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가 익어 가는 오래된 마을

‘박성우’의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창비)??

많지도 않은 서른이나 한 마흔쯤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엔 늘 뜬금 없는 풍문이 떠돈다. 더러는 씨눈이 없는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다가 시나브로 사라지는 이야기도 있지만, 풍문은 온 동네 고샅을 헤집고 다니며 웃음거리를 쏟아 놓기도 하고 손가락질이나 말쌈을 일으키기도 하고 눈물을 쥐어짜는 생채기를 내면서 사람들의 마음 밭을 갈아 엎고 다진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양 마을 앞의 개울물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며 세월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렇게 떠돌던 이야기들은 이 시골마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음 밭의 바람이고 별이고 달이고 햇살이다. 삶이자 거름기다. 한 때 시끄럽기만 했던 풍문은 잡초가 되고 나무가 되고 키 큰 당산나무로 자라니 말이다. 그게 사람들의 마음이고 마을의 전설이자 역사다.

그 한 자락의 전설과 노래와 시를 찾아 나서자고 시인 박성우가 우리를 보잔다. 그러나 어찌해야 하오리! 가자는 시인의 손길은 있지만 그 손을 잡을 우리의 손은 그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구나! 문명을 내려 놓아야 하니 말이다. 뿐인가 무한경쟁이라는 초고속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비록 잠시일지라도 그리고 억지일지라도 용기를 내서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열차에서 뛰어내려 보자. 훌쩍 떠나보자. 오래된 세상 아니 꼭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이니 말이다. 혹 누가 아는가 그런 잠시의 자연으로의 귀화가 잠들어 있던 님의 깊은 영혼을 깨워줄지…… 슬며시 다가가 보자.

? 구복리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 한천댁과 청동댁이 구복리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 구년 뒤, 한천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 구복리댁과 청동댁이 한천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 다시 십일년 뒤, 청동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 구복리댁과 한천댁이 청동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 연속극 켜놓고 간간이 얘기하다 자는 게 전부라고들 했다

? 자식새끼들 후다닥 왔다 후다닥 가는 명절 뒤 밤에도
? 이 별스런 품앗이는 소쩍새 울음처럼 이어지곤 하는데,

? 구복리댁은 울 큰어매고 청동댁은 내 친구 수열이 어매고
? 한천댁은 울 어매다

??????????????????????????? -어떤 품앗이- 전문?

그렇다! 그랬다! 그랬었구나! 우리가 그렇게 아득하게 잊고 그렇게 까맣게 잃어버린 저 뒤 뜰의 한 녘에서 그렇게 시는 익어 가고 시인도 익어가면서 아름다운 세상은 용케도 살아 남아 있었구나!

뭐 시인이 따로 있겠는가 떠도는 이야기 하나 고운 마음으로 받아 마음 밭에 소근소근 뿌려 놓으면 삶의 자락 어느 공간에서 문득 잠을 깨고 피어나는 질경이 같은 풀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두나무 꽃이 하얗게 필 무렵 천지는 시 밭이 되고 밭 쥔은 시인이 될 터. 오래된 마을은 모두가 절로 되는 세상이다. 시인 박성우의 마음 밭으로 돋아 나는 시는 그래서 모두가 시가 된다. 말랭이집도 시가 되고 배꼽도 시가 되고 밤비며 나흘이나 내린 폭설이며 목단 꽃도 시 이불이 되어 온 마을을 덮는다. 닭을 훔친 도둑도 시가 되고 맛 있는 밥도 시가 되고 전화 한 통화도 시가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생명의 일들이 다 꽃같은 시가 된다. 그래서 시는 생명이라 하지 않던가

이 오래된 마을의 시 밭에 작가 현기영이 들렸다. ‘조용하게 던지는 시어들’이 ‘걸직한 남도의 입담이나 익살’을 안으로 갈무리 하면서 ‘살짝 스치는 미풍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금선의 울음처럼 여리면서도 강하게’ 슬프고 쓸쓸함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러나 결코 ‘애상에 떨어지지 않는’ 이제까지의 남도 말이 보여두던 시어와는 ‘전혀 다른 진경’을 창조함으로써 ‘아름답고 투명한 시의 그릇’으로 남도 말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시인 박성우의 초대를 받고 퇴화된 귀소본능을 찾아 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는 오래된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나 잃어버린 인간의 영혼 아니 나의 영혼을 찾는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순전히 우리 독자의 몫임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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