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편지]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혼자 잘 살면 오래 살 수 없다’는 김기태 선배에게
덥다는 말을 하면 더 더울까 말도 못 꺼내는 요즘입니다.?지난 새벽?한국과 스위스의 올림픽 축구경기는 보셨겠지요. 해외 축구 리그를 즐겨보신다니 올림픽 국가대항 경기를 빼 놓을 리 없었겠지요. 더욱이 영국 유학을 앞둔 선배님은 월요일 출근에서도 자유로운 몸이니까.
올림픽 중계방송과 무더위가 집안을 감싸 앉은 주말, 선풍기를 챙겨들고 집 한 구석에 틀어박혀 선배님의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를 정독했습니다. 요즘 무엇을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하는 후배 기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본이었습니다. 또 경제민주화, 복지가 화두인 요즘 가장 본질적인 복지 문제를 거론하고 해법까지 제공했습니다.
“여보, 가난한 사람들이 암도 잘 걸리고 더 쉽게 죽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거 아냐? 가난하니까 건강검진을 제 때 못 받을 테고, 뒤늦게 병을 알아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으니까 부자보다 사망비율이 높겠지.”
제 아내처럼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난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선배님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모든 생의 무게는 같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지요.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병동, 아주대 중증외상특성화센터, 국립의료원 응급실에서 한 달, 혹은 수 주일을 보내며 가난해서 쉽게 아프고 쉽게 다치고 쉽게 죽어간 사람들을 밀착 취재합니다. 다음엔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보고서를 샅샅이 찾아내 우리의 문제를 사회과학으로 치환합니다.?통계로 나타난 우리의 현주소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부족한 응급센터, 구급장비, 구급 인력, 극단화 돼가는 의료 환경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책 말미에 소개한 영국 노팅엄대 월킨스 교수의 ‘수준측량기 : 더 평등한 사회는 왜 더 건강한가’는 시원한 바람입니다. 월킨스 교수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보여준 것은 부자의 지갑을 열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부자도 오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잘 살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보고서는 보여줍니다.
최근 다국적 시민단체인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보고서를 봤습니다.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넘어간 자산이 888조원으로 세계 3위 규모랍니다. 부자들에게 감세를 하면 사회에 재투자되는 줄 알았더니 은밀한 곳에 더 숨겼습니다. 이른바 낙수효과는 환상이라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그 돈이 국내에 있었더라면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이 얼마입니까. 그 세금으로 응급센터를 더 짓거나, 응급요원을 더 양성했다면 억울하게 죽어간 수천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도적으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값진 내용만큼 추천사를 써 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발로 뛰고 치열하게 고민한 역작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부러웠고 도전이 됐습니다. 1장과 2장 르뽀 기사는 두고두고 읽고 응용하겠습니다. 영국 유학 잘 다녀오십시오. 3년 뒤 돌아올 때 선배님의 말대로 가난한 이들을 국가가 구제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신념이 구체적으로 구현돼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대선 주자들이 읽어야 할텐데요.
김기태 기자는
1973년 서울 태생으로?서울대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2001년 <The Korea Times>에 입사해 2006년 <한겨레>로 옮겼다. 빈곤과 보건, 재정, 복지국가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07년 삼성언론상, 2011년 앰네스티 언론상과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2011년에 복지의 여러 유형을 해설한 <복지혼합>을 번역, 출간했다.?<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는 <한겨레 21>에 2010년 12월부터 석달동안 연재한 ‘생명OTL-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을 ?새롭게 정리한 책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김 기자는?아내와 함께 8월 영국 버밍햄대학교로?유학 가 박사과정을 밟는다. 내년 초 아빠가 된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