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편제 歌王 송순섭 명창 “판소리는 ‘가사’부터 배워라”

판소리 이론가 동리 신재효 선생은 “소리꾼은 첫째 인물치례, 둘째 사설치례, 그 다음 득음”이라고 했다. 송순섭 명창은?이 모두를 충족하는 소리꾼이다.

5명의 판소리?인간문화재 중 유일한 남자 명창··· ‘적벽가’ 예능보유자

지리산과 섬진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동편제의 대향연 ‘2012 구례 동편제 소리축제’가 7일까지 전남 구례군 서시천 체육공원 일대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서 동편제의 거장 송순섭(77) 명창이 ‘적벽가’ 공연을 펼친다.

공연에 앞서 지난 달 30일 서울 인사동에서 송순섭 명창을 만났다. 송 명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명창 가운데 유일한 남자다.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그는 1994년 대통령상, 1999년 KBS 판소리부문 국악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편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운산판소리연구원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스타 국악인인?이자람이 그에게 흥보가를 배우고 있다.

-판소리를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판소리는 한 명의 가객과 한 명의 고수로 이뤄진?간결한 극이다. 고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한 판 벌릴 수 있는 ‘시공간초월형’ 공연이다. 그 독특함을 인정받아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풍부한 은유와 해학이 담긴 가사의 내용과 리듬에 한 번 빠져보면 그 참맛을 알 수 있다.”

-서편제와 동편제의 차이가 궁금하다.

“동편제(東便制)는 전라도 동쪽 산간지역과 경상도 서남지역에 전승돼 온 소리제로 씩씩하고 웅장한 남성적인 소리가 특징이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서편제는 여성적인 소리로 부드럽고 기교가 넘친다.”

-판소리를 잘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가령 흥보가의 음식타령을 한다면, 관객들 앞에 음식을 차려주고 군침을 삼키도록 하는 거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리를 하니 제대로 된 발음이 안 나오고 의미전달도 못 시킨다. 예전엔 사랑방에서 배웠지만 이제는 대학원까지 가서 배울 수 있는 마당에 판소리 전승이 어떻게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말 답답하다. 판소리를 하려면 첫째로 가사내용을 알아야 하며, 정확한 발음을 익혀야 하고 그 다음이 소리다”

“국악과 학생들 가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리 배워”?

-전남 출신인데 특이하게 부산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스승인 박봉술 선생께서 부산에 사셨다. 그분이 구례 분이신데 활동은 부산에서 하셨다. 그분의 장인이 내가 사는 동네의 머슴이었다. 우리 집안은 명문가에 속해 있었고. 박봉술 선생에게 소리를 배운다고 집을 나섰을 때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모른다. 1994년에 대통령상을 받을 때까지 받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문중에서도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송 명창은 24년을 부산에서 국악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그런 노력으로 1983년 부산 및 경남 지역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눌원문화상’을 전라도 출신인 그가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 국악회관 마련을 위해 1977년 부산에서 대대적인 서화전시를 개최해 당시 지역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국을 돌며 그동안 친분을 쌓아온 대가들로부터 직접 수집한 서화 250여 점을 전시했고 성황리에 마쳤다. 당시 고 김지태 삼화그룹 회장으로부터 1000만원을 비롯해 부산의 유지들이 많은 도움을 줘 국악회관을 계획대로 지을 수 있었다.

송 명창은 “당시 남농 선생께서 부산 국악회관에 오셔서 ‘자네가 이렇게 큰 일을 한줄 모르고 너무 작은 작품을 주었다’며 회관 벽에 걸 큰 작품을 보내오시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승인 박봉술 명창이 술을 좋아했던 것으로 아는데.

“내가 술을 잘 못한다. 그것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한번은 참기름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안 취한다고 하셔서 그렇게도 해봤는데 그것도 안 통했다.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까다롭고 인기(?)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적벽가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의 내용을 좋아했다. 또 스승이 서울로 이사 가면서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어렵게 배운 소리라 애착이 간다.”

송 명창은 부산에서 흑의장군, 유관순전, 동래부사 송상현, 순교자 이차돈, 원효대사 등의 창무극을 기획 제작해 창의적이고 작품성이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도 열사 유관순, 불멸의 영웅 안중근, 백범 김구 등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한 창극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백범 김구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이란 메시지를 좀 더 강조려고 한다”고 말했다.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로 세계인들이 함께 감흥을 느끼는 것이 우수한 우리 문화의 근원이며 우수성이 발현되는 결과라고 확신한다.”

· 송 명창은

1936년 전남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산(雲山)이다. 다른 명창들에 비해 다소 늦은 나이인 22세에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1957년부터 광주에서 공대일에게 <흥보가>를 배운 뒤 1958년에는 김준섭에게 <심청가>와 <수궁가>를 배웠다. 1963년부터는 부산에서 박봉술에게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를 배웠으며, 1971년부터 1년 동안 부산에서 김연수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1987년에는 광주에서 도립 남도국악단에 입단하여 활동했다.

1994년 6월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며, 1999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2002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현재 서울대 국악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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