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의 출발지 블라디보스토크 역 건물을 답사하는 날이다. 답사 가이드의 안내 멘트에서 한 철도원의 무용담이 귀에 들어왔다.
귀국 후 나는 그 철도원과 러시아 알렉산드르 3세 황제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무명의 철도원, 그는 러시아 철도의 역사였으며 동시에 러시아 현대사의 중요한 장을 장식한 인물이었다.
철도의 본산인 영국 맨체스터에서 1825년 시작된 철도혁명은 유럽 각국과 러시아, 미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캐나다와 인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산업혁명의 총아인 철도는 도시와 농촌,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며 인간의 생활과 물류 이동, 공간 개념을 비약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후발 산업국가였던 러시아도 니콜라이 1세(1825~1855) 시기 철도 도입을 서둘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르스코예셀로, 이어 모스크바까지 645km를 잇는 ‘니콜라이 철도’가 1837년 착공해 1851년 완공되었다. 러시아 철도 역사는 서유럽보다 10여 년 늦었지만,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이 시기 조선의 상황을 돌아보자. 정치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24대 헌종과, 안동 김씨가 옹립한 허수아비 25대 왕 철종의 시기였다. 안동 김씨의 전횡 속에 풍양 조씨가 대립하며 왕권은 무너지고 세도 정치가 절정에 이르렀다. 지도층의 부패와 실정으로 민생은 파탄에 가까웠다. 산업혁명은커녕 마차도 거의 없던 봉건사회였고, 대부분 도보로 이동했다.

일부 양반만 말을 탔고, 평민은 사람이 들어메는 가마에 의존했다. 이러한 봉건적 정체성은 동학농민운동 이후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 한양으로 압송되는 사진(1895년)에서 가마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동아시아 3국의 철도 도입은 서양에 비해 50년 이상 늦었다. 일본(도쿄~요코하마, 1872년), 중국(탕산~쉬거좡, 1881년), 조선(인천~서울, 1899년) 순이었다. 결국 철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일본은 선진국으로 성장했고, 중국은 반식민지,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단순한 수송 터미널이 아니라 작은 궁전 같은 건물이었다. 러시아 철도는 초기에 황족과 귀족의 이동을 위한 것이었고, 역은 궁전처럼 화려하게 지어져 음악회와 무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1899년 조선에 최초로 설치된 전차도 고종이 민비의 묘소(홍릉)에 편히 가기 위해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연결한 것이었다.

1860년대 러시아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철도는 인력과 화물의 대량 수송, 병력의 신속한 이동 수단으로 발전했다. 1878년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철도의 힘으로 흑해까지 병력을 신속히 이동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철도 산업은 러시아를 군사 강국으로 만드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알렉산드르 3세 황제는 흑해 연안을 자주 찾았다. 1888년 9월 황제는 황금으로 치장한 전용 열차를 타고 오데사 별장으로 향하던 중, 키예프(현재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한 철도원이 안전 규정 위반을 이유로 열차를 멈추게 했다.
“차량 탈선 위험이 있으니 즉시 멈추고 개선하시오.”
그의 경고였다. “전용열차가 증기기관차 두 대로 고속 주행하는 것은 탈선 위험이 있고, 규정상 42개여야 할 바퀴를 64개로 개조한 것은 과중한 하중으로 선로 파손 위험이 크다”는 논리였다.
분노한 황제는 조사 명령을 내리고 휴양지로 떠났다. 당돌하게 정차 명령을 내린 인물은 키예프 철도 관리원 세르게이 비테(1849~1915)였다.
한 달 뒤인 10월 29일, 황제 일행의 귀환길 ‘보르키’에서 전용열차가 탈선·전복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황제의 가족과 수행원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황제도 중상을 입었다. 그는 그제야 무명의 철도원이 던진 경고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르 3세 황제는 사고 후유증으로 5년 뒤 사망한다.

세르게이 비테는 황제의 특명으로 철도국장이 되어 러시아 철도 발전에 헌신했다. 1891년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기획했고,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직접 기공식에 참석했다.
비테는 1892년 재무장관이 되어 화폐제도를 금본위제로 혁신, 러시아의 국제 신용도를 끌어올렸다. 프랑스 자금으로 시베리아 철도 건설 재원을 확보했고, 러일전쟁 후 미국 포츠머스에서 협상대표로 일본을 압도했다.
“러시아는 전쟁에서는 졌지만 협상에서는 이겼다!” 당시 외교가의 평이었다.
비테는 공로로 백작 작위를 받고 제정 러시아 초대 총리로 영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한 철도원의 이야기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찾는 여행자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