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소녀 ‘가민’ “졸리다고요? 가슴을 울려요, 아주 많이”

전통악기 연주자 '가민'. <사진=김남주 기자>

한국전통악기를 4년 시리즈로 연재 공연하고 있는 피리연주자 ‘가민(본명 강효선)’.

피리부는 소녀가 피리와 태평소를 들고 최근 서울 명륜동 아시아엔(The AsiaN) 사무실을 찾아왔다. 단아하고 청초한 그녀는 전통악기들과 썩 잘 어울렸다. 피리와 태평소, 생황 등을 연주한다고 했다.

피리하면 ‘리코더’가 먼저 떠오르는 기자에게 가민은 “피리는 관악기의 총칭이 아니라 전통악기 고유 이름으로 작은 ‘세피리’와 좀 더 큰 ‘향피리’가 있다”고 기본부터 설명해줬다.

우선 피리소리를 들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악기인 피리는 바로 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나무로 만든 ‘관대’와 역시 대나무로 만들었으며 입에 무는 부분인 ‘서(리드, reed)’로 돼 있는데, 이 ‘서’가 평소에는 닫혀 있단다.

'관대'와 '서'로 구성된 향피리.

종이컵에 물을 담은 뒤 그 ‘서’를 담갔다. 5분쯤 지난 뒤 ‘서’를 꺼내자 그제서야 조금 ‘틈’이 보였다. 그 틈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면 피리가 진동해 소리를 내는 것이다.

“궁중음악은 느리고 호흡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듣는 사람은 편하게 들리고 심지어 졸리기도 한데, 한 곡이 1시간 이상 걸리기도 해요.”

가민은 영산회상(靈山會相) 중 ‘상영상(上靈山)’을 들려줬다. 불교음악에서 유래했는데 처음에는 기악과 성악이 함께 하다가 지금은 독주곡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피리의 울림은 잔잔하기 보다는 큰 것이었다. 무언가 깊이 있게 맺히는 구슬프고도 애잔한, 그러나 약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바로 기운과 정신, 호흡이 이끌어 내는 소리다.

“일반적으로 호흡은 흉식호흡이지만, 피리를 연주할 땐 복식호흡을 해야 오래 연주하고 좋은 소리를 낼 수가 있어요. 서양악기가 기술적인 테크닉이 필요하다면 우리 악기는 힘이 더 많이 드는 편이죠. 특히 리드를 사용하는 기술이 중요해요.”

가민은 국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과 대취타 이수자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수석 단원을 역임했다.

어떻게 전통악기연주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을까?

가민은 “저 역시 어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국악을 쉽게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음악은 하고 싶고 국악고를 진학하면서 피리를 전공했어요. 이후에 다른 악기들도 하나씩 더 배우게 됐죠.”

한국전통악기는 보통 8가지 재료들로 구성된다. 금(쇠), 석(돌), 사(명주실), 죽(대나무), 포(바가지), 토(흙), 혁(가죽), 목(나무) 등이다.

가민은 한 해에 2가지 재료씩 선정해 4년에 걸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가민의 8음 잇기’ 공연은 올해 3회째로, ‘바가지와 나무’가 주제다. 첫해에 돌과 쇠, 이듬해는 실과 대나무였고, 내년에는 가죽과 나무가 남았다.

“첫 공연에서는 금과 석이 주제였는데, 편종과 편경이 전시돼 있는 국악박물관에서 공연했어요. 두번째 공연은 아주 현대적이었고, 올해 세번째는 전통적 공간에서 준비했어요. 매번 편성이나 주제를 다르게 해서 다른 느낌을 주려고 해요.”

이번 공연은 10월12일 저녁 7시반 서울 종로구 ‘소리울’이라는 한옥에서 펼쳐진다. 가민은 피리와 태평소, 생황을 연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8가지는 악기 재료일 뿐 아니라, 모두 모여야 합일을 이루고 음악이 완성된다는 철학적 의미도 있습니다.”

태평소를 부는 가민

피리와 함께 들고 온 ‘태평소’도 여기서 한번 들려달라고 했더니, 들려주고 싶다면서도 약간 주저했다. 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상관없다며 “듣겠노라”고 했고, 가민은 “짧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태평소가 울렸다. 조용하던 사무실이 떠나갈 듯했다. 1분 이상 이어가다가는 이 건물 사람들이 다 몰려올 것만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쾌하고 신났다. 기운이 솟을만큼.

가민은 2년 전부터 ‘단원’이 아닌 ‘개인’으로 독립해 세계 무대를 다니고 있다. 뉴욕에서 8개월 머물면서 공연했고, 유럽공연도 다녔다.

“더 넓은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알리고 싶었어요. 전통음악을 세계화하는 것은 연주자로서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꼭 한국에서만 할 필요는 없어요.”

한국에서 덜 대중적인 한국악기가 외국인들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전통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과 외국이 달라요. 한국에선 소외받지만 외국에선 오히려 열린 자세로 들어주고 있다고 느꼈어요. 연주자로서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국악을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음악적인 성취를 얻는 것이 꿈이에요.”

가민은 해외무대를 다니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보니 한국음악이 참 왜소하다고 느껴졌어요. 경제적으로 부유해졌지만,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데, 그런 것은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K-팝이 있지만 우리 고유의 음악은 아니잖아요. 종묘제례악 등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잘 몰라요. 알릴 사람도 없고요. 문화 인식이 아직 중국이나 일본에 비할 바가 안 돼요. 문화에 대한 의식이 열려야 선진국이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향피리를 든 가민이 '호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남주 기자>

가민은 ‘피리’를 거의 항상 갖고 다닌다고 했다.

“휴대가 편해서 갖고 다녀요. 연습도 매일 해야 하거든요. 한번에 오래하는 것 보다 자주 꾸준히 하는게 중요해요. 쉬고 나서 하면 악기를 물었을 때 소리와 느낌, 호흡이 달라요. 그만큼 예민한 악기에요.”

긴 호흡과 인내, 정신력과 마음가짐 등 많은 체력소모가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가민은 ‘요가’로 운동한다고 했다. 국악연주나 요가나 ‘정적이면서도 격하다’는 묘한 공통점이 느껴졌다.

“아 참 오늘 ‘생황’은 안 가져 왔는데, 우리 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이 나는 악기거든요. 하모니카처럼 연주해요. 화려한 선율악기에서 화음을 깔아주는 역할을 많이 하는데, 음색이 오르간처럼 신비해요. 입으로 분다고 ‘마우스오르간’이라고도 해요. 이번 공연에서 보여드릴게요.”

오르간 소리를 좋아하는 기자는, 생황 연주를 듣고 눈앞에서 ‘오르간 소리와 과연 비슷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공연을 가보게 생겼다. 설레는 기다림이다.

<영상=김수찬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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