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다음엔 한국의 지뢰 제거하러 오고 싶다”

아키라씨는 10살 때부터 군인으로 살아 전투복, 전투화가 편하다. 좌로부터 아키라, 임현정 아시아엔 인턴, 빌 모스 아키라 지뢰박물관 디렉터가 공항을 나와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이 글은 아키라씨 입장에서 8월11일 한국 일정을 기사로 작성한 것입니다.-아시아엔

도착 예상시간 보다 20분 이른 오전 6시40분 인천공항에 도착. 24시간 잠을 못 잔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국 절차가 오래 걸렸다. 7시40분에서야 빠져 나왔다.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서 있다. 아시아기자협회에서 나온 사람이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김남주, 임현정이란 분이 배웅을 나왔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다. “한국은 첫 방문입니다. 공항이 깨끗하고 크네요.” “날씨는 어때요?” “캄보디아와 비슷하군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였다. 우리 지뢰박물관의 디렉터인 빌 모스씨와 임현정 씨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피곤하다. 잠이 밀려온다. 뿌연 공기를 헤치고 바다가 보인다. 임현정 씨가 간간히 바깥 풍경에 대해 설명을 한다. 한강 넘어 보이는 금융가의 고층 빌딩, 국회의사당, 서울역, 광화문… 시내를 지나다보니 극장이 보인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얼마 전에 극장이 들어왔다. 아직 가 보지는 못했다.

일정이 빡빡하다. 오전 11시 조선일보 인터뷰 오후 1시 뉴시스, 2시 연합뉴스, 7시?만찬.?잠을 자야할 것 같은데. 차에서라도 눈을 붙이자. 배도 고프다. 인터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북악 팔각정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가기로 했다.

팔각정 올라가는 길, 집들이 예사롭지 않다. 물어보니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란다. 유럽같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 드디어 팔각정 도착.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국에 와서 첫 관광지(?)다. 팔각정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부탁했다. 그런데 식당들은 아직 영업 전이다.?김남주, 임현정 씨가 미안해 하는 표정이다.

아키라씨는 정확하게 태어난 날을 몰라 생일도 기념할 수 없다. 조용했지만 눈빛만은 매섭다. 북악산 팔각정 2층 난간에서 평창동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미리 확인하고 왔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멀리 산과 집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도 꽤 많은 지뢰들이 남아 있어요. 특히 DMZ에. 한국의 지뢰들을 제거해 줄 생각이 있나요?” 김남주 씨의 질문이다.?“그럼요.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다시 차를 타고 꼬불꼬불 언덕 길을?내려왔다. 만찬까지 쉴 시간은 없어 보인다. 잠깐 잠깐 눈을 붙이자. 오전 10시 40분. 아시아기자협회 겸 아시아엔(The AsiaN)?사무실에 도착. 이상기 대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피곤하겠지만, 당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것을 압니다. 이 시간을 즐겨주시면 어떨까요?” “하하. 그래야지요.” “여기 당신을 위해 명함도 준비했습니다.”

놀랍다. 내 명함이 준비돼 있다니. 그것도 크메르어로. 나의 통역을 위해 한국에서 공부 중인 캄보디아 유학생 두 명도 와 있다. 고향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11시가 조금 넘어 조선일보 기자가 왔다. 소년병 시절의 기억과 지뢰제거의 어려움, 박물관 소개 등 여러 가지를 묻고 답했다. 이어 뉴시스, 연합뉴스 인터뷰. 강행군이다.?비슷한 질문을 받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그 중 인상깊었던 질문 몇 가지.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아키라씨.

“아내를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 박물관에서 도움을 주던 친구였어요. 함께 지뢰를 제거하기도 했지요. 가족, 친척이 없는 저를 많이 보살펴 줬어요.” “아내의 유언은요?(아내는 4년 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아이들 잘 키워달라고 했어요. 재혼은 아이들 다 크면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아키라의 뜻은 뭔가요?” “일본 친구가 지어준 이름인데?머리가 똑똑하다는 뜻이래요.” “한국에 바라는 점은요?” “캄보디아에 학교와 길을 만들어 주세요. 지뢰 제거에도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5만여 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동안 아키라씨와 함께했던 신발.

지뢰 제거가 무섭지 않냐고 모두들 묻는다. 어렸을 때부터 지뢰를 묻고 분해를 반복해 왔기에 어려운 일도 위험한 일도 아니다.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 안전하다는 나의 답변에 못 믿는 눈치다. 칼과 젓가락만 있어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5만개의 지뢰를 제거했다. 아직도 캄보디아에는 수 많은 지뢰가 숨어 있다. 캄보디아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

오후 2시30분 모든 인터뷰를 마쳤다. 피곤하긴 하지만 과분한 관심에 어찌해야 될 지 모르겠다. 정작 캄보디아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맞서는 어려움들에 대해 세상에서 주목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정말 한국의 지뢰를 제거하러 한번 더 오고 싶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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