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미디어 시대의 중독과 해독···정여울 ‘소통,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

정여울,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맺는법

[아시아엔=심범섭 인서점 주인] 그저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던 미디어가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진화하면서 우리의 삶을 그 이전과 이후로 선명하게 갈라놓고 있다.

신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시공초월의 신성이 유비쿼터스를 장착한 인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여세를 몰아 미디어가 지구촌의 존재적 현실을 환상으로 대체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이제 비몽사몽간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간이 자연의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은 전자와 광자를 손아귀에 넣은 데서 비롯됐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 인간의 입과 입, 귀와 귀, 눈과 눈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몰아내고 보고 듣고 말하는 눈과 귀와 입이 하나의 공간에 담아졌고 또 그 공간을 탈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제약까지 이탈함으로써 초현실은 이제 인간의 손아귀에 잡힌 현실로 탄생한 것이다.

유한의 현실을 넘어선 이 초현실을 우리는 인터넷 또는 포털 사이트라거나 정보의 바다라 말하지만 분명한 건 그 초현실이 인간의 소유물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그 초현실을 활용하는 우리의 여러 도구들이다. 하여간 좋다. 그 초현실은 이제 분명 인간의 창조물이다. 가벼워도 좋고 방방 뛰어도 좋고 맘껏 놀아도 좋다.

거기서 인간은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전지전능의 존재요 절대자요 신이니 말이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라고 고개를 홰홰 내젓는 이가 있다.

<소통>(홍익출판)의 저자 정여울은 미디어의 ‘동시 다발적 소통’이 우리 현대인을 ‘집단으로 마취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 하나하나를 중독시킨다’고 펄펄 뛰고 있으니 웬일인가.

그러면서 그 독성을 읽어내는 해독법을 귀띔해 주기까지 한다.
설마 ‘소통’의 저자 정여울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우리의 즐거움에 재를 뿌리겠는가 귀를 기울여보기로 하자.

뭐 다 아는 얘기지만, 우리를 열풍 속으로 몰아 넣고 있는 오디션이나 셀러브리티는 물론 인터넷 포털 사이트, 그리고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실은 ‘그냥 그렇게 우리를 착한 맘’으로 재미 있으라고 들려주는 것도 재미있으라고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게 말하는 것도 아니라며 그냥 그렇게 그걸 재미있게 만끽하다간 그 속에 녹아 있는 더럽고 음흉하고 흉악한 보이지 않는 어떤 음모에 인생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문득 그런 의심이 뭉클거릴 때도 있기는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다. 저자 정여울은 미리 해독약이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온갖 미디어에 나 있는 온갖 잡초를 조심해야 한단다.

그래서 그는 ‘지금 너 커뮤니케이션 과연 어디까지 왔냐?’ 고 질문을 던져놓고 심판관의 회초리를 든다. 가장 먼저 악마의 조짐이 보인다며 ‘스마트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의심은 세시봉을 향해 묻고 또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포털 사이트로 돌아와 아날로그와 속삭인다.

그러고 보니 문화의 종자가 많기도 많다. 쉰 여섯 개의 동네를 일일이 찾아 헤매니 말이다. ‘콘텐츠 속 문화코드’를 읽어내고 ‘문화로 세상을 진단하며’ 또 ‘문화의 진화’를 찾아 ‘인간적인’ 마을에 이르러 ‘이별’과 ‘노년’ ‘기차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여간 그 모든 키워드가 다 미디어에 중독된 대중의 뇌세포를 해독시킬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못 돼 먹은 미디어’가 모든 사람들에게 맛 있고 유익한 마음의 먹거리가 돼서 저자가 원하는 대로 이 소통의 처방전들이 아주 ‘격조 높은 인문학’으로 우뚝 서 주어야겠지만 말이다.

서평자가 격식을 갖추고자 방점을 찍어야 한다면 아쉬움도 있다.
이 책 ‘소통’이 그 쉰 여섯의 넓이만큼 우리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미디어 열풍의 뿌리를 이해하는 인류학적 모험이 되기에는 어쩐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문화를 쪼아서 뚫어내는 징의 날카로움이 어쩐지 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 저자의 말대로 삶의 나이테처럼 삶의 토양에 자리잡은 무게를 느낄 수 없다.

부연하면, 21세기라는 오늘까지의 문화가 인간의 몸을 겨냥한 힘의 작동이 본질이었다면 이제부터 가야 할 문화의 앞길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향한 감성의 작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불고 있는 미디어의 열풍은 그 전환기에서 상하좌우로 부는 수직과 수평의 가치가 충돌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의 수세와 이후의 공세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새로운 가치가 소수에서 다수로 통합해 나갈 때 일으키는 바람의 열기가 아닐까.
따라서 해독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랜 실험 끝에 연착륙하려는 민주주의에 억지로 매달려 기생하려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욕망이 부추기는 소비를 절제하면 독성은 그 순간에 빠져나갈 것이라고 본다.

비록 우리 인간이 유비쿼터스라는 분외의 호사로 신의 영역에 이르렀지만 기실 그것이 현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인정하는 성찰에 이른다면 이제 우리는 이 역사의 흐름을 여기서 더 나가기를 거부해야 한다.

더구나 문화의 추동력인 미디어가 더 이상 인간의 집단마취에 거간꾼 노릇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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