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종차별금지법’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오늘 토론회 어땠어요? 시작 전에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놀라거나 마음 상하지는?않으셨어요?”
11일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한 다문화정책 토론회 후 로비에서 기념촬영 중인 두 이주 외국인여성에게 물었다.
베트남에서 결혼을 통해 5년 전 한국에 왔다는 이하나(32)씨는 어정쩡한 웃음만 띤 채 머뭇머뭇 거렸다. 옆에 있던 친구 마이티 후엔(32)씨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지만 마찬가지였다. 한국말을 못 알아 듣거나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딘지 억눌려 있는 듯 보였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구청에 계약직으로 취업한 중국인 이주여성에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였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윗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땅의 이주여성들은 눈치를 보며 산다. 자신이 없다. 해가 가면 나아져야 하는데 삶은 점점 어려워진다. 이주여성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그들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이자스민 의원도 한국에서 살면서 눈치 100단이 됐다고 했다. 원래 성격이 조용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한국인의 기분을 맞춰가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어떤 몹쓸 분위기가?팽배해 있다.
이날 토론회에 다문화주의를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박수치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이건 뭐지 싶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개최하는 행사인데 최소한의 룰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 국회의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자스민 의원을 대한민국 의원으로, 국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시위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땅에 맞도록 마음가짐을 고치고, 살색을 살색이라 부르는 것이 뭐가 틀렸냐는 발언에 어떤 이주외국인도 맞서 발언하지 못했다. 사회를 본 이자스민 의원이 질문이 길다며 제지했을 뿐.
이날 방청객으로 온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앞으로 더 입을 닫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박병석 국회 부의장이 앞으로 이 땅에 다문화가정 출신 국무총리, 장관, 대통령이 탄생되기를 희망한다는 축사는 그래서 공허했다. 유치원 때부터 사람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세뇌에 가까운 교육과 차별금지법 등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