 2011년 기준 한국은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합성수지 등을 18억1000만달러 수출했으며 이스라엘로부터 반도체 제조용 장비, 계측기 등을 6억8000만달러 수입했다.
투비아 대사는 “앞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무역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국의 우수한 생산인프라와 이스라엘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결합하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교류에 비해 인적교류는 많지 않은 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100명이 넘지 않는다. 그 중 학생은 10명 남짓. 대부분이 대기업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 오는 이스라엘 관광객도 1년에 1만명 이하. 투라비 대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미지의 나라”라고 했다. 반면 한국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관광객은 3만여 명에 이르며 이스라엘 키부츠에는 1000여 명의 한국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이정표 하나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경찰과 동행해야 했으며 들어가서도 혁대까지 벗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았다. 핸드폰 소지도 불허했다.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나라다웠다. 인근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혁명에 대해 물었다.
“민주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불안정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혁명 전 좋은 관계에 있던 이집트도 무바라크 전 대통령 햐야 이후 국경지역에서 분쟁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내전과 폭동 역시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고요.”
2009년 8월 부임한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첫 번째 부임지다. 1978년 외무부에 들어가 요르단, 제네바, 스웨덴, 파라과이, 이집트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가족을 이스라엘에 두고 홀로 근무해야 하는 외로움 외에는 한국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글·사진=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